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편과 저편으로 무장해 상대편 인중에 ‘콧수염’ 붙이는 시대, 증오하는 상대편을 ‘나치’로 몰아가는 그런 세상이다. 바로 이 역사적 순간에 만화가 김태권은 히틀러의 옷을 가감 없이 벗겼다. 비대한 편육 같은 그의 나체를 그린 이유는 ‘마왕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박 터지게 싸운 후 사이에 협상의 테이블 두는 것 역시 한자 그대로 인간의 일 아니겠는가. ‘오빠 믿지? 잇힝!’ 교태를 피우는 김태권의 ‘히틀러’는 진상을 넘어 이편이자 저편의 그림자다. 불안한 은유가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히틀러가 다시 나타난다면 권력을 잡을 수 있을까? 책은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한다. 히틀러를 테이블에 올린다. 하이, 히틀러!
전현주 북하니에디터 bookhani@hani.co.kr
-작가님 뵌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다들 ‘지식인의 외모’가 출중하신 분이라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1920-30년대 폐병 걸린 지식인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담배까지 피던 시절인데 연기 피우면서 콜록콜록하고 있으면 ‘너무 설정 들어간 거 아니냐’ 그런 말씀 하셨죠. 당시엔 좋은 말인 줄 알았는데. (웃음)”
- 몇 년 전 저도 잠시 스쳐 뵐 때, 같은 생각 했었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어요.
“독자님들은 ‘사진보다 실물이 나으세요.’ 하시더라고요. 아니 실물도 별로인데 사진이 얼마나 이상하면 그런 말씀 하실까 싶고. 아무튼, 작업할 때 밤샘이 많은데 체력이 많이 부족해서요. 담배도 끊고 구청 지하실에 나가서 쇳덩이도 들고 했습니다. (웃음)”
- <히틀러의 성공시대> 단행본 1권이 출간되었죠. 2012년 초부터 한겨레 토요판 통해 연재하셨고요. 이 시점에 왜 ‘히틀러’일까. 구상 당시로 돌아가 본다면.
“애초에 히틀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했어요. 지지율 2.6% 나오던 당에서 출발해 5년 만에 정권을 잡고, 어떻게 헌법까지 무시할 수 있는 초법적 권력을 잡았는가,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 토요판 고경태 에디터님이 좋은 아이템 없느냐고 연락을 주셔서 서너 개 아이템을 준비해 갔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내용이었죠. 한 번에 ‘이걸로 가봅시다’ 하시더라고요.”
- 히틀러라는 인물이 워낙 무게감 있다 보니, 구상할 때 고민은 없으셨는지.
“오히려 편했어요. 다른 역사적 인물은 평가가 입체적 일 수 있잖아요. 나쁜 짓을 했지만, 그 내면엔 이런 동기가 있었다는 등. 히틀러는 그 점에서 선명하거든요. 독일 극우파에서 나온 책들마저도 히틀러의 악행을 인정해요. 물론 극소수의 음모론자들은 아니지만. 그분들은 히틀러가 외계인과 제휴를 했다고 말하는 분들이라서요. (웃음)”
# “한국의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두 히틀러 같다”?

- 반대로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연재 중에 독자분의 메일도 자주 받으셨다고요.
“ ‘히틀러는 악인이다.’라는 점을 모든 이들이 공감하다 보니 다들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을 두고 ‘히틀러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어떤 세력을 너무너무 싫어하오. 그 사람하고 그 사람 추종자들은 아무래도 히틀러와 나치세력 같지 않소? 히틀러 만화 그리고 있으니 작가양반도 알거요.’ 라는 식의 이야기죠. 이른바 좌파라고 말하는 쪽에서도, 우파라는 쪽에서도 그런 식으로 동의를 구하고 싶어 하셔서.”
- 내 의견을 작가분이 좀 인정해 달라, 이런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아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말하면 안 좋아하세요. 화를 꾹 참고 돌아가시는 느낌이 들고요. 참 미묘한 문제였습니다. (웃음)
- 뭔가 난감한 상황이네요.
