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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학부모들이라면 어느 교사가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무슨 비리라도 저지른 것처럼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기어이 법원의 결정까지 뒤엎어가며 이를 실행에 옮겼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5개 교원단체에 가입한 교원 22만2000여명의 이름과 소속 학교 등 신상정보를 공개한 19일 오후, 경기 북부지역의 교사 유아무개(42)씨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그는 “교사 대부분은 명단 공개 자체를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는 분위기”라며 “다만 명단 공개 이후 특정 교원단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꼬투리 삼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드는 등 학교 안에서 쓸데없는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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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원단체 가입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조 의원의 오랜 ‘소신’이다. 조 의원은 이날 명단을 공개한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교육혁신을 위해 학부모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교육 관련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교원의 교원단체 활동도 교육활동의 연장이기 때문에 학부모는 이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 ‘소신’이 겨누고 있는 표적이 전교조라는 데는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조 의원이 2006년 11월 홍진표 당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과 함께 내놓은 책의 제목이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였을 정도다. 조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명단이 공개된 교원이 단체를 탈퇴한 뒤 각급 교육청 장학사를 통해 해당 정보 삭제를 요청할 경우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명단 공개가 가져올 ‘위축효과’를 기대하는 듯한 발언이다. 이날 오후 명단 공개 직후부터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조 의원의 누리집은 한때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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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 공개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노동부는 난데없이 전교조에 조합 규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해직된 교사들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전교조 규약을 새삼 문제 삼은 것이다. 한 달 안에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법적으로 조합 해산 조처까지 취할 수 있다. 전교조 조합원의 정치활동과 관련한 검찰 수사도 비슷한 시점에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교조 문제를 필두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도 진보진영의 주경복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공정택 후보가 막판에 ‘전교조 대 반전교조’ 구도를 내세워 당선된 바 있다. 문제는 이번 선거가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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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라도 법원의 결정을 거슬렀기 때문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명단 공개가 되레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