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암운이 걷혀가는 탓일까. 불과 1년 전 신자유주의 위기론과 종언론이 횡행하던 진보학계에 자성과 모색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엄밀해야 할 현실 진단에 정치적 기대와 소망을 과도하게 개입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가 하면, 신자유주의를 지나치게 단면적으로 이해했던 게 아니냐는 자기성찰도 눈길을 끈다. 이들의 이야기를 거칠게 요약하면 ‘생각보다 신자유주의는 복잡하고 강했다’는 것이다.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쪽은 경제학자들이다. 온건한 케인스주의자는 물론 급진적인 공황론자까지 당시의 세계적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나 ‘파국’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지금의 성찰이 1년 전 종언론과 위기론을 쏟아냈던 학자들이 아니라 당시에도 ‘신자유주의 위기론’을 승인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중도좌파 학자들한테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위기의 폭과 심도가 유례없이 크다 보니 감당하기 어려운 수위까지 나간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모든 문제의 기원을 신자유주의로 돌리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연대, 흐름 바꿀 힘 없고자본은 위기관리 능력 커져

전창환 한신대 교수나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도 비슷한 견해인데,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흐름 역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이유를 전 교수는 “흐름을 역전시킬 정도로 시민·노동진영의 연대가 강력하지 않다”는 점을, 박 교수는 “위기가 처음부터 수익률의 침체 같은 실물경제의 위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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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2008년 하반기의 상황을 ‘신자유주의 위기’라 규정했던 쪽이나 단순히 ‘금융위기’라 진단했던 쪽 모두 경기가 이처럼 단기간에 회복세로 전환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로 “자본과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향상됐다”(전창환)는 점과, 중국이라는 완충국가의 존재 등을 꼽고 있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금융화와 대외개방의 정도에 따라 위기에 따른 충격과 회복의 속도 역시 다르다”(이병천)는 사실이다. 이 점은 신자유주의가 지역→국가→권역→세계라는 층위마다 각기 달리 작동하며, 그 효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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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의적 접근방식 한계정치·문화적 뿌리 해부해야

학자들은 이러한 복합성이 신자유주의 자체에도 존재한다고 보는데, 신자유주의를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정책, 축적체계 등 복합적 성격을 띤 역사적 성장양식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같은 시장경쟁의 원리를 중시하는 나라들이라 해도 축적체계는 금융이 주도할 수도 실물이 주도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정책 수준에서는 감세나 민영화에 주력할지, 아니면 다른 건 다 놔두고 노동유연화에 매달릴지는 그 나라의 역사·제도환경, 정치적 세력관계의 양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경제학적 접근을 벗어나 인간학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들여다보는 흐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사회학·문화연구 분야에서 시도되는, 일종의 ‘신자유주의 다시 보기’이다. ‘신자유주의적 삶의 형성과 확산’이란 주제 아래 자기관리와 가족경영, 교육 등 미시적 삶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인간형 빚어내기’ 메커니즘을 분석한 학술지 <경제와 사회> 최근호나,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이란 차원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분석한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의 책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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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다층적 면모를 그 기원에서부터 분석해보는 크리스티앙 라발 등 외국 학자들의 최근 저작들도 번역을 기다리고 있다. 그린비 출판사의 ‘신자유주의의 프리즘’ 총서를 기획한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사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경제주의적 접근방식의 한계가 분명해진 지금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위력과 정치·경제·문화적 뿌리에 근본적인 해부의 칼날을 들이댈 때”라고 말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신자유주의1970년대 세계 자본주의의 불황을 거치며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조류. 개인의 책임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자유시장 원리의 전 사회적 확산을 지지한다. 국가 정책에서는 감세·민영화·유연화·개방화와 산업·복지정책의 축소 등으로 나타난다. 시장근본주의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