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서예가 장욱이 쓴 ‘반야심경’과 극락정토로 간다는 배 ‘반야용선’을 소재로 한 조환의 설치작품. 위 작은 사진들은 철편을 이어붙여 그린 ‘철판 한국화’. 학고재 제공
당나라 서예가 장욱이 쓴 ‘반야심경’과 극락정토로 간다는 배 ‘반야용선’을 소재로 한 조환의 설치작품. 위 작은 사진들은 철편을 이어붙여 그린 ‘철판 한국화’.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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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머무는 자리를 검정 철판 조각으로 대신한다면 그 결과물은 한국화일까? 아니, 회화일까 조각일까?

한국화가 조환(55)씨가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2월9일까지)을 열고 어디에도 자리매김하기 어려운 작품 22점을 걸었다. 멀리서 보면 분명 수묵화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용접기로 녹여서 자른 철판 조각들을 이어붙인 조각이다.

먹을 머금은 붓이 한지에 미끄러지고 멈춰선 자취와 남은 힘을 쏟아낸 비백의 흔적들이 철판 조각들로 치환되어 줄기가 되고, 여기에 다양한 모양의 넓적한 철판 조각들이 덧붙어 매난국죽 사군자가 되었다. 길쭉하고 때로는 구부러진 철판 조각들은 합쳐져 산줄기가 되고 바위가 되어 골기가 뚜렷한 산수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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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으로 그린 한국화’는 종이가 아닌 철을 화폭으로 삼으면서 기교는 최소화했다. 먹의 농담이나 번짐효과는 원천적으로 낼 수 없는데다, 철판에 입힌 도료는 얼마든지 다양한 색깔도 대부분 검정 하나로만 표현된다. 작가는 철판 조각의 조합이 벽과 조명을 만나 작품이 된다고 말한다. 곧 철판 그림에 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들은 조명의 거리에 따라 농담을 달리하면서 딱딱한 철판 조각들은 비로소 한국화가 된다.

작가는 1980년대 검은 먹으로 인물화와 자동차들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 풍경화를 그렸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에서 한계를 느끼면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나아가 회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군자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유행이나 사조를 뛰어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절대미감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을 돌아와서 다시 본 고전에서 기운생동 그 자체를 체감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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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형식은 변하기 마련이죠. 한국화의 매체가 굳이 먹일 필요는 없지요. 시대와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시대정신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작가는 젊은 시절 한때 자신이 선택한 미술에 회의가 생겨 철공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6~7년 전 새로운 그림 매체를 고민할 무렵 몸이 기억하는 노동의 즐거움을 떠올리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기로 했다. 그것이 오늘날 철판 산수, 철판 사군자의 모태가 되었다. 오랫동안 한국화를 그리면서 몸에 밴 붓놀림은 철판을 녹이고, 자르고, 붙이는 노동의 기억과 만나 조환만이 할 수 있는 철판그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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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철판은 부드러운 먹보다 표현의 한계가 있어 기교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단점을 함축과 추상으로 승화시킨 거죠. 먹으로 색깔을 드러내는 동양화의 기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본질에 해당하는 고갱이만을 철판으로 잘라내어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조명에 의한 그림자에 철판이 다하지 못한 효과를 의탁했다.

전시장에는 철판산수·사군자 외에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 260자가 흰 벽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듯 배치돼 있다. 그 옆에는 배 한 척이 푸르스름한 기운을 받은 채 놓여 있다. 불교의‘반야용선’이다.

“반야용선은 듣고 보고 느끼는 감각의 세계를 넘어 피안, 곧 진리의 세계로 가는 교통편이죠. 잘 그리는 게 아니라 한번 더 함축해보고자 하는 제 마음을 표현했어요.”

작가는 먹으로 그리면 5분이면 완성될 그림을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달 동안의 노동으로 만든다. 속도는 느리지만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즐거움이 풍속화, 인물화 등으로 확장이 가능하고, 갤러리를 벗어나면 한층 더 자유스러워질 거라는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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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