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걷기 위해 운동복을 입고 아파트 출입구를 나섰다. 주차장을 돌아 폐휴지 수거함 앞을 지나는데 누가 이사를 갔는지 가구들이 많이 버려져 있었다. 그들 중 내 눈길에 잡힌 서랍장이 하나 있었다. 나는 얼른 잡았다. 그날따라 입고 나간 운동복 바지는 너무나 닳아서 자세히 보면 무릎 쪽에 작은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관문을 나서는 나를 보고 아들 녀석이 제발 그 바지 좀 버리라는 잔소리까지 해서 더벅거리며 걸었는데… 서랍장이 아깝긴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몇 발 걸어가는데 자꾸만 눈에 밟혔다. 색깔도 크림색이어서 우리 집의 하얀 벽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들 방에 서랍장이 마땅치 않아 책상 서랍 두 칸을 속옷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더 그랬다. 아파트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해서 한 바퀴도 못 걸었는데 자꾸만 서랍장이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다섯 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아들이 잠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자는 아들을 업고 내렸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들의 운동화 한 짝이 없어졌다. 버스 회사에 전화해 봤더니 종착역을 알려 주면서 그곳으로 가면 분실물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종착역 사무실에는 버스 승객들이 잃어버린 분실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들의 운동화 한 짝이 보였다. 난 너무나 반가웠다. 운동화도 두 팔을 벌리며 내게 달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서랍장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운동장 두 바퀴를 채 못 돌고 나는 아파트 입구로 돌아왔다. 나는 버려진 가구들 사이에 있는 서랍장 앞으로 갔다. 몇 군데 긁히긴 했지만 나무 서랍장이어서 촉감도 좋았다. 집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 누가 가구를 버렸는데 쓸 만해서 집에 가져가게 내려올래?”
‘네, 하고 달려와 가구를 옮겨 주고 아들은 속으로 감동을 받겠지. 그리고 자신도 훌륭한 엄마의 근검 정신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할 거야’라고 짐작했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야구공에 맞은 유리창처럼.
“엄마, 다른 사람이 버린 것을 왜 주워 와요?”
기가 막혔다. 버린 것은 다 쓰레기로 취급하는 아들의 말투였다.
‘내가 자식교육 잘못 시켰구나’라는 반성과 함께 야단을 쳐야겠다는 이성과는 다르게 내 목소리는 타이어에 바람 빠지듯 갑자기 힘이 빠졌다.
“니 방에… 속옷장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아들의 짜증스런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주눅이 든 것이다. 아마 법정에서 ‘능력 없는 부모’ 선고를 받은 피고인의 기분이 이러하리라. 물론 이백만원도 아니고 이삼십만원 정도의 가구를 구입하기가 어려울 만큼은 아니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는 내 생활신조 때문이었다. 서랍장에는 아직 생명이 있었다. 그는 내가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나도 구하고 싶었다.
음료수를 사 가지고 와서 관리실 경비 아저씨들에게 서랍장을 부탁드렸더니 기꺼이 운반해 주셨다. 아들의 방으로 운반된 서랍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파손될 고통에서 구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에게 무안당한 날 위로하고 있었을 수도. 아들을 훈화하려던 나의 이성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들, 니 동생 입양했으니 잘 돌봐줘!”
박은미 광주시 서구 금호동
[독자칼럼]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 / 박은미
- 수정 2010-01-31 20:24
- 등록 2010-01-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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