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9일 17개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23건 24조1천억 원 규모)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된 새만금국제공항 조감도.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는 지난 29일 17개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23건 24조1천억 원 규모)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된 새만금국제공항 조감도.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는 어제 17개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23건 24조1천억 원 규모)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흔히 ‘예타’라고 부르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재정의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이름 그대로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미리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제38조1항은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재정 지원 규모 300억 원 이상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예타를 받아야 할 각 호의 사업 중 첫번째로 ‘건설 공사가 포함된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건설이 재정 낭비가 가장 우려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타 제도는 무분별한 재정사업을 방지해 국가 재정의 낭비를 막는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예타 결과 타당성이 낮게 나와 사업에 제동이 걸린 측에서는 예타 제도에 불만을 갖고 비판을 하기 마련이다. 일리 있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성만 따지느라 지역 균형발전은 경시한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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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교통시설을 확충하는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인구가 집중되고 물류 통행량이 많은 수도권은 경제성이 높게 나오겠지만, 그렇지 못한 지방의 경우엔 경제성이 낮게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수도권에만 사회기반시설을 짓고 지방은 마냥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성 분석은 특성상 현재 상황을 중시하고 미래 변화엔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 낙후지역을 살리려면 일단 일정 수준의 공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만 그 바탕 위에 민간투자가 활성화되고 인구가 유입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 즉 애초에는 경제성이 떨어져 보이더라도, 이런 미래 변화까지 포함한다면 낙후지역에 대한 공공 인프라 투자는 수지맞는 사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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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 제도’ 취지, SOC 낭비 막는 것

물론 예비타당성 조사 항목에는 ‘경제성’ 이외에 ‘지역 균형발전’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경제성이 떨어져도 낙후지역 발전에 필요하다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이와 함께 정책적인 고려를 담을 수 있는 ‘정책적 분석’ 항목도 있다) 다만 경제성 항목의 비중이 큰 탓에 경제성이 ‘다소’ 떨어지면 몰라도 ‘몹시’ 떨어지면 균형발전 필요성이 크더라도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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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균형발전 및 기타 정책적 고려를 포함한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경제성이 예타의 중점에 놓여 있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국가사업 진행 여부를 수지타산만 따져서 결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예타를 의무화한 국가재정법 38조는 2항에서 예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다.

정부는 어제 발표에서 예타 면제 이유 중 하나로 ‘지역 균형발전’을 들었다. 따라서 정부의 예타 면제 결정은 그 자체로는 합법적인, 권한 내의 결정이다.(물론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이 정책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정부의 정책 결정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의 면제 조항을 적용해 예타를 받지 않은 경우는 과거에도 많았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간 60조3천억 원(88건) 규모의 사업이, 박근혜 정부 4년간(2913~2016년) 23조6천억 원(85건) 규모의 사업이 예타 면제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난 2년간 29조6천억 원(38건) 규모의 사업이 예타 면제를 받았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표 자료에서 재인용)

예타 면제사업 건수와 규모가 이처럼 많고 큰 것은 예타 대상에는 SOC 사업 이외에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은 아동수당 13조4천억 원, 일자리 안정자금 3조 원 등 복지 분야에 집중됐다. 물론 복지 분야라도 예타가 필요할 수는 있겠으나, 복지는 본질적으로 경제성을 따지기 어려워 실효성이 낮다. 애초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도입하게 된 배경도 SOC 건설 사업의 낭비를 막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유형의 사업과는 달리, SOC 건설 사업은 예타를 받는 것이 원칙이고 면제는 정말 아주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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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예외적일 때만 면제’ 불문율 깨

SOC 건설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가 예외적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불문율이 깨진 건 이명박 정부 때다. 이명박 정부는 ‘광역경제권 발전을 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와 ‘4대강 사업’을 수행하면서 대략 40조 원(26건)에 이르는 SOC 건설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했다. 이명박 정부를 흔히 ‘토건 국가라고 부르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4대강 사업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된 데는 이러한 예타 면제도 일조했을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번 예타 면제는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과연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30대 선도 프로젝트 사업의 예타 면제와는 흡사하다.

이번 SOC 건설 사업 예타 면제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강변하든, 명분이 약한 건 분명하다. 일자리를 늘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법령이 정한 예타 면제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지역 균형발전’은 법령이 정한 면제 사유에 해당하지만, 이번처럼 한꺼번에 대규모로 모든 지자체에 선물 주듯이 골고루 면제해주라는 것이 그 취지는 아닐 테다.

SOC 사업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만일 SOC 투자가 국민을 위한 효과적인 재정 사용이라면 당연히 환영한다. 예타는 이를 판단하기 위한 기본 장치다. 그래서 이번 예타 면제 결정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번에 이뤄진 예타 면제 결정으로 인해 재정 낭비가 초래되는 건 피할 수 없다. 물론 면제받은 사업 중에는 긍정적인 것, 이를테면 낙후지역 발전과 복지를 위해 정말 필요한 사업이지만 예타를 받으면 경제성 부족으로 통과하지 못할 사업도 있을 게다. 하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좋을 사업, 그래서 예타를 거치면 통과되지 않을 사업도 분명 존재한다.

