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16일 봉하마을에 보관 중인 국정자료를 국가기록원에 반환할 뜻을 밝히고, 청와대가 이를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반기면서, 신·구 정권이 3개월여 벌여온 ‘자료 유출 공방’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의 이날 자료 반환 선언에서는 그동안 자신을 옭죄어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짙게 배어났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장, 정무수석 등에게 사본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목적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또한 열람권을 보장하면 즉시 자료를 돌려주겠다고 했음에도 현 청와대가 거듭 의혹을 제기하고 고발 방침까지 밝히자 더 참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6일 새벽 직접 이 편지를 썼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편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과 전화 접촉에서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고 말한 것과 이후 통화 회피 사실을 상세히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한 참모는 “노 전 대통령은 최소한 국가를 운영해 온 지도자로 정치적 지향점을 떠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동질감과 동병상련, 최소한의 신뢰를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자료 유출 공방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도중에 노 전 대통령 쪽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전달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며 정중하게 처리할 것을 강조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청와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쪽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나, 노 전 대통령이 자료 반환 의사를 밝히자 확 누그러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처음부터 이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하길 원했으나 중간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매우 괴로운 처지였다”며 “이 문제를 더이상 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해, 검찰 고발 가능성이 낮음을 내비쳤다. 실제 고발까지 갈 경우, ‘권력을 쥔 현직 대통령이 힘 빠진 전직 대통령을 지나치게 몰아붙인다’는 비판 여론이 일 가능성을 우려한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고발 여부는 국가기록원이 알아서 할 일”이라거나, “형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불법행위를 알았으면 반드시 고발하게 돼 있다. 법과 원칙의 문제”라며 모호성을 일부 남겨두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반환할 자료의 충실도 시비가 붙을 경우 등에 대비해, 검찰 고발 카드를 쥐고 있으려는 기색도 엿보인다.
앞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자료 열람편의 제공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국가 기록원측에서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서도 “대리인을 성남 대통령기록관으로 보내면 사본까지 가져갈 수 있다”며 여전히 인색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황준범 신승근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