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김구 선생님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학생들이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하고 있었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발표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같이 김구 선생님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내용을 같이 토의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었으나 처음 ‘민족국가’를 발표할 때보다는 꽤나 수준 있는 자료 제작과 토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리 성적이 특출하지도, 학생들 사이에서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문호 학생이 있었다. 문호는 김구 선생의 인간성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너무나도 훌륭하게 발표하였다. 나는 박수를 쳐 주었고, 아이들도 짤막한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갑자기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그 아이가 왜 울었는지 나는 밤하늘의 흐르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대학 시절 제대 뒤 강의식 수업에만 익숙했던 나는 ‘서양중세사’ 과목에서 발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직 컴퓨터도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자료를 준비해 가는 것조차도 버거웠고 군생활로 익숙했던 기계적 사고로는 전공도 아닌 부전공을 스스로 공부하여 발표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아니 그때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공부한다는 개념조차 잡혀 있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잘해내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당 선생님에게 찾아갔다. 그는 현재 우리들 삶의 모습에 대해 질문하였고 가끔씩 서양 중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발표해야 할 ‘중세 기독교 사회’에 대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조목조목 가르쳐 주지 않았고 계속 주변이야기만 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선생님을 찾아갔으나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좌절한 나머지 달빛 안은 자취방 귀퉁이 계단에 앉아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우면서도 황홀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 중세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선생님이 던져 주신 물음에 대해 고뇌하고 또 인내하여 자료를 준비하여 발표하였다. 점점 배움이라는 것을 지엽적으로 익힌 지식이 아닌,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더불어 익히기 시작했고 비로소 나는 스스로 공부하고 있었다.
요즘 일제평가로 치러진 진단평가가 애초의 목표인 학생들의 정확한 실력을 진단하는 대신 성적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성적 경쟁으로는 아이들에게 여유 있게 사고하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없다. 그러나 문호와 같이 스스로 사고하고 공부하여 발표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 학생들은 자존감이 높아졌고 어떠한 문제도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인내를 가진다면 자기 스스로의 목표를 정하고 진로도 선택하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박찬흥/경북 영천고 교사
[독자칼럼] 공부를 한다는 것 / 박찬흥
독자칼럼
- 수정 2009-05-17 21:44
- 등록 2009-05-17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