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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연예

“정주영·이병철·김우중…재벌들 ‘외압’ 막으려 결방작전 폈다”

등록 :2018-05-13 11:00수정 :2018-05-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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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첫 기업드라마 ‘야망의 25시’
대경그룹 조웅-현대 정 회장-최불암
거산그룹 최일제-삼성 이 회장-정욱
우일실업 박기우-대우 김 회장-조경환
“극중 이름 대신 실명 부르며 녹화”

‘사채업자 김유장’ 실존 모델도 궁금해
탤런트 박규채 능청스런 유행어 ‘화제’
“당신 미인이야요” “나 돈 없시요”

첫회 ‘세 회장 공통질문’으로 시작
사업 결정적 계기·전환점·철학 ‘답변’

방영 4회만에 자체조사 시청률 60%
지인 동원한 ‘압력·회유·간섭’ 빗발
김기팔 작가 결단으로 ‘5·6회’ 결방
‘외압 의혹’ 퍼지자 ‘격려 전화’ 쇄도
1983년 3~6월 김기팔 작가-고석만 연출은 첫 기업드라마 <야망의 25시>에서 현대·삼성·대우 3대 재벌그룹의 성장 이야기를 중심으로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 한국 경제의 명암을 조명했다. 왼쪽부터 정주영(최불암), 이병철(정욱), 김우중(조경환) 등 실제 ‘회장님’을 닮은 인물들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뜨거운 화제와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1983년 3~6월 김기팔 작가-고석만 연출은 첫 기업드라마 <야망의 25시>에서 현대·삼성·대우 3대 재벌그룹의 성장 이야기를 중심으로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 한국 경제의 명암을 조명했다. 왼쪽부터 정주영(최불암), 이병철(정욱), 김우중(조경환) 등 실제 ‘회장님’을 닮은 인물들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뜨거운 화제와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17회) ‘야망의 25시’

▶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83년 문화방송 <야망의 25시>는 ‘한국경제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그려 방송 직후부터 안팎의 직간접 압력에 시달린 작가와 제작진은 3주째 ‘자진 결방’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과열반응을 식혀야할 정도였다.
1983년 문화방송 <야망의 25시>는 ‘한국경제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그려 방송 직후부터 안팎의 직간접 압력에 시달린 작가와 제작진은 3주째 ‘자진 결방’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과열반응을 식혀야할 정도였다.

?“<문화방송>(MBC-TV)를 통해 방영되는 <야망의 25시>가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반인에겐 막연하기만 하던 한국의 대표적 재벌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씨 등이 실제 모습과 흡사하게 등장할뿐 아니라 1970년대 고도성장 과정에서나 볼 수 있던 흥미진진한 거부들의 얘기가 논픽션에 가깝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의 예비재벌을 꿈꾸는 대기업의 말단사원들은 회사 업무까지 뒤로 미룬 채 드라마 방영시간만 기다리고 있다는데…‘야망의 25시’를 추적해본다.”

1983년 <주간한국>(6월19일치·김경희 기자)은 ‘인기 폭발의 경제 드라마 <야망의 25시> 제작 뒷얘기’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를 냈다.

“일단 하나의 드라마가 제작되면 방송국에선 그 홍보에 열을 올리기 마련. 인쇄매체에 한 줄이라도 더 언급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예외인 드라마가 있다. <야망의 25시>다. 방송사쪽에서는 오히려 이 드라마가 언급되길 꺼리는 눈치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명이기는 하지만 실존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는 만큼 그들과의 관계가 미묘하기 때문이다.”

대경그룹 조웅(최불암)·거산그룹 최일제(정욱)·우일실업 박기우(조경환) 회장, <야망의 25시>에 등장하는 세 재벌에게 극중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다. 분장실에서부터 촬영 현장, 제작 스탭들, 기자들 그리고 시청자 모두 ‘정주영’·‘이병철’·‘김우중’으로 부른다. 세상 사람 모두 그렇게 부르면 그것이 이름이다.