“예, 만약 그런 말씀을 모두 종합하면. 한국의 정치 스펙트럼이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두 히틀러 같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각도 들고. (웃음) 민감한 이슈구나 싶었죠.”
- 그림체부터 구성까지 조금 특이해서 호불호도 강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본격 하드한 정치 드라마로 가져가려고 했어요. 암울한 느와르식 만화도 생각해보고. 정치의 비정함을 다루는 양아치 같은 히틀러도 생각해보고. 심지어 히틀러가 키우는 개의 시선에서도 그려보고. 그런데 반응이 별로더라고요. 히틀러 하면 다들 무슨 생각부터 하는지 봤더니, ‘수염’과 정치 뒷얘기들, 그리고 사생활을 언급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얘기들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섞으면 어떨까. 당시 어떤 식으로 사회가 돌아갔는지 보고 그걸 섞어서 얘기하면 어떨까 싶어 막 짜 맞춰 봤습니다.”
# 1주일마다 히틀러 훌렁 훌렁 벗기는 재미
- 히틀러를 다룬 지난 저서들이 늘 엄숙했잖아요. 김태권의 만화는 그렇지 않아서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었죠. 히틀러의 누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동안 없었기에. (웃음)
“만화 그리고 있을 때 저희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댁에서도 한겨레신문 보시는데 ‘태권아, 만화는 잘 보고 있는데 말이다, 히틀러 좀 그만 벗기면 안 되겠냐. 부담스러워 못 보겠다.’ 하시는 거에요. 저는 이미 주 1회 히틀러 벗기는 재미가 들어서 ‘아 어쩌지, 이제 그만 벗겨야 하나.’ 했는데. 토요판 편집팀에 물어보니 더 벗겨도 된다 하시더라고요. 후반으로 가면 더 훌렁 훌렁 벗지 않을까 싶어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중요한 부위는 가리고 있습니다. (웃음)”
- 아닙니다. 근육이 있다면 보는 눈이 좀 더 즐거울 텐데. 그의 몸매가 너무 친근해서요.
“제가 직접 히틀러의 벗은 몸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실제 몸을 본다고 해도 근육은 없었을 거에요. 생활 패턴이 게으른 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리얼한 몸매죠.”
- 책의 깜짝 부록. 히틀러 스티커. ‘오빠 믿지?’ 히틀러가 변태처럼 마구 그러는데. 저는 이거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부장님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붙였는데. 으하하.
“제가 홍보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정말 잘 만들어 주셨더라고요. 책을 받은 독자 분들이 트위터나 다른 루트로 말씀하시길, ‘책은 잘 받았는데 도대체 스티커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물으세요. 그래서 ‘이성에게 고백할 때 쓰십시오.’ 했죠. 어느 어머님은 이 책 받고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어린 아들이 스티커를 좋아합니다.’ 하시는데 괜히 난처하고. (웃음)”
# ‘나쁜 짓 대마왕’ 히틀러가 아닌 다 벗고 진상 떠는 히틀러
- 히틀러를 앙증맞게 그려야 했던 의도가 있었나요?
“ ‘히틀러’ 하면 보통 ‘대마왕’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히틀러의 나쁜 짓을 고발합니다’라는 식으로 가면 독자들도 저도 힘들 것 같았어요. 저는 자료 조사 때부터 지금까지 몸이 너무 힘들어요. 히틀러가 했던 짓을 보면 기운이 빠질 정도로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차라리 나쁜 놈이라는 거 전부 아는 양반이 ‘오빠 믿지?’ 하며 진상을 부리거나 다 벗고 ‘아잉’ 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아 제가 따라하니까 더 이상해지는데. (웃음)
- 괜찮으시겠습니까. 지식인 이미지가 한 번에. (웃음)
“괜찮습니다. 이런 진상의 이미지를 독자가 봤을 때, 이야기가 더 편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히틀러가 아무리 귀여운 짓을 한들 귀여워지지는 않죠. 계속 아저씨 진상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 1920-30년대 독일 배경. 취재, 그 시작은 어떠셨는지.