부적당한 사업 선정으로 예상되는 재정 낭비 못지않은 문제는, 이로 인해 재정 운용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점이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도, 견실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재정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재정의 역할 확대에는 ‘내가 낸 세금을 알뜰하게 쓸 것’이라는 믿음이 그 기반을 형성한다. 이 기반이 흔들리면 재정 역할의 확대는 요원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재정도 제대로 운용하기가 힘들어진다. 재정 민주주의 역시 꽃피울 수 없다.

이번 정부는 과거 정부와는 달리 원칙을 중시하고 절차를 준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이번 결정에 정책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을 번복하기는 어려울 지 모른다.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면 이후의 과정만이라도 낭비가 없게끔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 정치가 무리를 하더라도 행정은 최선의 노력으로 수습해야 하는 법이다. 이번 면제 결정이 그래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려 한다.

시행 과정 부실과 낭비 줄이려면

첫째, 충실한 본 타당성 조사, 철저한 총사업비 관리.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친 SOC 사업은 다음 단계로 본 타당성 조사를 거치게 된다. 예타가 사업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예비적인 조사라면 본 타당성 조사는 본격적인 사업 착수를 위한 조사다. 그래서 본 타당성 조사는 예타보다 훨씬 상세하게 이뤄지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예타를 통과해서 예산까지 배정받은 다음에는 구태여 성심껏 본 타당성 조사를 수행할 유인이 없기에 본 타당성 조사의 실효성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의 경우는 충실한 본 타당성 조사의 중요성이 매우 클 것이다.

국가재정법 50조는 SOC 사업 담당부처가 총사업비와 사업 기간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리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후 사업비 증가 폭이 큰 사업 등에 대해서는 기재부 장관이 사업 타당성 재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재부 예산낭비신고센터에 예산 낭비 사례로 접수된 사업으로서 예산 낭비의 개연성이 크다고 인정되는 사업도 타당성 재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들은 타당성 재조사 역시 면제받을 수 있는데, 그 경우라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및 재검토는 거쳐야 한다.

이처럼 법규에 명시된 제도들만 제대로 활용해도 사업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실과 낭비는 제법 막을 수 있다. 최소한 이것만은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

둘째, 감사원의 감사대상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건 감사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다. 이를 위해 감사원은 불법부당 사항에 대한 합법성 감사는 물론이고 때로는 정책성과를 높이기 위한 성과감사도 실시한다. SOC 사업은 이러한 합법성 및 성과감사의 주요 대상이다. 과거에도 감사원은 SOC 사업 감사를 통해 예산 낭비를 막고 사업 효과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예타 면제가 자칫 예산 낭비로 귀결될 것이라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만큼, 감사원의 특별 감사대상으로 포함해서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제반 과정의 투명한 공개.

예산 낭비를 막는 핵심은 투명한 공개다. 사업 진행의 제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은 모든 재정사업에 요구되는 것이지만, 이번 예타 면제 사업들은 더더욱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투명한 공개’에는 상세한 내역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이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포함된다. 기재부의 ‘열린재정’이든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365’든, 혹은 다른 공공 사이트라도 상관없다. 어디 사이트든 한 곳을 통해서 이번 예타 면제 사업들의 추진 과정에 관한 모든 상세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정보에는 재정공개에 관한 법령이 규정하는 것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이 담겨야 할 것이다.

충실한 후속 조치 뒤따라야

감사대상으로 지정해서 모니터링하거나 법령이 규정하는 이상의 상세정보를 쉽게 접근하도록 공개하라는 건 특별한 요청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예타 면제 결정 역시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정책 결정은 아니고 재정 낭비의 우려가 큰 만큼, 특별히 모니터링하고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타 면제 결정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후속 조치가 충실하게 이뤄진다면 우려되는 예산 낭비는 많은 부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면제 결정이 천명한 대로 낙후지역의 발전과 주민복지 향상에도 제법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후속 조치가 앞으로의 SOC 투자 사업 관리에 대한 전범이 된다면, 이번 결정이 초래할 정부 재정에 대한 신뢰 상실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족

예타 면제 관련 뉴스를 보다가 한 지역 주민이 ‘○○사업 예타 면제 사수’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모습을 봤다. 예타는 국민을 위한 재정을 구현하도록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낙후지역을 차별하는 제도로 여기는 듯해서 충격을 받았다. 예타의 필요성과 긍정적인 기능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균형발전 혹은 공공성에 대한 고려가 다소 취약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참에 예타의 취지를 살리면서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다. 참고로 예타 통과 여부가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타는 어디까지나 결정을 돕는 보조자료다. 예타를 통과하지 못 해도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다만 예타를 넘지 못한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꺼릴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대규모 SOC 사업은 예타를 거치도록 하되, 지역균형발전 등 특정 사유에 해당할 때는 기존의 예타 통과 결정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현행 결정 방식(전문가 AHP)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