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지난 26일 별세한 원로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 교수의 빈소 영정.
지난 26일 별세한 원로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 교수의 빈소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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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해?” 항상 물음을 물으시던 선생님이 가셨습니다. 물음을 물을 때 마다 빛나던 눈빛, 목숨을 건 물음, 절대적 해답은 없다는 회의주의, 그럼에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던 천진난만한 소년, 개념적 투명성에 이르고자 물음을 묻던 삶을 뒤로 하고 선생님은 가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물음들은 많은 저술로 이어져 “박이문 인문학 전집”으로 아직 살아 있습니다. 선생님의 철학책들은 아마도 우리 시대에서 가장 널리 읽혔고 가장 많은 독자의 책이었을 것입니다. 난해한 외국 철학이나 사조들을 선생님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으로, 우리말로 언어화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자기 건강보다 유영숙 사모님의 건강을 먼저 챙기셨지만 결국 사모님의 소망대로 먼저 가셨습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물음들을 뒤에 두고 우리 시대를 떠나 가셨습니다.

선생님의 물음은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의 물음들의 주제는 사물적 미와 개념적 투명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쁜 것”, “똑똑한 것”을 찾으셨습니다. 대상이건 사람이건 간에 두 화두는 지속적 주제였습니다. 그러한 일관성은 철학의 3 전통을 자신의 몸으로 통합하신데서 나타납니다. 선생님에게서 유럽철학은 프랑스 문학을 통해 통합성으로 나타났고, 미국철학은 그 분석적 투명성으로 사유되었고, 몸으로 이어져 온 동양철학은 생태적 불가피성이었습니다. 철학의 3 전통은 그동안 분리되어 경쟁적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물음이 아름다운 것은 다르다고 간주되었던 3 철학 전통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물음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거대한 통합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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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물음은 푸근합니다. 선생님의 많은 물음들은 “둥지의 철학”으로 유기화, 체계화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이라는 철학둥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새들이 자신의 둥지를 가지고 있듯이 모든 생명체가 각자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졌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푸근한 둥지 철학은 마냥 푸근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직 긴장이 지속되는 푸근함입니다. 그 긴장에 “낙관적 허무주의”라는 표지를 부치셨습니다. 한편으로 선생님은 모든 물음에 절대적 해답이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허무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이유 없는 고통들에 대해 어디에도 투명한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선생님은 예술의 가능성 그리고 그 현실성에서 희망의 빛을 봅니다. 허무주의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일 수 있는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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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6월 한국철학회 창립 50돌 기념으로 역대 회장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째줄 오른쪽이 박이문
지난 2003년 6월 한국철학회 창립 50돌 기념으로 역대 회장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째줄 오른쪽이 박이문

선생님의 물음은 자유의 물음입니다. 그 물음은 “예술작품은 새롭게 가능한 유일 세계”라는 오랜 주장의 논제에서 나타납니다. 작품이 “세계”라 함은 작품이 분할될 수 없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라는 의미이고, “유일”이라는 함은 작품이 특수적 개별자를 통해 보편성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품이 “가능”이라는 함은 작품이 과학적 관찰 같은 지각 대상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의미 대상중의 한 선택일 뿐이고, “새로움”이란 작품은 창작이고 기존 언어에 대한 비판인 자유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에게서, 모든 예술작품은

필연적으로 아방가르드이고, 자유의 극치이며, 최소한도의 혁명성도 없는 예술 작품은 자기 모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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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자유의 물음은 예술철학 일반론에서 구체화된 환경미학에서도 이어집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의 생태문제의 기원을 객관과 주관, 언어와 표상, 의미와 실재라는 데카르트적 이분법에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분법을 극복하는 길이 예술 이외에는 없으니, 생태 세계를 예술 작품으로 보자고 제안하십니다. 선생님은 예술사에서 그 까닭의 한 가지 단초를 얻습니다. 예술작품들은 그 주제가 역사적으로 이데아, 종교, 일상 대상이기도 했고, 빛, 색깔, 느낌이기도 했으며, 비디오, 소리, 영상, 상품, 일상적 대상, 박스 광고 같은 다른 매체언어를 사용했다고 보셨습니다. 이러한 예술사의 해체과정을 통해 세계를 예술 작품으로 통전(統全)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단서는 개인 예술가가 잡다한 사태들을 단일한 유기적 단위로 변형하여 그 모든 요소들을 해방적 의미를 갖는 조화의 전체로 만들어내는 데서 보십니다. 그렇다면 잡다한 생태계를 단일한 전체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계가 자연이면서 동시에 문화일 때 이분법은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모두는 작가이면서 스스로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모두를 작품화함으로써 온전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이러한 물음들에 감사합니다. 목숨을 걸고 일관되게 물으셔서 자유의 한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