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보 망루 대덕들께
말없이 흐르는 강물이야말로
이 나라 만고 대덕이셨다
그리하여 이 땅 크고 작은 강들은
아직 거짓을 모르는 아기 눈빛이어서
지친 평야로 스며들기도 하고
외진 곳 목마른 나무들 뿌리를 적셔주기도 하다가
먼먼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멸의 바다를 향해 길 나서는 게
필생의 소원이기도 했는데
오늘 그 소원들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문 논밭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단양쑥부쟁이들이 외롭게 모여 사는
바위늪구비 가는 길이 막힌 것
한번도 마른 적이 없는
영험한 우물들을 찾아가는 길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아아 그곳 기다림이 끝장난 곳
남한강 이포보 허공에 망루 한 채
아주 아프게 지어져야 했다
어떤 이는 겨우 이레치 양식으로
어떻게 염천을 견디겠냐며 눈물 글썽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우리가 수중고혼이 되어서라도
저 아수라들을 물리쳐야 한다며
만신창이 강을 망연히 바라보지만
망루에서 달빛을 이불 삼은 지 하마 스무 날
아직도 강노을이 아름답기에
아직도 어머니 강의 눈빛이 따숩기에
망루의 깃발이 애틋한 것인가
늙은 미루나무 그늘이 장했던 강어귀
누군가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할 때
노여운 빗줄기는 점점 드세지고
망루에 양식이 떨어진 것을 아는 강께서도
끝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강에서는 세상의 온갖 그리움들이
만고 대덕이셨던 것이다
홍일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