<야망의 25시>의 극을 이끌어간 주인공은 사채업자 김유장(박규채·가운데), 부인(엄유신·왼쪽)과 유학파 둘째아들 수민(길용우·오른쪽)이었다. ‘김유장’의 실존 모델이 누구인지도 화제거리였다.
<야망의 25시>의 극을 이끌어간 주인공은 사채업자 김유장(박규채·가운데), 부인(엄유신·왼쪽)과 유학파 둘째아들 수민(길용우·오른쪽)이었다. ‘김유장’의 실존 모델이 누구인지도 화제거리였다.
정작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인물은 또 다른 주인공 ‘김유장’(박규채)의 실제 모델이다.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현금 동원력이 대단하며, 현금에 대해선 샤일록보다 더 지독한 사채업자로 등장한다. 오가는 얘기를 들어보면 에스(S)기업의 조아무개씨가 거론되기도 하고, 에스기업으로 돈을 벌어 부동산 재벌이 된 정아무개씨가 모델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드라마의 분위기로 보면, 조씨가 평안도 출신으로 너무 흡사하다는 추정하는가 하면, 김유장의 아들 김수민(길용우)의 캐릭터가 유학을 다녀온 것을 근거로 장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3의 주장도 들려온다. 최불암·정욱·조경환은 삼대 재벌 총수를 모델로 삼은 반면, 김유장은 1970년대 부동산 투기 바람을 탄 몇몇 인물들을 복합적으로 뜯어 맞춘 허구의 인물일 것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당신 미인이야요”, “나 돈 없시요”에 이어 “당신 사기꾼이야요”를 능청맞게 해대는 탤런트 박규채의 해학적 연기와 유행어 앞뒤의 김기팔식 풍자가 <야망의 25시>만의 독특한 향취를 풍기고 있다. 이 또한 드라마의 맛이다.

분장실도 즐겁다. 길용우의 상대역으로 조한려(민경자)·이은정(오성그룹 회장 딸)·크리스티나(미국 여인)를 각각 ‘중국 도라이, 한국 도라이, 미국 도라이’로 부르며 즐기는데, 실제로 세 여성 연기자의 국적이 중국·한국·미국이다.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우리와 같이 세상을 재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는가? <야망의 25시>는 1·2회에서 공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세 명의 재벌에게 공통의 질문을 던져 사업가로서 결정적 계기·전환점·철학을 들여다 보았다.

맨주먹으로 당대 창업에 성공한 현대그룹 정주영(오른쪽 다섯번째 인물) 회장은 평생토록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직접 뛰어다녔다. 1982년 이한림 건설부 장관 일행과 울산~언양간 고속화도로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맨주먹으로 당대 창업에 성공한 현대그룹 정주영(오른쪽 다섯번째 인물) 회장은 평생토록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직접 뛰어다녔다. 1982년 이한림 건설부 장관 일행과 울산~언양간 고속화도로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첫번째 정주영. “무일푼으로 고향에서 뛰쳐나온 내가 당대에 어떻게 이처럼 큰 사업을 이룰 수가 있었나 미심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둘 것은 나는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사회에서, 세계 경제사회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돈을 모아서 돈만으로 이만큼 기업을 이루려 했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다 1936년 26살 때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사진은 1951년 일본 방문 때 모습. 호암재단 제공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다 1936년 26살 때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사진은 1951년 일본 방문 때 모습. 호암재단 제공
두번째 이병철. “사람은 일생을 통해 몇 번은 전기를 맞게 마련이다.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때도 있지만 느닷없이 찾아 올 때도 있다. 그 느닷없이 찾아오는 전기를 어느날 맞게 되었다. 그날도 골패 노름을 하다가 밤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밝은 달빛이 창 너머로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나이 26살,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달빛을 안고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심정이 되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펼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80~90년대 전용기를 타고 쉴 새 없이 나라 안팎을 날아다녔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펼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80~90년대 전용기를 타고 쉴 새 없이 나라 안팎을 날아다녔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번째 김우중.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지구촌이라 불릴 정도로 좁아졌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가 보지 않은 길이 있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도 많다. 그 길을 가고, 그 일을 해내는 용기 있는 개척자들에 의해 역사는 조금씩 전진해온 것 아닌가. 젊은이여! 우주를 생각하고 큰 뜻을 품어보라.”

S# 첫 장면부터 드라마는 폭발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고속도로 공사장 터널을 뚫는 굉음과 흙무더기는 산야를 뒤엎고, 그 먼지 사이로 짚차가 돌진해 들어온다. 노동자들 부산하게 정리하는 중에 짚차가 서고, 최불암이 뛰어내린다. 작업복에 워커 차림이다. 저쪽에서 현장감독으로 보이는 김용건이 뛰어와 경례하는데, 그 순간 뺨을 후려치며, 공사 기간 못 맞춘 것과 안전장치 미비상태 폭파를 질타한다. 설명할 틈도 없이, 그는 다시 짚차에 올라타고 먼지를 날리며 떠난다.

