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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한 전쟁-현대와 전쟁폭력의 진화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장춘익·탁선미 옮김/곰출판·2만2000원

<파편화한 전쟁>은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 교수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책(Kriegssplitte, 2015)을 옮긴 것이다. 전쟁론과 정치사상사 쪽을 천착해 온 뮌클러 교수의 생각은 <새로운 전쟁>(2012), <제국: 평천하의 논리>(2015)를 통해서도 국내에 소개됐다.

파편화한 전쟁이란 말 그대로 형태가 불규칙하고 대부분 소규모로 수행되는 21세기형 전쟁으로, 그가 얘기해 온 ‘새로운 전쟁’을 가리킨다. 이는 영토가 분명한 전통적 주권국가들간의 ‘고전적 전쟁’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은이는 이 새로운 전쟁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쟁의 역사와 국제정치상의 변화와 맥락들을 정치학적, 사상사적, 철학적으로 고찰하는데,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은 주지만, 그 개념과 의미를 더 분명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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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은 기존의 영토적·이항적 국제법적 질서체계를 벗어나는 탈영토적 전쟁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도 일컫는 새로운 전쟁은 전쟁 아니면 평화, 국가간 전쟁 아니면 내전, 전투원 아니면 비전투원 식의 배중률이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다. 선전포고도 없고 평화협정도 없다. 전쟁인지 평화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성명 발표와 회담이 반복되면서 테러, 사이버 전쟁, 드론 등을 동원한 폭력 사용이 일시 중단되거나 축소되다가 다시 격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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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중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21세기 전쟁은 이런 전투 드론들이 주역을 담당한다. 미국 국방부 제공
비행중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21세기 전쟁은 이런 전투 드론들이 주역을 담당한다. 미국 국방부 제공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현단계가 어떤 단계인지도 알 수 없는 이런 전쟁은 20세기 말 냉전 붕괴 전까지 국제질서를 규정해 온 ‘베스트팔렌 체제’를 뒤흔들었다. 최초의 국제전이라 불린 30년전쟁(1618~48) 이후 영토·주권 개념을 토대로 한 새로운 질서를 세운 베스트팔렌 체제는 2차 세계대전 뒤까지 기본골격을 유지했다.

그 베스트팔렌 체제가 21세기, 특히 2001년 9·11사태 이후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초국적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이제 영토를 지닌 주권국가들은 더는 정치의 주역 또는 독점자가 아니며, 새로운 정치 공간을 넘나드는 비정부 조직,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 국가들 집단 또는 제국과 힘과 영향을 나눠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고유의 것으로 주장해 온 영토를 군사력으로 지키는 공간 방어는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관철하기 위한 토대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앞으로 공간 방어는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공간의 방어 또는 감청과 침투 쪽에 훨씬 더 큰 비중이 주어질 것이다. 개인의 안전을 보증해 주는 것도 경계나 장벽, 요새 같은 영토국가의 통제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디지털 복제본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공간에 대한 전략적 시선이 영토에 대한 고전적 구속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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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세계정치의 주권자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공간들을 지배하는 자다. 그 공간들은 물리적으로 경계를 설정할 수 없다. 영토성의 의미가 바뀐다. 커뮤니케이션 공간과 데이터 센터의 안전이 과거 땅이나 토지라는 의미에서의 영토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뮌클러에 따르면, 이처럼 물리적 경계 설정에 기초한 정치적 질서가 침식되면서 질서 수립의 측면에서 영토국가가 갖던 중요성도 사라지고, 공간을 지배하는 제국의 힘은 커진다. 이때의 제국은 헤게모니국가 개념에 가깝다. 미국이나 중국, 유럽연합 등 3~5개 정도의 제국이 영토 아닌 새로운 공간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뮌클러는 내다본다.

이럴 경우 다음과 같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복수의 제국적 행위자들이 경쟁하면서 전 지구적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피해와 가해의 상호성 때문에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탈영토화한 소규모 행위자들이 벌이는 ‘새로운 전쟁’이 영구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가지 가능성은 제국적 역할을 누구도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다. 그러면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고 그걸 막기 위해 소규모 공간에 맞는 경계 체제가 귀환할 것이다. 그리하여 제국적 힘의 질서로 이어질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집합적 국가들의 공동체 등장으로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뮌클러는 제국 쪽을 선호하는 듯하고, 자신의 조국 독일이 그 반열에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가 지적했듯이 과거 제국들의 영토분할 전쟁이 오스만제국 해체와 자의적인 국경 분할·획정으로 나아갔고, 그 제국이 거기서 세우려 했던 새로운 질서는 오늘날까지 그 지역들이 분쟁의 포화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한반도 분단체제도 세계체제로서의 동아시아 중화체제 해체 이후 그들 마음대로 영토를 갈라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던 제국들에 의해 초래된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제국과 뮌클러가 얘기하는 새로운 제국이 본질적으로 다를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