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물들도 거의 사라져 황량한 분위기다.
석물들도 거의 사라져 황량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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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 부근 고려 왕릉들의 모습이 분단 60여 년 만에 확인됐다. 8일 사진으로 공개된 고려 왕릉들은 관리 소홀 등으로 무척 황량한 모습이지만, 10~14세기 우리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성의 남북 언저리인 옛 경기도 개풍군 일대에 있는 유적들로, 북한 주민들이 사는 협동농장 근처이거나 휴전선에 가까운 군사지역이어서 외부 연구자들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없었다.  

개성시 룡흥리에 자리한 2대 혜종(재위 943~945)의 순릉. 석물이 대부분 사라지고 봉분도 깎여 고려 왕릉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편이다.
개성시 룡흥리에 자리한 2대 혜종(재위 943~945)의 순릉. 석물이 대부분 사라지고 봉분도 깎여 고려 왕릉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편이다.

장경희 한서대 교수가 처음 공개한 고려 왕릉 사진들 가운데 묘 주인이 밝혀진 것은 모두 12기다. 2대 혜종에서 시작해 정종(3대), 경종(5대), 성종(6대), 현종(8대), 문종(11대), 순종(12대), 예종(16대), 신종(20대), 원종(24대), 충목왕(29대), 충정왕(30대)이다. 태조 왕건의 비 신성왕후, 경종의 비 헌정왕후, 신원미상의 왕족 무덤떼인 칠릉떼 등도 소개됐다. 북한의 고려 왕릉 가운데 현재 모습이 알려진 곳은 첫 임금 태조의 현릉과 31대 임금인 공민왕의 현·정릉뿐이다.

고려 왕릉은 대체로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계승해 산기슭에 3~4층 단을 쌓고 맨 윗단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쌓고 아래로 석등, 문·무인석, 제향각 등을 배치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인 도굴 피해를 입었고, 한국전쟁 때도 막대한 석물들이 파괴·분실돼 대다수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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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쪽은 이후 주요 왕릉들을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했으나, 야산 곳곳을 남벌하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능역이 크게 축소됐다. 혜종·성종릉의 경우 병풍석과 석축이 파묻혔고, 경종릉은 장명등·석상·망주석이 사라졌다. 신종릉은 잘못된 복원으로 깨진 난간석이 굴러다니고, 민묘처럼 왜소한 몰골로 변했다.

장 교수는 “서울 근교 조선 왕릉들이 석물, 수목, 건축물까지 보존된 것과 대조된다”며 “현지 산에는 나무가 없어 큰비가 오면 무덤 흙이 계속 쓸려내려갈 수밖에 없는 만큼 종합 방재대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은 장 교수의 답사 성과 등을 토대로 개성 왕릉 등에 대한 종합 조사와 자료집 발간을 추진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장경희 교수 제공

6대 임금 성종(재위 981~997)의 강릉. 판문군 진봉리에 있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거란에게서 강동 6주를 얻어낸 왕이다. 개간된 논밭에 둘러싸여 민묘처럼 초라한 모양새다.
6대 임금 성종(재위 981~997)의 강릉. 판문군 진봉리에 있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거란에게서 강동 6주를 얻어낸 왕이다. 개간된 논밭에 둘러싸여 민묘처럼 초라한 모양새다.
판문군 선적리에 있는 11대 문종(재위 1046~1083)의 경릉.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고 송나라와 국교를 열었던 왕이다. 능역이던 무덤 앞은 논밭으로 변했다.
판문군 선적리에 있는 11대 문종(재위 1046~1083)의 경릉.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고 송나라와 국교를 열었던 왕이다. 능역이던 무덤 앞은 논밭으로 변했다.
즉위 석달 만에 숨진 12대 임금 순종(재위 1083)의 성릉. 판문군 진봉리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 높이가 1.6m에 불과하며 병풍석도 사라진 상태다.
즉위 석달 만에 숨진 12대 임금 순종(재위 1083)의 성릉. 판문군 진봉리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 높이가 1.6m에 불과하며 병풍석도 사라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