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국회 본청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국민들이 보내온 탄핵 촉구 문자를 보고 있다 .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일 오후 국회 본청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국민들이 보내온 탄핵 촉구 문자를 보고 있다 .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 즉각퇴진·탄핵’ 을 주장하는 수백만의 민심을 받아안길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이 탄핵 대신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할 당시 의원들에겐 항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폭주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놓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대중선동이 떠오른다며 비난했지요. 그러나 시민들은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는 남의 번호를 가져가 온갖 홍보 문자를 뿌려놓고 문자폭탄 받는다고 화내느냐’며 성토했습니다. 더불어 유권자들이 제 손으로 ‘울화통 터지는’ 의원을 국회에서 ‘강제퇴장’시킬 수 있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8일 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은 ‘국회의원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라이브(실시간 동영상 중계)를 통해 국민소환제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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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대표 국회가 민심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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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국민소환제에 이목이 집중됐던 건 12년 전 ‘탄핵국면’을 맞이했을 때입니다. 2004년 국회가 헌정사상 최초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소추합니다. ‘대통령 탄핵은 너무하다’는 민심은 충격을 받고 광장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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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대통령·국무총리·장관·헌법재판소 재판관·감사원장 같은 공무원들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심판에 소추할 수 있는데(헌법 제65조) 왜 우리는 자질이 없는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걸까? 제품 사용 중 이상이 생기면 교체해주는 리콜제처럼, 국회의원은 리콜이 안되나?

그렇게 국민소환제 도입 논의가 구체적으로 시작됩니다. 국민소환제란, 시민들의 청원으로 임기가 끝나지 않은 선출직 공무원을 그 직에서 퇴직시키는 겁니다. 탄핵 역풍으로 여소야대가 된 17대 총선 전후, 한나라·민주·열린우리·민주노동·자민련 5개 정당은 국민소환제에 모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17·18·19대 국회에선 잇따라 국민소환제 도입 법안이 발의됐고요. 2014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동시에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헌법에 의해 그 신분이 보장되는 헌법기관입니다. 헌법 제45조를 보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면책·불체포 특권을 규정한 건 정부나 사법부, 각종 이익단체의 입김에서 벗어나 오로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결정을 하라는 취지이죠. 다만,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인 형을 받거나 그 외 범죄로 금고형(징역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노역이 없는 형벌) 이상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국회가 자율적으로 국회의원을 제명하는 길도 있긴 합니다.

지난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거대한 촛불의 파도를 이뤘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거대한 촛불의 파도를 이뤘다. <한겨레> 자료사진

■ 2007년부터 지방의회 의원은 강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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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대체로 4년 임기가 보장되는 ‘철밥통’이며, 대표성을 잃은 대표자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는 8일 박주민 의원실이 마련한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국민소환제에 대한 헌법 위반 시비가 있긴 하지만, 주민소환제를 하고 있으므로 법률로 하면 된다. 부작용 우려가 있으나 주민소환제는 많은 유권자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다만, 국민소환제 하나만으로는 국회 개혁이 어렵다. 선거제 개혁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 변호사의 말처럼 국회의원처럼 투표로 뽑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비례대표 제외)은 리콜이 가능합니다. 2004년 지방분권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소송제 등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2007년부터 주민소환제가 시행됐는데요. 부패·불법 행위를 한 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을 주민들이 투표로 ‘강퇴’ 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시·도지사는 유권자 10% 이상, 기초단체장은 15% 이상, 지방의원은 20% 이상의 찬성으로 소환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고,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과반이 찬성하면 해임됩니다.

2015년부터 경남지역 곳곳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이 진행됐으나 유효서명 0.31% 부족으로 주민소환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부터 경남지역 곳곳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이 진행됐으나 유효서명 0.31% 부족으로 주민소환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 국민소환제 도입 국가는 드물어

직접 민주주의 요소로 거론되는 국민투표나 국민발안과 달리 국민소환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은 50개주 가운데 30개주, 독일은 16개주에서 14개주에서 주민소환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연방국가 단위의 소환제는 없습니다. 서구 사회의 경우, 오랜 시간에 걸쳐 정당 민주화나 유권자 정치 참여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국회의원 통제·견제 장치로서 국민소환제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소환제가 도입될 경우 더 큰 갈등과 불협화음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2012년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국민 소환제도의 도입문제’를 보면 “주민소환으로 인한 불안정과 국가 단위에서의 불안정을 같다고 할 수 없다”며 “국민소환제를 도입할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지 않고 더욱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국회의원이 대중영합적 정책만 선택할 수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국회 스스로 자정기능을 갖추도록 하고, 입법이나 윤리심사 절차 등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것이 먼저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 ‘의회민주주의 고향’ 영국의 정치 개혁

