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위기에 노동자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겠다며 지난 1일 기업들이 쌓아 둔 ‘사내 근로복지기금’의 사용 한도를 늘려 2조원 넘는 돈을 더 쓸 수 있게 했지만, 그 혜택이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돌아갈 뿐,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 정책 효과 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사내 근로복지기금은 기업들이 해마다 순수익의 5% 이내에서 내는 출연금과 기금의 이자를 합쳐 사원들을 위한 장학금, 주택마련 대출 지원 등에 쓰는 돈이다. 기금의 용도를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하는데, 주로 정규직 노조 대표가 들어간다.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공사에서 일하는 김정수(가명)씨는 17일 지난해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을 회사에 신청하지 못했다고 했다. 등록금이 한 학기 300만원을 넘었지만, 무기계약직인 김씨에게는 신청 자격이 없었다. 반면 정규직 직원은 150만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기금에서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학자금을 받고 싶지만, 고용 문제도 불안해 회사에 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회사 기금 담당자는 “기금 정관에 따르는데,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에게 나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한 해 평균 약 10억원의 기금을 쓴다.
대한주택공사는 2007년 생활원조와 경조사비 등으로 132억원을, 한국토지공사는 그해 교육비 보조 등에 119억원을 썼지만, 비정규직에게 주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 김철희 노무사는 “1000여개 기금 대부분이 비정규직에겐 혜택을 주지 않으며, 혜택을 줘도 비싼 등록금이나 주택마련 대출 등은 제외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기준 사내 근로복지기금 규모는 토공이 1392억원, 주공은 1293억원, 한국수자원공사는 766억원, 한국도로공사는 579억원 등이다.
주공·토공 등의 기금 담당자들은 “노조의 요구도 없고, 노동부 발표 이후 회사도 계획을 바꾼 게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금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정규형 노무사는 “회사는 어디서 나오는 돈인지 밝히지 않고, 이를 받아보지 못한 비정규직들은 기금이 있는지조차 몰라 실질적으로 혜택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갈등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무기계약직인 한국도로공사 현장직 노동자들은 최근 회사 쪽에 기금 수혜 대상이 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와 정규직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현장직 노동자들로 꾸려진 고속도로관리원 노조의 정회권 위원장은 “회사에 요구하면 기금은 노조와 합의할 사항이라고 하고, 정규직 노조는 기금을 나누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고건웅 도공 홍보실 차장은 “정규직이 아니어도 단체 재해보험과 체육행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근로복지기금법 시행령 19조는 “근로자 전체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되, 저소득 근로자가 우대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무기계약직에게도 장학금 등의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는 ‘기금 운영이 노사 자율에 맡겨져 있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다, 최근에야 법률 개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종철 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은 “노사협의회에서 기금의 용도가 결정된 탓에 못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간제 노동자들까지 모두 혜택을 받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내 복지기금, 비정규직은 ‘국물’도 없다
이완기자
- 수정 2009-04-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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