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
에레즈 에이든·장바티스트 미셸 지음, 김재중 옮김/사계절 펴냄(2015)
구글 엔그램 뷰어. 내가 인터넷에서 종종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브라우저 주소창에 books.google.com/ngrams 라고 쳐보라. 떠오른 홈페이지의 검색창에 뭐든 궁금한 단어를 입력해보라. 나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친다. 순식간에 그래프가 뜬다. 각 단어가 영어로 된 책들에서 얼마나 자주 등장했는가 하는 빈도를 보여주는 꺾은선 그래프다. 그래프를 보니, 자연과학 세 분야 중에서 19세기에는 압도적 일등이었던 화학이 1950년부터 물리학에 뒤졌고 1990년부터는 생물학에도 뒤졌다. 현재가 생물학의 시대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군. 더 놀라운 건 심리학이다. 용어 자체가 화학과 물리학보다 한참 늦게 탄생한 이 단어는 1900년에 이미 과학 세 분야를 앞질렀으며, 오늘날은 세 배 더 자주 언급된다. 20세기는 심리의 시대였다.
엔그램 뷰어는 1800년부터 2012년까지 출간된 영어책 800만 권에서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를 조회하는 도구이다. 한계는 많다. 당연하지만 한국어 검색은 안 된다는 것. 한 단어의 여러 뜻을 구별하거나 맥락을 보여주는 기능은 없다는 것. 신문이나 잡지는 제외하고 책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 그렇다고는 해도 강력한 장난감이다. 1968년부터 ‘커피’가 ‘차’를 앞질렀다는 것, ‘doughnut’으로 쓰던 도넛의 철자를 ‘donut’으로도 쓰기 시작한 게 ‘던킨도너츠Donuts’가 창립된 1950년대부터였다는 사실을 전에는 무슨 수로 알았겠는가.
<빅데이터 인문학>은 그 엔그램 뷰어를 만든 두 과학자의 책이다. 그들이 쓴 원재료는 구글이 2004년부터 구축한 구글 북스의 데이터. 구글은 세상에 지금껏 존재한 책이 약 1억3000만 권이라고 추정하고 그 전부를 스캔하여 디지털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진행 중인데, 현재 약 20%인 3000만 권을 스캔했고 그중 800만 권이 엔그램 뷰어에 쓰였다. 엔그램 뷰어가 단어의 출몰 횟수만 헤아리는 구조가 된 것은 저작권 때문이다. 사실 구글로서는 그마저도 제공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나 엔그램 뷰어를 갖고 놀게 된 것, 연구자라면 아예 데이터를 내려받아서 더 상세한 통계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저자들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법을 궁리하고 데이터의 오류를 보정하는 기법을 고안했으며 이 도구를 대중에게 공개하자고 구글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서술한 책은 빅데이터를 가공하는 지난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구나 여느 빅데이터 가공자와는 달리 그들이 추구한 목표는 언어, 개념, 문화의 진화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른바 인문학적 연구였다. 저자들은 이 빅데이터가 세상에 없었던 참신한 도구라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적절한 질문을 던질 때만 그렇다는 사실도 안다. 이 빅데이터로 어떤 인문학이 가능한가 하는 예시는 책에서 직접 보길 바란다. ‘800만 권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고작 지난 세기에 누가 제일 유명했는지 따지는 일뿐이야?’라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우리는 백 년을 살아도 800만 권을 읽지 못하지만, 이 정량적 도구 덕분에 그 책들의 속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라면, 이 장난감이 존재하는 세상을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과는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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