영국에서는 보수-자유민주당 연합정부 시절인 2015년, 정치개혁 법안 중 하나로 ‘의원소환법 2015(The Recall of MPs Act 2015)’을 도입했습니다. ‘하원의원(세습 의원으로 구성된 하원과 달리 650개 선거구에서 선출된 의원)’ 을 유권자들이 직접 리콜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범죄를 저질러 구속·구금되거나 의회로부터 10회 기일 이상 출석 정지명령을 받는 경우, 의회윤리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정되는 경우에 해당 의원 소환이 가능합니다. 지역구 유권자 10% 이상이 6주 동안 이뤄지는 서명에 참여하면,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해당 지역구에서는 보궐선거가 시행되죠.

그런데 영국에선 왜 이런 제도가 시행됐을까요? 2009년 영국 하원의원들이 세금으로 조성되는 수당·활동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 함부로 써왔다는 사실이 폭로됩니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2010년 총선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노동당은 의석수를 대거 잃게 됐죠. 동시에 영국 사회는 정치 개혁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의원들의 부적절한 수당 신청이 재발하지 않도록 의회나 정부·정당으로부터 독립된 ‘독립의회윤리기관(IPSA)’을 설립했습니다.

국회의원 징계 심사를 진행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국회의원 징계 심사를 진행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 제식구 감싸온 국회 흑역사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국회는 스스로 국회의원을 탄핵할 수 있습니다. 국회법 155조를 보면, 청렴·양심에 따른 직무 이행 같이 헌법으로 규정된 국회의원 의무를 저버거나 국회의원 윤리 강령 위반 등의 행위시 △공개회의에서 경고 △공개회의에서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 등 징계가 가능합니다. 국회의원의 징계요구는 국회의장 등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데요. 징계심사는 1991년부터 설치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징계 관련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윤리특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 무기명 투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제명에 필요한 정족수는 대통령 탄핵소추와 마찬가지로 재적의원 3분의2 입니다. 헌정사에서 국회의원 제명이 이뤄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79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가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빌미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게 유일합니다. 국회가 스스로 국회의원을 리콜한 경우는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은 여기자 성추행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됩니다. 사퇴·제명 요구가 커지자 소속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습니다만, 국회 윤리특위는 최 의원을 징계하지 않고 윤리강령을 위반했다고만 의결합니다. 국회 활동과 무관한 혐의라 징계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3개 사회단체는 징계 사유에 인권 관련 범죄·사회윤리적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한 경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에게만 주어지는 징계요구권을 국민에게 확대하고 윤리위반 사건을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곳에서 조사해 징계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원운동을 합니다. 2006년 3월 닷새간 진행된 이 청원에 서명한 시민은 2194명이었습니다. 이후 징계심사와 윤리심사로 나뉘어진 심사를 통합하고,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가 17대 국회부터 설치됐지만 시민들 눈높이에 맞는 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연희 의원은 어떻게 됐냐고요? 그는 항소심에서 선고유예(죄가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기간 동안 형 선고를 미루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이 없던 것으로 보는 것) 판결을 받습니다. 유죄이긴 하나,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진 거죠. 2008년 18대 총선에서 강원도 삼척·동해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또다시 당선됐습니다.

2011년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의 경우엔, 국회 윤리특위에서 의원직 제명안을 의결해 본회의로 넘겼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이 전체 재적의원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강 의원 제명안은 찬성 111명, 반대 134명으로 결국 ‘부결’ 됩니다. 2015년10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성폭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심학봉 의원의 ‘사직의 건’이 통과됐습니다. 애초 심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이 상정될 예정이었습니다. 국회 윤리특위에서 ‘제명안’이 의결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 의원이 제명을 피하기 위해 자진사퇴하면서 ‘사직의 건’이 상정된 겁니다. 국회의원이 스스로 사퇴를 하는 경우엔 재적의원 과반수만 찬성하면 의결됩니다.

현재 국회 윤리특위(moral.na.go.kr)에 들어가보면 여성 의원에게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말한 한선교 의원(경기 용인병)이나 막말로 유명한 김진태(강원 춘천) 징계안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김진태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4차례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됐지만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문헌

<유권자의 권리 찾기, 국민소환제>(이경주·2005)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김선화·2013)

<외국의 주민소환제도>(선거연수원·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