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9년 말, 서울에선 두 대형 쇼핑공간이 문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 영등포 공장터를 개발한 ‘타임스퀘어’, 그리고 강남 송파 분당의 중심에 위치한 ‘가든파이브’였다. 타임스퀘어는 유동인구는 많지만 사창가가 있던 낙후 지역이었고, 가든파이브는 중산층 아파트 밀집지역이었다. 결과는? 타임스퀘어는 1년 만에 매출 1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반면 가든파이브는 완공하고도 계약률과 입점이 저조해 완공 16개월 뒤에야, 그것도 입점률 30%인 초라한 상태로 간신히 개장했다.
# “서울 중심 용산, 한국판 맨해튼 꿈!” 화려한 구호를 내세우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건축가 19명을 한꺼번에 불러 추진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는 규모가 31조원에 이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초대형 도시개발 사업이다. 수십층짜리 빌딩 수십개가 용산 옛 철도기지창 부지와 한강변 서부이촌동 일대에 들어선다. 사업에는 국내 대기업들이 모두 출동해 한발씩 담그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도시계획 전문가는 단언한다. “용산은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서도 안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안타깝지만 이 프로젝트가 실패해야 오히려 정신차릴 수 있습니다.”

부동산 학자, 한국에 돌아와 놀라 책을 쓰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보스턴의 부동산 전문회사에서 분석과 컨설팅을 하다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되면서 한국에 돌아온 김경민 교수는 서울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현상과 마주쳤다.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거대 부동산 개발사업들이 자본주의와 부동산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없이 추진되는 점이었다.
김 교수는 이런 대형 사업들의 추진 과정과 문제들을 분석해 최근 <도시개발, 길을 잃다>란 책을 펴냈다. 늘 단기 차익만 노리는 건설업체들, 이들의 광고로 먹고사는 보수언론, 그리고 이 둘에게 휘둘리며 공공성을 지키기는커녕 훼손하는 서울시와 정부의 ‘토건 마피아’ 같은 동맹구조 속에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현실을 학자가 처음으로 명쾌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적 도시개발의 실체를 통해 도시와 부동산, 뉴타운 문제 등은 물론 지금 저축은행들이 위기에 몰리는 피에프 문제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친절한 책이기도 하다.
한국에만 없는 것, 디벨로퍼 김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디벨로퍼 없는’ 개발 실태다.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을 기획하고 주도하면서 책임지는 전문기업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디벨로퍼는 없고 대신 여러 기업들이 모여 만든 사업용 일회성 회사인 ‘프로젝트 파이낸싱(피에프, PF) 투자회사’만 존재한다. 처음부터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선진국에선 자기 이름을 걸고 사업하는 디벨로퍼가 개발을 주도하고, 특히 대규모 개발에는 관이 직접 ‘공공 디벨로퍼’가 되어 참여한다. 특히 송도 신도시나 용산국제업무지구처럼 정부가 민간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초대형 사업에선 관이 더욱 적극적으로 들어가 어떤 공익을 만들어 낼지 검토하면서 지역 저소득층과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한국에선 거꾸로 관이 시민들의 공익을 침해하고 업자들의 이익을 키워주기에 바쁘다.
수요 공급조차 분석 못한 서울시의 초대형 졸작 쇼핑몰 개발은 임대와 분양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분양 방식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자는 빨리 분양해 팔고 빠지기 급급해한다. 입점 업체들은 알아서 생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임대 방식은 장기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업 주체가 부동산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한다. 타임스퀘어는 경방이 이런 디벨로퍼 역할을 하며 임대 방식을 선택해 성공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가든파이브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구공사를 하면서 밀려나게 된 청계천 상인들을 입주시키려는 계획으로 추진된 가든파이브는 서울시와 에스에이치공사가 개발을 담당해 국내 최초의 100% 피에프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동양 최대를 내세운 규모만으로 성공할 것이란 생각으로 분양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분양값이 너무 비싸 정작 청계천 상인들조차 재정착을 꺼렸고, 결국 텅텅 빈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전문가들이 용산을 비관하는 이유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적자에 시달리던 코레일이 금싸라기 땅인 기지창 부지를 팔고 자신도 개발에 참여하면서 추진됐다. 여기에 오세훈 시장이 강변 명품도시를 내세우는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추진하면서 원안에는 없었던 서부이촌동 아파트들을 갑자기 수용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수용 발표를 들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데도 사업자 쪽은 변경안을 밀어붙이고, 시민들의 공익을 지켜야 할 서울시는 “인허가권만 갖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당연히 사업의 리스크만 훨씬 커졌고 전문가들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폰기힐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도시개발 사례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는 일본 롯폰기힐스는 한국과 외국의 부동산·건설 업체의 마인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롯폰기힐스를 성공시킨 일본 최고의 디벨로퍼 모리사는 이 기업의 소유자인 회장이 직접 개발 반대 주민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설득했음에도 토지 매수부터 착공까지에만 14년이 걸렸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입으로는 롯폰기힐스 사례를 노래하면서도 기법을 본받기는커녕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관과 결탁해 점점 사업 규모만 키우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에 벌이는 이런 일사천리형 대형 개발은 결국 실패 확률이 높으며 그 부담은 개발을 주도한 이들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임을 책은 경고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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