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백제역사유적지구 대표 유적지 8곳.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대표 유적지 8곳.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성정용 | 충북대 인문대학장(고고학)·전 백제학회 회장

 오는 7월4일이면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들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꼭 10년이 된다. 1년 365일 기념일 아닌 날이 없겠지만, 백제엔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

1971년 공주 왕릉원에서 배수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어 대통령까지 찾아오게 만든 옛 무덤 1기! 주인공을 알려주는 지석과 일본산 목관 등 백제 모습을 보여주는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무령왕릉은 백제 역사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백제는 참 기구하면서도 오뚝이 같은 나라처럼 보인다. 고대국가에서 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일 터인데, 백제 왕 31명 가운데 최소한 6명(분서왕, 책계왕, 개로왕, 문주왕, 동성왕, 성왕)이 이런저런 이유로 칼끝에 목숨을 잃고 1명(의자왕)은 머나먼 이국땅으로 끌려가 생을 마치고 만다. ‘삼국사기’에 나온 700년 역사를 어떻게 이어갔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지만, 우리에게 남은 백제 유산은 불운하고 기구한 모습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어 보인다.

광고

처음 한강벌에 자리 잡은 백제의 수도 한성은 당시 중국 수입 도자기가 발에 챌 만큼 많은 국제적 도시였다. 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같은 엄청난 토목 유산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475년 고구려 침입으로 한성이 함락당하자 백제는 척박한 웅진(공주)으로 천도한다.

재건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백제는 무령왕 치세를 지나며 다시 강국이 되고, 538년에는 사비(부여)로 천도해 대규모 계획도시를 조성하게 된다. 그 결과 공주에는 왕성으로 여겨지는 공산성과 무령왕이 잠든 송산리 왕릉원 등이 있고, 부여에는 계획도시 사비를 감싸는 외곽(나성)과 왕성(부소산성), 불운의 성왕을 모신 능산리 왕릉원과 오층석탑으로 유명한 정림사지 같은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설화가 남은 익산에도 백제 불교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미륵사지와 함께 왕궁리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광고
광고

이외에도 멋진 균형감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부여 능사 출토 금동대향로, 왕흥사지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화려하고 정교한 금은 사리기, 백제 탑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등등 백제의 유산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이 새로 만든 궁실을 두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일컬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문장만큼 백제를 잘 상징하는 말도 없을 듯하다.

이들은 백제가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이를 계기로 2017년부터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산하기관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이 공주에 설치돼, 백제 세계유산과 국가 사적을 체계적으로 조사·정비하고 관리할 토대가 마련됐다.

광고

추진단의 역할은 컸다. 저녁때면 조명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공산성 경관을 만들어 냈고, 능산리 왕릉원의 백제 당시 모습을 되찾는 작업을 지속했으며,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복원도 마무리했다. 백제 왕도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해 5월 국가유산청 개편 과정에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이 없어지고, 고도보존육성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백제 왕도가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필자와 지역민들에게는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유산 10주년을 맞아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함에도, 오히려 조직을 축소 운영하면서 백제 왕도를 세계에 내놓을 만큼 더 잘 가꿀 수 있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라유산의 보고인 경북 ‘경주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래 체계적 정비·보존을 위해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2019년 제정됐다. 국가유산청 산하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도 경주에 설치돼 지금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뿐만 아니라 백제도 우리 역사의 소중한 자산이거늘, 왜 신라만을 위한 특별법은 있고 백제는 없는 것일까? 혹 세계유산에 등재됐음에도 조금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신라왕경 특별법’과 같이 ‘백제왕도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백제 유산을 소중하게 가꾸어 온 ‘백제왕도 추진단’도 부활하기를 관련 전공자로서 간절히 소망해 본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