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자신의 입으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여러 의혹을 확실히 밝히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홍원 국무총리를 통해 지난 28일 ‘대독 담화’를 발표했지만 논란이 계속해서 증폭되자, 31일 직접 이 사건에 대한 확실한 대처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보면, 전반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대한 기존 인식과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정치적 이슈에 묶여 시급한 국정현안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등 여전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자신과 무관한 일로 규정했다. “국민들이 진실을 벗어난 정치 공세에는 현혹되지 않을 것”,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라고 말한 대목들에선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치 공세’로 보는 기존의 상황 인식도 그대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확실한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문책 방침을 비교적 분명히 밝힌 것은 과거에 비해 진전된 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사법부의 판단과 수사결과가 국민들에게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명확하게 나와야 하고, 그런 책임을 맡고 있는 분들이 그렇게 하시리라 믿는다”고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대통령이 수사나 재판 중인 사안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이 사건을 다루는 검찰이나 법원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나름의 선을 그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1세기 대한민국은 누구도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이고, 인터넷으로 모든 상황들이 공유되고 실시간으로 많은 정보가 알려지고 있어 진실을 가릴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소 모호하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 ‘중립 엄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공무원 단체나 개별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지켜나갈 것이고,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런 일련의 의혹을 반면교사로 삼아 선거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재판 결과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도 국민들이 생각하는 상식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오랜 침묵을 깬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정국 주요 현안을 외면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더는 견디지 못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발언 시기 등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독 담화’ 형식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청와대에 부담으로 돌아온 측면도 있다. 주말인 2일 유럽 순방을 떠나게 되면 1주일의 공백이 생기는데, 자칫 이를 방치하고 떠날 경우 여론이 더 악화할 가능성도 고려됐다. 순방 전 정치적 현안을 정리하고 떠나지 않으면 귀국해 해결해야 할 예산안 심사나 법안처리 등 대국회 업무가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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