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동통신 서비스에 새로 가입하거나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바꾸러 케이티(KT) 대리점을 찾으면 팬택의 안드로이드폰 ‘이자르’를 권하기 일쑤다. 한결같이 디자인과 성능 모두 “최고”라는 얘기를 덧붙인다. 반면 대리점 밑에 딸린 판매점에서는 오히려 삼성전자의 ‘갤럭시에스(S)’와 팬택의 ‘베가’를 최고 제품으로 추천한다. 판매점에서 이자르를 찾는 고객에게는 “가격이나 기능 모두 손님에겐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일축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 그럴까?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케이티 개인고객사업본부의 월별 ‘마케팅 정책’과 ‘중점 추진 사항’ 문건을 보면, 케이티는 8월부터 이자르 판매에 집중하는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전국 2600여개 대리점에 이자르를 ‘하루 한 대 이상’ 판매하도록 목표까지 줬다. 매장 평가 때 ‘아이폰’과 ‘넥서스원’ 등을 한 대 팔면 0.5점을 주지만, 이자르는 대당 1점씩 쳐준다. 대리점 입장에선, 우수 대리점으로 평가받기 위해 케이티의 판매전략을 거스르기 힘든 구조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지난 6월 출시된 이자르는 8월 들어 하루 판매량이 2000대까지 늘어났다. 7월까지만 해도 평균 1000대를 넘지 못했던 것과는 큰 차이다. 케이티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에스와 아이폰4 등 인기 스마트폰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현재 확보한 스마트폰 가운데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이자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정 단말기 우대 정책은 이미 주문해 받은 물량을 소진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편다”며 “모든 이동통신 업체들이 월 내지 분기 단위로 특정 단말기 우대 정책을 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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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점이 처한 사정은 이와는 다르다. 판매점의 경우엔 통신업체가 펼치는 마케팅 전략보다는 가입자 유치 수수료와 제조업체 보조금의 크기에 상대적으로 더 영향을 받는다. 이동통신 업체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대리점과 달리, 판매점은 특정 이동통신 업체의 이해관계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리점의 경우, 직접 가입을 유치한 고객이 내는 요금의 7~8%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지만, 판매점은 대부분 가입자 유치 수수료와 제조업체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편이다. ‘최고’라며 추천하는 모델이 달라질 수 있는 건 물론이다.

실제로 요즘 판매점들은 상대적으로 갤럭시에스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손님에게 갤럭시에스 단말기를 권했을 때 제조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와 보조금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원의 한 판매점 직원은 “삼성전자 단말기를 팔면 대당 20만~3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데 견줘 아이폰은 1만원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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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어떤 휴대전화를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손님들에게 권하는지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과 제조업체의 보조금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까지 최고 단말기로 통하던 모델이 이동통신 업체의 월별 마케팅 전략이 바뀜에 따라 하룻만에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런 복잡한 국내 휴대전화 유통구조는 외국산 휴대전화의 국내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