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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문예중앙·1만2800원

매물로 나온 집에 몰래 들어가 머물다 나오는 취미를 지닌 여자가 있다. 부동산 중개소 직원인 그 여자 민은 문을 닫게 된 가구점을 즐겨 드나들다가 가구점 주인의 아들 수와 조우한다. 사업에 실패한 부모 대신 빚을 진 수는 입대 전까지 신분을 감춘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처지. 여기에다 수가 일하는 쇼핑센터 옥상 놀이공원 선임인 연주까지 세사람이 조해진 소설 <여름을 지나가다>의 주인공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앞만 보며 걸어가는 세 명의 동행자들”이라는 구절은 민과 수 부자를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수 아버지 자리에 연주를 넣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아 보인다.

1년 전만 해도 회계사 자격증을 지니고 큰 기업에 다니던 민이 지금 같은 삶을 택한 사연은 소설 중반께에야 소개된다. 직장 후배이기도 한 연하남 종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나, 회사 직영 공장에서 벌어진 파업에 종우가 개입하고 그 결과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는 데에 본의 아니게 민이 역할을 한 것. 회사의 회계 부정과 파업 및 대량 해고, 해고 노동자의 투신 자살과 대한문 앞 분향소 같은 삽화는 쌍용차 사태를 염두에 둔 설정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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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곧 인생인 사람, 노동으로 채워진 하루가 추억도 상처도 되지 못한 채 그저 연소된 잿더미처럼 남는 삶, 그리고 그 잿더미가 모이고 쌓여 다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조형(造形)하는 시간의 허무한 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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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가 해고와 죽음으로 돌아오는 사태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이 소설이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민과 수는 물론, 성의와 성실로써 소박한 자본 축적과 ‘성공’을 꿈꾸는 연주조차도 어쩌면 ‘노동 이하’의 삶을 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중개와 관련해 민이 마주치는 허름한 연립주택의 은희 할머니와 뇌성마비 청년 동욱의 처지는 이들보다도 더 못하지 않겠는가.

“도시는 증식의 본능을 알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아닐까. 오래된 쇼핑센터와 실패한 가구점, 외로운 사람들이 사는 다가구주택 같은 공간을 잠식하며 도시는 끊임없이 그 본능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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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 이길 수 없는 불가사리 같은 도시의 욕망 앞에 세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은 뒷걸음질치다가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데, 같은 처지들끼리 서로를 배신하고 가해하는 것 역시 그들의 무력감과 당혹감 그리고 분노의 표출일 터이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뭐얼!”이라고 연주는 수가 몰래 지켜보는 것도 모르는 채 전화기에 대고 소리치는데, 그 외침은 선의를 같은 선의로 보답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항변으로 소설 전편에 울려 퍼진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