“관심은 2002년도부터 두었어요. 전기 작가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전기가 나오던 시절이자 김대중 대통령 정권이 끝날 때죠. 한국에서는 한창 ‘좌파에게 넘어간 정권을 되찾자!’ 며 수구적 생각을 한 분들이 궐기할 때고. 그때 나오던 담론을 보다가 옛 독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전기를 꼼꼼히 읽었거든요. 과연 비슷하게 나왔느냐? 조금 뒤에 말씀드리고요. (웃음) 그 내용으로 만화를 그려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무르익고 발효되고 익혀서 이번에 꺼내놓았죠.”

- 독일도 자주 왔다갔다하셨죠. 원전 고증을 많이 하신다고.
“좋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심지어 독일 극우파의 의견도요. 베를린을 돌아다닐 때, 처음에는 건물과 거리를 직접 봐야 드라마가 나오지 않겠는가 했는데요. 정작 옛 모습이 많이 없더라고요. 전후 폭격으로 부서지거나, 분단된 동안 방치되어 헐고 다시 지은 경우도 있고요.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히틀러의 흔적을 찾게 된 거죠.”
- 나치 시대와 현대 시대. 몇 가지 비슷한 조건을 뽑는다면 무엇을 그리실지.
“아. 여기서부터 살얼음을 밟기 시작하는 건데요. (웃음) 히틀러가 탄생한 조건과 그 인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조건이 한국사회에도 몇 가지 있다고 생각했어요.”
- 조심조심 바르게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죠. (웃음)
“정좌를 하고, 옷깃을 여미고. (웃음) 제일 큰 건 그거 같아요. ‘이쪽’과 ‘저쪽’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다 쓰는 표현이니까 사용한다면. 이쪽 사람들과 저쪽 사람들이 서로 너무 싫어해요. 사이에서 조율을 할 수 있는 세력도 없어요. 한쪽이 이기는 분위기도 아니에요. 팽팽하게 맞서 있죠. 이른바 ‘기득권’ 층이라고 말하는, 예전부터 권력을 가지고 있던 쪽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어요. 반대로 기득권 세력에게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압박을 하는 쪽은 전보다 정당성과 권력이 조금씩 커졌지만 국가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잡고 있지 못하고요. 그 상태에서 서로 ‘저쪽이 우리에게 아주 못된 짓을 할 거야. 어느 날 저쪽이 우리를 다 죽여 버릴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불안감을 가득 지닌 채 신경전을 팽팽하게 하는 상황이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 히틀러가 없다고 이 시대는 좋은 시대인가?
- 불안감이 가득한 상황이 위험하다는 말씀이시죠.
“이때 엉뚱한 사람이 튀어나와 엉뚱한 짓을 해서 엉뚱하게 권력을 잡아버릴 수 있는 것이 당시 히틀러 시대였죠. 이 만화에서 드리고 싶었던 얘기는 ‘히틀러가 없다고 해서 이 시대가 좋은 시대인가?’라는 질문인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요.”
- 왜죠?
“충분히 서로 증오하는 상황, 저쪽이 권력을 잡으면 나는 폭력을 쓰더라도 때려눕히겠다는 스트레스. 쓸데없는 것에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니 삶이 즐겁지 않은 것 아닌가 싶거든요. 히틀러라는 절대 악인이 없더라도 이 끔찍한 상황만으로 충분히 안 좋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담론을 같이 나눠보고 싶었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 책 첫머리에도 뉘앙스를 두셨어요.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겠다는.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단정하는 데에 ‘히틀러 코드’가 이용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정의로운데 저쪽은 저렇게 나쁜 놈들 아니냐’는 생각 말이죠. 우리에게 맞서는 저쪽이 있다면, 그게 기득권 세력이던 촛불을 든 세력이던 또는 어떤 정치인을 그리워하거나 추종하는 세력이던 상관이 없는 거에요. 만약에 서로 주먹질하지 말고 이야기 좀 풀어보자 하는 세력이 어딘가 있다면, 저는 그런 세력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솔직히 만화를 그리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자체가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웃음)”
- 그러고 보면 나치시대 이야기가 대대손손 전설이 된 것 같죠. 잊을 만하면 어디든 대입 돼서 사회 곳곳에서 계속 나와요.
