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 구간에 포함된 경주 덕천리 유적은 신라가 태동하던 이른바 사로국 시대의 유적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신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기원전 57년, 천상(天上)에서 강림한 박혁거세가 건국했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혁거세는 지금의 경주지역 산곡간(山谷間)에 할거하던 사로 6촌(斯盧六村)의 우두머리들인 6촌장(村長)들에게 옹립되어 신라를 세우고 초대왕이 되었다.
혁거세를 추대한 6촌과 각 촌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신화 부분에 실명이 모두 공개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첫째가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고, 둘째가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 넷째가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가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다.
이들 6촌은 나중에 부(部)로 바뀌게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건국기에서는 사로 6촌이 발전한 6부를 '진한 6부'(辰韓六部)라 부르고 있다. 6부 이름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전하는데,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은 일치한다.
기록에 의하면 돌산 고허촌은 촌장이 소벌(蘇伐) 혹은 소벌도리(蘇伐都利)였다. 6촌장 중에서도 이 소벌도리는 혁거세 옹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어느 날 양산 기슭을 바라보다가 나정(蘿井) 옆에서 아이를 발견하니 그가 바로 혁거세였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에 더해 소벌도리 또한 형산(兄山)으로 강림했다고 덧붙인다. 형산이란 서형산(西兄山), 선도산(仙桃山)이라고도 부르는 산으로, 중국 황실의 딸인 혁거세 어머니가 중국을 떠나 정착한 곳이며, 김유신의 큰누이 동생 보희(寶姬)가 방뇨하는 꿈을 꾼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기록들이 비록 신화 혹은 전설이라는 성격을 벗어버리기 힘들지만 돌산 고허촌이란 곳이 사로 6촌 중에서도 사실상 신라의 탄생지라는 흔적을 가장 농후하게 남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돌산 고허촌은 나중에 부(部)로 바뀌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는데, 사량부(沙梁部)가 그것이다. 이 사량부를 무대로 저명한 족적을 남긴 신라사의 인물로는 신라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있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는 김유신 집안이 대대로 정착해 생활한 곳도 이곳이다.
김유신은 6부 중 어느 곳 출신인지 기록이 없으나, 그의 조부인 김무력(金武力)이 사량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신라 진흥왕 시대 몇몇 금석문에 보이는 데다, 무력의 고손자이자, 김유신의 조카인 김반굴(金盤屈) 또한 사량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사량부 출신임이 확실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사량부는 고려건국 직후에는 남산부(南山部)가 되었다. 즉, 사량부는 돌산 고허촌을 모태로 해서 사로 6촌 중 하나가 되었다가 고려시대에는 남산부로 바뀐 셈이 된다.
이 사량부, 나아가 돌산 고허촌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논란이 없지 않으나, 최근 1-4세기 대규모 고분군이 발견된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일대를 포함했다는 데는 학계에서 이견이 거의 없다.
신라사 전공인 이근직 경주대 강사는 "덕천리 유적 발굴성과를 존중한다면, 이들 유적을 남긴 주인공은 돌산 고허촌 혹은 사량부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 덕천리 유적 일대가 돌산 고허촌의 중심지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돌산 고허촌, 나아가 사량부 중심지는 박혁거세 탄강 전설이 어린 나정 일대를 지목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하지만 나정은 물론 덕천리 유적 등의 고고학 발굴이 활발해 짐에 따라 조만간 그 중심지, 나아가 지금까지는 미궁에 빠진 사로 6촌의 실체를 상당히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경주 내남면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수정 2006-10-24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