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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인 경우가 많다. 복잡하게 많은 얘기를 하지만, 결국은 ‘질문 하나 - 긴 대답’의 구조라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서문의 첫 줄에 대놓고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이 질문의 절박함은 누가 던졌는가에 있다. 안양교도소의 한 재소자가 이렇게 물었고, 지은이는 “왜 가난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에 바쁜 사람이, 심지어 재소자가 철학 따위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이어갔다. 이 책이 유명한 철학 고전을 풀어 설명하는 ‘평범한’ 철학 에세이 묶음이 아닌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칭 ‘현장 인문학자’인 지은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를 꾸준히 벌여왔다. 교도소를 찾고, 파업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 철학을 얘기했다. 철학적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법의 전달을 통해 그들 안에서 ‘일깨움’이 일어나도록 노력했다.

책은 작은 헝겊조각을 모아 예쁜 보자기를 만들듯 흘러간다. ‘갈림길과 막다른 길’의 은유, ‘바보는 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라 의지가 꺾인 자’라는 지적, ‘감히’ 따져묻는 용기 이야기 등이 유장하게 이어진다. 하늘의 별을 보고 자립생활에 도전하기 시작한 한 장애인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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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칸트와 니체, 마르크스, 루쉰 등 철학자를 간혹 무대 위로 불러올리지만, 그들의 어려운 철학 용어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왜 위대한지, 어떤 꿈을 갖고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봤는지 엿볼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형제복지원, 원전, 미국의 민영교도소 문제 등을 다루는 방법은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지장보살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의 ‘곁에 있어 준다’는 얘기에선 세월호 사고가 떠오른다. 뭔가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지은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가진 원초적 선물이 필요하다. 곁에 있어주자. 나를 너에게 선물하자”고 답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각 장의 제목을 한 번씩 우물거려봤다.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배움 이전에 배움이 일어난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지은이가 글에서 강조했던 철학적 깨달음, 이를테면 ‘칸트의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덧붙여, 근대 일본이 번역어로 만든 ‘철학’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다른 말로 바꿔도 큰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인간이 놓인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답의 형식으로 제출된 것이라는 ‘사상’(김윤식 <한국근대문학사상사>)이나, 절집에서 써왔던 ‘공부’라는 말로 자신의 깨어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