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는 폐자제…직접 뚝딱뚝딱 만들고 악보는 상상력
신명 따라 퉁퉁 둥둥…생태주의 예술로 세상을 두드린다
8일 저녁 8시30분, 월경 페스티벌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는 서울 홍익대 체육관. 수술복 같은 옷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무대를 향했다. 이어 텅텅, 둥둥, 토도독 등 타악기 소리에 은은한 종소리와 실로폰 소리까지 뒤섞인 독특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무대를 눈여겨본 관객들은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를 보고 놀란 표정들이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소리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기 때문이다. 귀에 들리는 음악은 여느 타악기 연주 그룹 못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악기는 공사장이나 폐차장에서 볼 수 있는 부품들로 이뤄졌다. 플라스틱 파이프, 자동차 휠, 쇠 파이프, 페트병, 화공약품을 담았던 플라스틱 통 등. 연주자를 빼고 악기를 한 데 모으면 영락없는 고물상 앞마당 풍경이다.
이들의 이름이 ‘재활용+상상놀이단’(noridan.haja.net)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이는 청소년의 문화작업장이자 대안학교인 하자센터에서 만든 문화벤처그룹이다. 재활용은 생태주의에 바탕해 폐자재를 재활용해 만든 악기를 씀을 뜻한다. 상상놀이단은 여기에 단원들의 상상력으로 음과 동작을 붙여 연주곡을 만들며, 이 과정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즐거운 놀이로 만들어간다는 뜻을 담았다. 단원들은 이 과정에서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예술가이자 악기를 만드는 손노동자이며 문화 교사의 구실이다.
7일 하자센터 안에 있는 ‘활용 발전소’. ‘손노동’의 공간으로 폐자재를 악기로 바꿔내는 곳이다. 작업장 한 쪽에서 하자작업장 학생이며 단원인 임동규(17)군이 보안경을 쓰고 실리콘을 그라인더로 갈아 자동차 휠을 두드리는 채를 만들고 있다. 맞은편에는 철공소에서 주워온 다양한 크기의 철봉을 호떡처럼 원반형으로 잘라 만든 악기가 설치되어 있다. 새로 개발중인 악기 ‘챙챙’이다. 쇠원반 가운데를 그라인더로 갈아 음을 튜닝중인 이 악기는 두드리면 ‘챙, 챙’ 하는 소리가 나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감돌, 두둥, 고몽, 한내, 공룡, 톡톡, 꽁꽁 등 이들이 만든 악기는 10여종이 넘는다.
폐자재로 만든 악기로 연주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수천만원짜리 고가의 악기를 다루는 이들 못지 않다. 매주 1차례 이상, 많을 때는 4~5 차례 공연을 갖는다. 예술감독 안석희(39)씨는 올해말까지 150여 차례 공연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춘천국제마임축제, 세계생명문화포럼 등 큰 무대에 선 것만도 30여 차례나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우드포드 포크 페스티벌에도 초청받아 참여했다. 이들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작은 공연도 소중하게 여긴다.
악기를 만들고 공연하는 것 외에 단원들은 문화 교사로서 활동도 열심히 한다. 생태주의 예술교사 연수, 국제 환경활동가 연수, 공부방 어린이 교육, 장애인 교육, 외국인 노동자 교육 등 500여 명이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은 몸을 이용한 박자놀이, 재활용 악기 제작, 그 자리에서 함께 연주하는 공동체 즉흥 연주 등으로 이뤄진다. 워크숍은 상상놀이단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 씨앗이 광주에서 ‘동네북 상상놀이단’으로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고,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공동체에서도 비슷한 모임이 움트고 있다. 문화 교사 500명 양성과 수강생 1만명, 자매 상상놀이단 30개팀 구성이라는 ‘재활용+상상놀이단’의 또 다른 상상이 나래를 펴기 시작한 셈이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