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개념 쏙쏙

공부를 하면서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치기 위해 빨간색으로 된 볼펜을 집어 든 영대. 겉모양이 빨간색이라서 당연히 빨간 볼펜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검정색이 나왔다.

“에잇, 사람 헷갈리게 검정 볼펜이면서 왜 겉이 빨강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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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의 투덜거림을 들은 중학생 누나 영선이가 웃으며,

“겉은 파랑이나 노랑으로 디자인 되었지만 속은 검정인 볼펜들도 많잖아? 겉이 빨강이면 속도 빨강이라는 편견을 버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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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풀고 있던 <근사값> 단원의 문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어떤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수가 15803명이라 할 때, 십의 자리에서 반올림하면 15800명이다. 유효숫자는 무엇인가? 또 일의 자리에서 반올림해도 15800명이다. 이때의 유효 숫자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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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문제는 정말 모르겠어. 반올림해서 똑같이 15800이 나왔는 데 왜 십의 자리에서 반올림할 때는 유효숫자가 1, 5, 8이고, 일의자리에서 반올림한 것은 1, 5, 8, 0이라는 거지? 똑같은 0을 왜 어떨 땐 유효숫자에 끼어주고 어떨 땐 안 끼워주냐 말야 ”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대학생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십의 자리에서 반올림한 15800의 뒤에 있는 00은 백의 자리까지만 유효하고 일과 십의 자리는 빈 자리라는 뜻으로, 0을 쓴 거야. 일의 자리에서 반올림한 15800에서는 십의 자리까지만 유효하고 일의 자리는 빈 자리라는 뜻에서 0을 쓴 거고….”

“그럼 0이 어떨 땐 기호로 쓰였고 어떨 땐 수로 쓰였는지 어떻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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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영대가 끼어들었다.

“한 마디로, 겉과 속이 다른 거지! 겉이 빨강이지만 똑같지만 속은 검정인 볼펜도 있고 속도 진짜 빨강인 볼펜도 있다며? ”

“야호! 영대, 너 천재다. 바로 그거야. 겉은 똑같이 ‘0’이라고 쓰여 있지만 속 내용은 서로 다를 수도 있지.”

하지만 영선이는 유효숫자가 아닌 0은 그냥 빈 자리를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기호일 뿐 수로 쓰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혼란에 빠진 영선이를 도와주려면 0의 의미를 잘 정리해 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이 0이지만, 숫자 0은 다음 3가지 중 하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 빈 자리를 나타내는 기호

2. 없음을 나타내는 수(기수)

3 기준을 나타내는 수(서수)

다음의 예 안에 사용된 0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

A. 패스트푸드 점 앞의 “아르바이트 00명 모집”

B. 오늘 00시 15분에 불이 났습니다.

C. 이 음료수는 1800원입니다.

D. 내 통장의 잔액이 0원이다.

E. 대기번호 007

F. 내 시력은 1.0이다.

G. 학교까지 거리는 0.65Km이다.

H. 이번 중간고사 평균 점수 99.5를 소수 첫째자리에서 반올림하면 100이다.

A의 00은 아무도 안 뽑겠다는 게 아니라 두 자리 수, 즉 10명에서 99명까지의 규모로 모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0은 빈자리를 나타내는 기호일 뿐, 수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만약 0이 수로 사용되었다면, 한 명도 안 뽑겠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B의 0시 15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00시 15분이라고 하였다. 이 때 앞의 0은 빈 자리를 나타내고 뒤의 0은 ‘수’이다. 시간에서의 0은 ‘0개’가 아니라 시작이나 기준점을 뜻한다.

C의 00은 둘 다 빈 자리를 나타낸다. 즉, 8이 일의 자리 숫자나 십의 자리 숫자가 아닌, ‘백’의 자리 숫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 아래 자리는 비워두었다.

D의 0은 없음을 나타내는 ‘수’로 쓰였다.

E의 00은 둘 다 빈 자리를 나타낸다. 이 번호의 끝은 9나 99가 아니라 999일 것이다.

F의 0은 ‘수’이다. 시력이 1.2나 1.5가 아니라 1.0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G의 0은 빈 자리를 나타내고, 6이 소수 첫째자리 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H의 두 0은 ‘수’로 쓰였다. 소수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고 101이나 102가 아니라 100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유효숫자는 1, 0, 0이다.

‘유효숫자’에서는 0이 수로 쓰여진 것이면 유효숫자에 속하지만, 단지 빈 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유효숫자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근사값 단원은 중학교에 올라가서 배우지만 그 뿌리는 초등에서 시작된다. 유효숫자 개념의 시작은 초등의 ‘자릿값’이다.

강미선/수학 칼럼니스트 upmm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