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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살인까지 부른 18~19세기 조선의 소설읽기 열풍

등록 :2016-08-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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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및 상업 발달 따른 새로운 도시문화
국립중앙도서관 세책, 방각본 기획전시
이덕무 유고집 <아정유고>와 소설 59종
작자 미상의 한글 고소설 <남졍팔난긔>(연대 및 작자 미상). 주인공 황극이 팔난을 겪으며 자신과 고락을 같이할 영웅호걸을 만나서 남만의 침략을 물리치고 연왕의 모반을 평정하여 태평성대를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영웅소설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작자 미상의 한글 고소설 <남졍팔난긔>(연대 및 작자 미상). 주인공 황극이 팔난을 겪으며 자신과 고락을 같이할 영웅호걸을 만나서 남만의 침략을 물리치고 연왕의 모반을 평정하여 태평성대를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영웅소설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2백여 년 전 조선 후기의 독서생활은 더는 양반계급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아정유고(雅亭遺稿)> 권3 ‘은애전(銀愛傳)’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옛날에 한 남자가 종로거리의 담배 가게에서 어떤 사람이 소설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가장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고는 담뱃잎 써는 칼로 소설 읽던 사람을 찌르니, 바로 죽었다. 종종 이처럼 맹랑하게 죽는 일이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아정’은 정조 시대 검서관(규장각에 속해 서책을 담당하던 벼슬)이었던 이덕무의 호다. 그의 사후 유고 시문집으로 묶인 글 중에서 이덕무는 당시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어주던 이야기꾼이, 소설 속 주인공이 좌절당하는 대목에서 이를 듣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실성한 상태에서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진 사건을 적어 전하면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옛날’이란 표현으로 보건대 그런 변화는 이덕무가 글을 쓰던 시절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때의 뜨거운 소설읽기 열기를 짐작케 해주는 <아정유고>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이 9일부터 11월30일까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기획전시 ‘조선의 독서열풍과 만나다 : 세책과 방각본’에 자료로 전시된다. <구운몽> 등 조선 후기 방각본 소설 59종과 함께 볼 수 있다. 소설 중에는 한글로 된 전형적인 영웅소설 <남졍팔난긔>(연대 및 작자 미상) 총 14책 중 일부와 조선후기 또 다른 군담영웅소설 목판 <월왕전> 하권(순천 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 등 귀중본들이 들어 있다.

‘세책’(貰冊)은 돈을 받고 소설책을 빌려주는 것, ‘방각본’(坊刻本)은 목각판으로 다량 찍어낸 소설을 가리킨다. 이덕무의 글로 볼 때 200여 년 전에 이미 오늘날의 상업출판의 원류로 보이는 방각본 출간과 세책이 당시 새로운 도시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한양을 비롯해 상업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이곳에서 생겨난 도시문화가 바로 소설 읽기였단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원하는 소설을 사거나 빌려보고자 하는 수요층도 상당히 두터워졌다고 한다.

전시는 바로 그 현장을 당시의 자료들과 전문가들 해설 등을 통해 되살려내고자 한다. 책읽는 문화와 독서층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탄식이 높아가는 시절에, 18~19세기 선인들의 독서열풍에서 사람들은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전시 기획의 포인트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 ‘상업출판이 움트다’는 관판본 위주의 조선시대 서적 출판에서 민간의 출판과 유통이 생겨나는 상황을 개괄한다. 그리고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출판 동향 및 상업출판이 출현하기까지의 상황을 비교하여 조명한다.

2부 ‘소설의 열풍 속으로’는 18~19세기 한양의 새로운 도시문화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소설 읽기 열풍을 전한다. 또 이 토대 위에 생겨난 전기수 등 이른바 ‘소설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후기 소설 열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3부 ‘세책거리를 거닐다’는 세책점과 번화했던 시장모습을 연출하여 당시 소설을 빌려주던 저잣거리를 재현한다.

4부 ‘소설 대중화의 주역, 방각본’은 조선후기 소설 대중화의 주역인 방각본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주와 안성 등 지방으로 확산된 상황을 그 지역에서 출판된 방각본 및 목판 전시를 통해 확인한다. 또한 이 세 지역에서 공통으로 간행되었지만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당시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춘향전>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5부 ‘딱지본의 등장, 세책점을 기억하다’는 새로운 인쇄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국수 한 그릇 정도의 싼값이라 ‘육전소설’로도 불리던 딱지본으로 변한 세책과 방각본, 그리고 문인들의 기억에 남은 세책본과 현재 책 대여점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문의 02-590-0507)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정조조의 검서관이었던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시문집 <아정유고>.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정조조의 검서관이었던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시문집 <아정유고>.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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