“ ‘공포’와 관련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부터 괴물이나 귀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잖아요. 이웃에 살던 사람이 적당히 찌질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몽둥이 들고 나타나 나를 막 때리면 정말 무섭죠. 밤에 문 열고 나갔다가 둥둥 떠 있는 발 없는 귀신 보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끔찍한 건 언젠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는 이야기이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이죠.”

- 결국 ‘어떻게’, ‘왜’의 질문이 남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히틀러나 그의 조력자 괴벨스가 시대 상황에 의한 ‘청년의 좌절’을 극단적으로 푼 것 아니었나 싶었고요.
“ 핵심은 ‘증오’ 같아요. ‘내가 왜 안 풀릴까?’라는 질문에 처음에는 내 책임이라고 절망하고 고민하고 여러 수단을 쓰죠. 그러다가 ‘도저히 내가 풀 수 없는 문제구나!’ 하는 순간, 극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격렬한 증오로 출구를 찾거든요. 대상을 엉뚱하게 잡은 격렬한 증오가 얼마나 위험한가, 그 생각으로 만화를 그렸어요. 그리고 그 증오라는 힘은 꼭 히틀러 시대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도 종종 있었기에.”
- 만약 한국사회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는다면, 언제라고 생각하셨는지.
“가까이에서 찾으면 논란이 되니 멀리 보죠. (웃음) ‘만보산’ 사건이라고 있었죠. 만보산이라는 곳에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무시하고 때렸다는 말이 왜곡, 확대되어 한국에서는 민족적 분노가 엉뚱하게 중국 사람들에게 갔어요. 독일에서 히틀러가 증오를 내세워 추종자를 끌어 모은 시기와 비슷해요. 옆집에 살던 중국인 가게를 때려 부수고 죽이고 약탈하는 사건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죠. 집계도 어려운 대규모 폭동이었고, 그 배후에 조선총독부가 있나 없나 하는 의심도 밝혀지지 않은 채 흘러가 버렸어요. 지금도 여러 종류의 외국인 혐오가 남아 있고 증오하는 움직임이 불안하죠.”
- 등장인물만 바뀐 상황이네요.
“저는 증오도 학습이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증오를 가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도 쉽다고 봐요. 한 번이라도 특정집단을 향해 ‘너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야.’ 하며 증오를 풀면, 그 증오심이 다른 쪽으로 옮기는 건 시간문제거든요.”
# 증오의 시대, 지금도 여전히 히틀러 소동중
- 전기 작가 ‘이언 커쇼’의 <히틀러 평전>을 읽으면 인물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죠. 그가 ‘이념의 카오스 시대’라 칭한 부분과 작가님이 말씀하신 ‘지금도 여전히 히틀러 소동 중’이란 부분이 맥이 닿지 않나 싶더라고요.
“ ‘이언 커쇼’ 전에 ‘요하임 페스트’라는 독일 작가가 쓴 히틀러 전기가 있었어요. 요하임 페스트는 독일 우익이자 ‘히틀러가 대단한 악당임은 인정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후세 사람들이 평했죠. 그 후에 히틀러 전기를 쓴 ‘이언 커쇼’는 ‘히틀러가 악당으로써 대단하다기보다, 히틀러가 가능하게 한 사회적 힘이 있었다’라는 방향으로 책을 썼고요. 히틀러는 그 사회적 힘에서 잘 조정하다가 기회를 잘 잡아 대권을 잡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봤죠.”
- 작가님은 후자에 가까우시고요. 사회적 힘에 시선을 두셨죠.
“ 제가 히틀러를 찌질하게 그린 건 ‘이언 커쇼’ 쪽을 많이 따른 게 있었어요. 히틀러는 혼자 모든 판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힘 안에서 기회를 잡은 사람이라는 건데. 그 사회적 힘이란 ‘증오’가 가장 큰 것 같아요. 협상의 테이블을 만들려고 하면 그것조차 배신이라고 보는 것. 이런 분위기는 매우 위험하죠. 현대 시대도 마찬가지고요.”