S# 김유장의 거실, 박규채와 부인 엄유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둘째아들 길용우가 가정교사 심양홍과 ‘명심보감’을 공부하고 있다. 박규채, 가르치는 심양홍에게 불쑥 묻길 “초지일관이 영어로 뭐가?” 대답 못하는 심양홍, 길용우는 웃기만 하고.(심양홍과 길용우의 드라마 집중도와 호흡은 ‘야망팀’ 모두의 귀감이 되었다.)

S# 의성 요정집, 젊은 정욱과 몇몇 친구들, 교자상의 걸판한 술안주를 옆으로 제켜놓고, 기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패노름에 빠져 있다. 야심한듯 하품하는 기생도 보이고….

S# 호텔 커피숍, 한적한 자리에 박원숙이 사채업자로 보이는 노 신사에게 영수증을 써주고 수표 봉투를 받는다. 그 뒤쪽 로비로 조경환 일행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곧이어 박원숙이 그쪽으로 향해 간다.

1983년 <야망의 25시>의 인기는 재벌들의 성공에 가려진 이면도 함께 그린 덕분이었다. 극중 조웅 회장의 내연녀(김소원·맨 왼쪽)와 혼외 장남(김용건·맨 오른쪽)도 실제 한 재벌 회장의 가족사를 모델로 설정한 것이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1983년 <야망의 25시>의 인기는 재벌들의 성공에 가려진 이면도 함께 그린 덕분이었다. 극중 조웅 회장의 내연녀(김소원·맨 왼쪽)와 혼외 장남(김용건·맨 오른쪽)도 실제 한 재벌 회장의 가족사를 모델로 설정한 것이었다.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S# 손바닥만한 마당을 낀 세칸짜리 한옥, 좁은 대청마루에서 저녁밥 끝에 벌어진 술상, 김용건과 어머니 김소원, 홍순창과 신금매(신신애)가 모여 있다. 화제가 최불암에게 모아지자 김소원은 울고 김용건은 외면한다. 누가 보아도 내연녀와 그의 자식임이 분명하다.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홍순창·신금매 부부는 덩달아 서럽다. 홍순창이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신금매에게 노래 한 곡조 시킨다. 싫다고 사양하다가 억지로 하는데, 그 좁은 마루에 제대로 서서 노래를 시작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풀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우는…” 김소원이 우니 김용건도 운다. 노래를 시킨 홍순창도 덩달아 운다. 신금매는 눈을 감고 2절까지 간들어지게 부른다.

<야망의 25시>는 인기를 몰고 왔다. 1회와 2회가 방영된 첫 주에는 찬반 논란이 펼쳐졌으나,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둘째주 3회와 4회가 나가니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선풍적이었다. 드라마의 시청률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자체 조사로 60%가 훌쩍 넘어섰고, 무엇보다 제작 부서로 걸려오는 문의나 격려 전화의 빈도도 폭발적이다. 일반 홈드라마나 인기 있다는 일일연속극에는 대부분 여성 시청자의 전화가 많다. 그러나 <야망의 25시>에는 유독 남자들 특히 샐러리맨이나 교직에 종사하는 시청자들의 전화가 많다. 예상대로 “분명 외부의 압력이 많을 거다. 거기에 굴하지 말고 힘내라” 혹은 “그 사람들 훨씬 나쁜 놈들인데 왜 그렇게 미화시키느냐”,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 줄 수 없느냐” 등등 격려성 비난의 전화다.

<제1공화국>의 이기붕, <거부실록>의 공주갑부 김갑순에 이어 <야망의 25시>의 김유장으로 고석만(왼쪽)과 다시 호흡을 맞춘 박규채(오른쪽)는 특유의 해학 넘치는 연기로 또 한번 유행어를 낳았다. 83년 <야망의 25시> 스튜디오 녹화 때 모습.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제1공화국>의 이기붕, <거부실록>의 공주갑부 김갑순에 이어 <야망의 25시>의 김유장으로 고석만(왼쪽)과 다시 호흡을 맞춘 박규채(오른쪽)는 특유의 해학 넘치는 연기로 또 한번 유행어를 낳았다. 83년 <야망의 25시> 스튜디오 녹화 때 모습. 사진 필자 고석만 제공

그때 김기팔 작가로부터 의논할 일이 있으니 동산리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1·2회 나갈 때는 의례히 그러려니 했는데, 3·4회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문화방송의 제작 간부 라인은 물론이고 타부서 지인들까지 집중적으로 압력·회유 전화가 몰려온다는 것이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두세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법이 특이하다. 직접적인 압력은 일체 하지 않고 지인을 통한 압박 효과. 요즈음의 에스앤에스(SNS)와 비슷하다.

