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민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1923~96년)의 장편소설인 <언덕 위의 구름>(1968)이 일본 공영방송사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대하드라마로 기획하여 2009년 11월부터 12월까지 제1부(5회)가 방영되었고, 2010년과 2011년 12월에 제2부와 3부가 각각 방영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던 메이지(1868~1912) 초기에 발발하였던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이 주요 배경으로 전개되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 급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의 한-일 관계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역사소설과 역사서는 둘 다 역사적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서술되지만, 독자의 문제, 표현하는 주체(역사가나 작가)와 방법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이것에 의해서 일반 국민의 역사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역사의 해석원리나 그 사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시바의 사후, 역사소설에 내재되어 있는 그의 역사관이 연구자들에 의해 ‘시바사관’으로 거론되면서 현재까지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이 시바사관이 집대성된 작품이 <언덕 위의 구름>이다. 러일전쟁의 승리를 찬양하며 영광스런 메이지국가를 만든 인물상을 부각시키는 픽션으로 현재까지 1800만부가량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시바는 여기에서 1894년 청국과의 전쟁이 조선의 지리적 위치가 주요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반도국가라는 존재가 유지되기 어려운 위치라는 시바의 이론을 드라마에서는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가 1900년 청국의 ‘의화단사건’ 이후 만주에 주둔함으로써 한반도의 식민화를 적극 추진하였고, 이에 일본이 러시아의 위협적인 남하정책에 맞서 일으켰다고 하는 러일전쟁을 시바는 ‘조국방위전쟁’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시바사관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엔에이치케이>의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다. “<언덕 위의 구름>은 메이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년과 같은 희망을 갖고 국가의 근대화에 몰두하고, 국가의 존망에 따른 러일전쟁을 극복한 ‘소년의 국가메이지’의 이야기로서, 오늘날의 일본과 같이 새로운 가치관의 창조에 고뇌하고 분투했던 메이지라는 시대의 정신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일본이 지금부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커다란 힌트를 가져다줄 것이 틀림없다.”
즉 메이지의 부활인 셈이다. 부국강병을 슬로건으로 언덕 위 파란 하늘의 구름(희망과 목표)을 향하여 하나로 뭉쳤던 메이지기의 일본적 정신을 이 대중소설로써 상기시키는 것이다. 메이지란 일본에서는 팽창의 시대로 일컬어지지만, 인접한 국가에서는 침략의 시대로 인식되어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메이지의 부활이 희망을 부여해준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씁쓸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2010년에 일본 국민을 자극하는 대중매체 속 역사소설의 위력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이복임 대전 서구 관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