- 편 가르기의 문제.
“ 편을 갈라 싸운 후 운동회를 한다거나 차를 한 잔 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웃음) 타협도 없이 불관용과 증오로 서로를 본다면 가장 위험한 것 아닌가 싶어요. 이 만화를 그리면서도 그렇고 요즘 뉴스를 보면서도 그래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마찬가지죠.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니까 마음이 각박해지고….”
- 점점 서로가 미워지고.
“예, 점점 밉고.”
# 만화가 김태권의 데뷔작, <십자군 이야기>
- 저작이 많으셔서요. 대표작 <십자군이야기>, <한나라이야기> 외에도 활발히 활동 중이세요. 그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시다면.
“ 첫 책이 나왔을 때 기억이 커요. 2002년경 문화일보에 장정일 삼국지 삽화 그릴 때죠. 처음으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연봉 100에서 200으로 성장했는데. ‘와! 그림으로 두 배 성장했구나!’ 하며 뿌듯했죠. (웃음) 첫 책 손에 잡으면서, 정말 기분이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뒤 부시 아저씨가 이라크 쳐들어간다고 할 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해서 <십자군 이야기>를 그려 만화 데뷔를 했고. 그때 책 반응이 기억에 남고요.”
-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리고 계신데, 멈추지 않는 동기는?
“예전부터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재밌는 작업을 해서 남에게 보여주면 아 재밌다! 넌 재밌는 아이구나! 란 반응이 좋았죠. 특히 그 중에서 ‘너 개그도 잘하는구나!’란 말을 듣고 싶었는데, 개그 쪽은 성공을 못 한 것 같아요. 언젠간 한 방 터트릴 수 있겠지 하는데 쉽지 않고. (웃음)”
- 일의 보람을 느낄 땐 언제세요. <십자군 이야기>는 왜 다음편 빨리 안내냐고 성화인 독자들도 많던데요.
“외부 강연 나간 날, 한 분이 오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국에서 몇 대 째 살고 있는 화교시래요. 한홍구 선생님 책에도 나오지만, 화교들이 가장 정착하기 힘든 땅이 한국이라고 할 정도로 힘든 점이 있어요. 그분도 ‘왜 내가 한국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증오에 노출되어 살아야 하는가’ 고민을 안고 살다가 고등학교 때 <십자군 이야기>로 위안을 받으셨대요. 만화 그리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분도 이어 말씀하시길 ‘내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지금 몇 살이다. 뒤에 꺼 안 나오냐?’ 하셔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웃음)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 “언젠가 개그가 빵 터지길, 공존과 관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매번 작품마다 고민하는 키워드가 있으셨죠. 앞으로의 주제는 무엇이 될지.
“‘공존과 관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증오는 커지고 세상은 각박해지는데 세계는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 다양함을 드러내며 살고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데뷔 10년에 이른 저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 본업(?)대로 예술만화도 얼른 그리셔야 할 텐데요.
“ 상당히 재밌게 작업을 했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게 <르네상스 미술이야기>인데, 저는 무지 재밌는데 지금은 시대가 재밌어할 이야기가 아니라 못해요. 정치 이야기라도 생활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 또는 갖가지 담론들.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정말 재밌어하거든요. 세상이 앞으로 그런 재밌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판이 되면 좋겠어요.”
- 그런 판. 언젠가 짜여 지겠죠. 이제 내년을 보게 되는데.
“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이 747정책 한다고 해서. 국민소득 3만불 되면 우와! 예술만화 그리며 음풍농월할 줄 알았는데, 믿었던 저의 잘못이죠. 아니 이렇게 말하면 또 김태권 작가, 엠비정부 비방 그렇게 나오려나. 그냥 그런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업 작가이기 때문에 매번 한 발 잘못 딛어도 타격이 큰데요. 매번 살얼음 걷듯 작업하고 있습니다. 하하.”
*‘현주의책’ 시즌1을 마감합니다. 그동안 시청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글/ 진행= 전현주 북하니 에디터 bookhani@hani.co.kr
기획= 한겨레TV 박종찬 기자, 연출=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