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에 대한 호평의 이유는 다양하다.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직장생활을 떠올리게 된다는 측면이 그중 독보적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학교에 있는 대학생들마저 ‘인턴’과 ‘비정규직 사원’이라는, 자신들이 곧 경험하게 될 세계를 미리 간접 체험한다. 수업 시간에 <미생>에 대한 감상을 물었더니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무서워요.”
실제로 <미생>에서 ‘상사맨’의 일상은 하나의 전투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이 전투는 바둑에서처럼 두 사람의 대결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위계서열의 맨 아래에 있는 장그래는 자신의 미숙함에 대고 발사되는 거친 언어의 총탄들을 맞으며 산다. 사원은 대리에게, 대리는 과장에게, 과장은 부장에게, 부장은 전무에게 ‘소리’를 듣는다. 모두가 아군이지만 동시에 적군이며, 계약을 성사시키는 작전 속에서 하나가 되지만 작전이 실패할 때는 처절히 깨진다. 회사는 전쟁터와도 같으며, 대중의 공감은 자신 역시 그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직장이든, 거리든, 대학이든 한국 사회는 그렇게 끝없는 전투가 벌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미생>이 그리는 이 직장 혹은 전장의 풍경은 ‘리얼’하지만, 그것이 그저 가혹한 방식으로 리얼하기만 하다면 이 정도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생>에는 가혹함의 그물을 뚫고 발산되는 ‘휴머니즘’이 있다. 오 과장은 장그래에게 소리를 지르지만, 동시에 다른 팀의 상사들로부터 장그래를 보호한다. 안영이는 장그래의 진정성에 내심 끌리고, 장그래는 독백을 통해 약자로서 살아가는 심정을 절절하게 쏟아낸다. 한국인들이 흔히 말하듯, 직장생활 속 애환의 핵심은 결국 ‘인간관계’인 것이다. 드라마에 옥상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곳이 진짜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혹한 직장생활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결합함으로써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미생>은 사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기도 하다. 가혹한 전쟁터에서도 한 줄기 인간미는 살아있고, 그것 때문에라도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어떤 체념 섞인 확신을 건네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생>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널리 선전되는 가치를 체화하고 있기도 하다. 회사 내의 작은 부정에 민감하지만 큰 틀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부족함 탓으로 여기는 주인공 장그래를 보라.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는 그의 유명한 독백은 전형적으로 자본의 모순을 개인의 ‘열심’ 문제로 환원시키는 자기계발론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의 이름은 ‘그래’(yes), 곧 우리 시대 자본이 외치는 긍정성 그 자체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에 스펙도 없지만, ‘그래,’ 열심히 하면 끝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과장, 김 대리, 장그래로 이어지는, 시청자가 동일시하는 주인공들은 바로 그 ‘열심’과 ‘그래’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이들의 모습에 대한 애틋한 시선은 직장 바깥, 자본 외부에서 펼쳐질 수 있을 다양한 실험적 삶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차단한다. 우리 시대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대중문화는 전쟁터와 같은 기업의 가혹함마저도 모두 개방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그 기업을 동경하게 만든다. 대중문화를 통해 자본의 모순은 이렇게 ‘공감’을 유발하며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진다. 씁쓸하게도, 드라마가 끝나고 실제 우리가 보는 현실은 ‘그래!’를 외치다 지쳐 자살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미생〉섬뜩한 현실, 위로의 판타지 [잉여싸롱#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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