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가 빈사 상태의 시장에 ‘모르핀’ 투여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지만, 시장의 고통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부실 금융기관 자금 지원이나 인수에 이어, 시장의 부실자산을 사들이겠다는 구제금융안도 얼어붙은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녹이지 못했다. 급기야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어음을 사들이겠다고 밝히고, ‘최후의 수단’으로 불린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시장은 아직 불안과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계속 ‘더 많은 돈, 더 강한 정책’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8일(한국시각) 동시에 기준금리를 0.5~0.25%포인트 내렸지만, 이날 뉴욕 다우지수는 2%, 유럽 주요 증시는 5~6%나 떨어졌다. 다음날인 9일에도 유럽 증시는 개장 초 소폭 오름세를 보였으나 결국 1~2%대 하락으로 마감했다. 다우지수도 오름세로 반등할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련의 처방전에 눈 한번 꿈벅이다 다시 감아버린 모양새다.
시장의 의구심은 크게 세 가지다. 약발이 먹힐까? 부작용은 없을까? 경기후퇴를 막을 순 없다! 이번 금융위기의 소방수로 불리는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조차 “소용돌이가 빨리 끝나지 않고, 앞으로 중대한 도전들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 부실로 병든 시장의 상처가 깊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일 “금융기관들이 9월 말까지 미국에서 발행된 채권과 대출 손실분 5600억달러를 털어냈지만, 앞으로 9400억달러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돌지 않는 게 문제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춘다고 시장의 불신과 불확실성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의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소식에도,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리보금리(런던은행간 금리)의 하루짜리 달러대출의 경우 전날보다 1.44% 오른 5.38%를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주춤거리던 세계경제가 금융위기에 전염되면서 후퇴기에 접어든 것도 금리인하 등의 호재를 무색케 하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는 “경기후퇴 우려가 금리인하를 압도했다”고 9일 지적했다. 켄 메이랜드 ‘클리어뷰 이코노믹스’ 대표는 <에이피>(AP) 통신에 “금융위기가 오늘 당장 잠잠해질지라도, 경기후퇴를 잠재울 순 없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되레 저금리로 인한 자산 버블과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2001년 ‘닷컴 버블’과 ‘9·11 사태’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저금리의 장기 충격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카드’는? 금리인하 이후 폴슨 재무장관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모든 권한을 사용하겠다”며 “은행 감독기관이 보호 대상이 아닌 예금까지 모두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권한’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공황 때 취해진 조처다. <뉴욕 타임스>는 9일 정부 관리의 말을 따 “계속된 시도에도 꽁꽁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지 못해 온 미국 재무부가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은행들의 지분 소유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은 “지금 시점에서, 폴슨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더욱 극단적인 처방들에 호소해야만 한다”고 보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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