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고기 시국’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권은 나름의 수습방안 마련을 고심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요구 사이엔 천길 낭떠러지가 놓여 있다. 정치권의 조정능력 상실 속에 정부와 시민들이 완충 없는 충돌로 치달으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요구 가운데 명확한 공통점은 ‘고시 철회와 쇠고기 재협상’으로 응축된다. 단서 달지 말고 고시를 철회하고 재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0교시 부활 문제, 고유가에 따른 민생고 문제, 영어 몰입교육, 한반도 대운하 등 잘못된 정책,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다가 이뤄지지 않는 데 따른 실망감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육·경제·사회 등 분야 구분 없이 새 정부에 대한 모든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양상이다. 시위대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가 급증하는 양상도 이런 요구들을 집약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팀장은 “한 달이 넘도록 촛불집회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정부를 총체적으로 불신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력한 버팀목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의 대중적 저항운동은 ‘자발성’과 ‘무정형성’을 특징으로 한다. 20년 전 6·10 항쟁 지도부처럼 조직화된 ‘배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시위의 폭발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시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흡수할 ‘통로’가 없기에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괴력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은 “시민들이 먼저 불을 지피고, 대학생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이 뒤를 받치고 있는 양상”이라며 “정부가 이런 양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여권도 정국 수습책을 모색하고 있다. 2일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회동과 의원총회, 3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당정의 의견을 조율한 뒤 수습책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마련 중인 수습책은 농림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일부 각료와 청와대 수석급 4~5명을 교체하는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밖에 청와대 일부 조직개편, 당·정·청 소통 강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장관 교체는 이미 민심수습 카드로서 효용성을 잃은 상황이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해일 같은 민심을 진정시키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나마 쇠고기 재협상이 시민들의 요구사항 가운데 핵심이지만, 이와 관련해 정부는 여전히 고려의 여지가 없다는 태도다.
사회적 갈등의 제도적 해결 창구인 정치의 실종은 현 시국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만들고 있다. 시민들은 야당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시위 현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홀대받거나 민주당 지지율이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과 동반 추락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세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긴급 정치회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성사 가능성이 낮고 국민적 기대감도 적다.
대중적 항의 움직임의 휘발성은 앞으로 더한 편이다. ‘화물연대’의 파업 움직임과 오는 10일 6·10 항쟁 21돌을 기념한 ‘100만 촛불 대행진’, 13일의 효순·미선양 6주기 등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는 가운데 정권과 국민이 직접 부닥치는 초유의 상황적 특성 탓에 시국 향배의 예측은 더욱 어렵다.

임석규 석진환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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