긴 고민 논의 끝에 지금의 과열상태를 식히고, 또 다른 형태의 압력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김기팔 작가는 ‘5·6회 결방 카드’를 제시했다. 방송인으로서는 자해행위다. 자기 자식에게 생채기 나는 걸 그냥 보고 있는 어미가 되고 말았다.

방송 3주째 불방을 예고하자, 시청자들의 비난이 심각하게 쏟아졌다. 제작진의 무책임을 비난한다. 중간 간부부터 고위 임원들까지 질책 또한 심했다. 아울러 모든 책임을 제작진과 작가에게 미뤘다. 우리는 비난의 소리를 들으며 대책을 수립했다. 기획 의도, 즉 ‘경제 민주화’를 끌어내자. 그렇게 하기 위해 픽션의 최소화와 진실의 구현에 집중하자. 그리고 끝내 83년 4월 18·19일 방송을 하지 않았다.

<한국일보>(김훈 기자)는 불방 직후인 4월 19일치 조간에 비판 기사를 냈다.

“<문화방송>에서 매주 월·화요일 방영하는 기업 드라마 <야망의 25시>가 작가 사정으로 이틀 연속 방송이 중단되고 있다. 방송사는 이 시간대에 <게리슨 유격대> 고별편을 대신 방영했다. <야망의 25시>의 ‘방영 펑크’는 석연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야망의 25시>가 현존하는 유수 기업체의 총수를 모델로 하고 있음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만큼 방송국쪽에 기업들의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 문화방송은 봄철 프로그램 개편 때 <야망의 25시> 등 새로 선보이는 드라마 3편은 과거의 졸속제작을 탈피하기 위해 시간의 여유를 두어 사전에 기획하고 미리 제작되는 것이라고 자랑한 바 있다. 작가 김기팔씨는 ‘극본을 미리 쓴 것은 아니고, 매주분량을 방송국에 넘기고 있는데 최근의 건강 악화와 과음 등으로 이번주 편을 집필하지 못했으며, 다음주편부터는 다시 집필을 시작, 방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중략) 방송국쪽은 작가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종영을 예고한 <게리슨 유격대>의 필름 반환이 급박해 프로그램을 임시로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프로 변경에는 <야망의 25시> 구성 보안의 이유도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정중헌 기자)도 4월 20일치에 기사를 냈다.

“(전략) 그러나 시청자들은 연속드라마의 갑작스런 펑크에 대해 의아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야망의 25시>가 누가 보아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재계 총수들을 극중 모델로 하고 있어, 재벌들의 압력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런 추측은 이 드라마가 나가자 모델이 된 3대 재벌그룹의 홍보 관계자들이 자사에 유리한 홍보자료를 보내오고 제작에 간접 편의까지 제공한다는 설과, 매회 녹화 시사를 하는가 하면, 모델의 부인이나 비서 등 주변 인물들이 잘못 그려지고 있다는 항의도 했다는 얘기들이 항간에 나돌고 있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언론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상황이 바뀌었다. “나쁜 ××들, 방송이란 게 네 맘대로냐”, “어떤 ××가 압력을 넣었어, 말해, 우리가 쳐들어 갈테니까”, “수고하는 것 우리가 알고 있다. 힘내라.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해선 안된다”, “죽일 ××들, 중요한 회사 일도 미뤄놓고 와서 기다리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 항의 전화는 방송사는 물론이고 방송위원회, 문화공보부 그리고 재벌업체에도 쏟아졌다. 문화방송 정문 데스크에,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던 꽃다발이 놓여졌고, 전보도 많이 오고, 손편지도 여러장 붙어 있고, 떡바구니도 놓고 갔다. 정말 고맙다.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간섭’은 일단 ‘중지상태’로 들어갔다. 폭풍전야 같았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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