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 사회가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양극화를 선도하고 있는 진원지 중 하나가 학교일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능력연마)이 개인 지위 상승의 주요 사다리 역할을 하였으니, 현재 한국의 교육은 양극화의 피해자이기는커녕 핵심 가해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 모두 다 아는 것이지만,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사람 사는 사회에서 정말 ‘동등한 기회’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장학금 제도를 건드려 보고자 한다. 특히 미국의 장학금과 비교함으로써 극명한 대조를 해 보자.

나는 1993년에 뒤늦은 나이에 유학 차 미국으로 건너 가, 거기서 결국 15년을 살았다. 두 아이는 유치원과 초중고 교육을 다 거기서(보스톤과 시애틀) 받았다. 모두 공립학교였다. 지금은 둘 다 대학생이다. 덕분에 나는 보통 유학생들처럼 도서관에만 쳐박혀 지내지 않았다. 학부모로서 갖가지 학교 모임에 참석하며, 그 사회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그 사회의 학교제도를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내가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장학금(scholarship) 제도였다. 우선 그 개념부터 완전히 달라, 처음엔 좀 어리어리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크고 작은 장학금 제도가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경탄스러웠다.

먼저 장학금의 개념을 보자. 한국에서 누가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면, 거의 95% 이상의 사람들은 ‘애가 공부를 잘 하나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예전부터 장학금은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었고, 지금도 사실상 그런 기준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장학금은 ‘성적이 뛰어난 학생에게 주는 포상금’ 개념이다. 그럼 미국 장학금은 어떨까? 누가 장학금을 받는다고 하면, 미국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할 것이다. 그래도 ‘공부를 아주 잘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성적만 떠 올리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장학금(scholarship)은 그런 기준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교육기관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의 거의 대부분은 니드베이스(need-based) 장학금이다.

말 그대로 학생의 필요에 따라 그만큼 지급한다는 뜻이다. 성적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청자들의 순위를 매기려는 목적이 아니다. 경쟁이 지나치게 심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저 학칙이 요구하는 기본 학점 이상을 유지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즉 학생의 첫째 본분을 잘 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대학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명문대로 갈수록 학교에서 지급하는 거의 모든 장학금은 학생의 생활 형편에 근거하여 지급한다. 그래서 매년 학생의 재정 상태를 보고 받아, 거기에 맞추어 지급액을 조정한다. 물론 성적만으로 주는 장학금도 있지만, 그런 건 대개 장학금을 기탁한 사람의 개인적인 뜻에 따른 경우이거나, 중하위권 대학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잡으려고 주는 경우가 주종을 이룬다. 지금 정확한 통계는 나에게 없으나, 내가 15년간 그 사회에 살면서 피부로 느낀 걸 말하자면, 미국 교육기관에서 주는 장학금 중 적어도 80% 이상은 학생의 성적보다는 가계형편을 기준으로 지급한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미국의 장학금은 포상금 개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장학을 위한, 즉 ‘학업을 계속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금’인 것이다. 이런 개념의 장학금은 미국사회에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장학금 제도가 있다. 유치원(kindergarten)과 초중고가 의무교육이니, 수업료는 100% 무료이고, 잡부금도 거의 없다. 그러면 장학금은 어떤 경우에 지급하나? 학교에서 소풍(견학)을 갈 경우, 약간의 차비와 점심값은 학생 부담이다. 소풍을 떠나기 적어도 두 주일 전에 집으로 통신문이 온다. 참가 여부 및 경비를 낼 수 있는지, 다 못 낼 형편이라면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얼마의 보조가 필요한 지), 여유가 있다면 얼마를 추가로 기부하겠는지 등을 묻는다.

중고딩이 되면 장거리 수학여행이 있고, 특별활동을 하면 역시 국내외 장거리 여행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런 경우에도 장학금은 반드시 있다. 학부모들이 최대한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시교육위에다가 지원 신청을 하기도 한다. 나의 두 아이는 특별활동으로 모두 바이올린을 하였는데, 아이들 학교의 오케스트라가 미국 서북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미 전역에서도 탑 5에 드는 탓에 오케스트라 여행이 적지 않았다. 해외 원정도 세 번이나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 아빠로서, 이런 건 참으로 나에게 부담이었다. 그러나 나의 형편을 솔직히 공개하면, 그에 따라 부분 장학금을 받았다. 부분 장학금의 액수가 처음에는 전체 경비의 약 80%가 넘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줄어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유학생 신분을 접고 직장인이 되어 “이제 장학금이 필요없다”고 처음 말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생각만으로 벅차다. 좀 더 햇수가 바뀌면, 졸업생의 학부모 자격으로 소정의 장학금을 기부할 작정이다. 나의 두 아이는 시애틀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Seattle Youth Symphony Orchestra)에서도 활약하였는데, 역시 늘 부분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다가 마지막 두 해 동안은 받지 않았다. 더 이상 내가 저소득층 가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오케스트라 측에서는 자체 보유 바이올린을 나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주기까지 하였다. 귀국하기 위해 시애틀을 떠나면서, 여전히 쪼들이는 형편이지만 감사의 편지와 함께 너무나도 적은 $100을 기부하였다. 최대한 여건을 만들어 앞으로도 틈틈이 할 예정이다. 하다못해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서 시행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도 장학금이 있다.

나의 두 아이는 초딩 졸업 때까지 모든 수영 레벨을 땄다. 나이가 어려 구조원 자격까지는 못 땄지만, 자기들 나이에 맞는 최고 수준의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이 모든 교육 과정에서도 장학금을 받았다. 처음에는 전액 무료였다가, 나의 형편이 조금씩 펴지면서 부분 장학금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개인이 그냥 주는 장학금도 있다. 가장 고마운 것은 나의 두 아이는 바이올린 레슨을 다 부분 장학금으로 받았다는 거다. 특히 고딩 때 어느 날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매스터(concert master)가 아이들 학교 음악회에 우연히 왔다가 아이의 연주를 보고는 자기가 가르치고 싶다고 하여 그렇게 되었는데, 이 분은 나의 아들과 딸을 모두 전혀 돈을 받지 않고 각각 3년 간 가르쳐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요컨대, 이런 게 바로 ‘장학금’이다. 양극화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에서 장학금을 포상금 정도로 이해해서는 그 사회에 미래가 없다. 또한 장학금을 장학금 본연의 개념으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수입이 투명해야 한다. 자기 수입을 감추려는 자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처절하게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라는 게 그나마 가능해진다. 그래야 자본주의도 괜찮아 진다. 그래야 국가가 국가다워진다. 균일하게 교복을 입혀 놓고도, 학생들을 동등하게 대하기는커녕 갖가지 이유로 참혹하게 차별하는 한국 사회. 알량하게나마 있는 장학금조차도 포상금으로 전락시킨 학교들. 무언가 심하게 전도된 사회다. 이러고도 민주, 평등, 복지사회란다. 아!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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