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가를 계속 짓고 부수면서 돈을 돌게 하고 경제를 지탱하겠다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요란한 포클레인 소리는 지금도 어디서나 들리는 익숙한 소음이다. 경제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집을 따뜻하게 하는 문제라면 대규모 공사만큼 방을 빨리 데우는 방식도 없다. 역사가 그랬다.
그러나 더는 삽이나 콘크리트 앞에서 경제란 놈이 꿈적도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규모 토목공사 벌인다고 수백만명의 백성들이 벽돌을 지어 나르고 품삯을 받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여전히 온통 공사판이다. 토건주의, 공사주의라는 두툼한 옷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제 그것이 거품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멈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한국 토건 경제의 풍경은 애처롭다. ‘거품붕괴’(디버블링)의 공포를 안고서도 계속 거품 유지용 ‘군불’을 때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은 <디버블링>에서 “어렵더라도 빨리 탈토건 경제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거품이 터져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민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 처방부터 보면, 이런 것들이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재택근무 그리고 완전 연봉제 도입 △사교육 폐지 △주 4일제 수업 도입 △등록금 100만원.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방안은 이른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 개념이다. 삶이 불안하고 팍팍한 것은 버는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막연한 불안 때문이다. 하여 종신고용을 약속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깎는 방안을 제안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직원들이 죽어라 일해야 직성이 풀리는 토건 경제 시각으론 납득할 수 없겠지만, 발랄한 창의력의 시대에서 일주일에 5일 일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또 공장 일은 기계가 다 하고 그나마 있는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워 쥐어짜는 방식이 토건 경제라면, 생태 경제는 숙련가를 키우는 방식이다. 생산과 혁신의 바탕인 지식의 축적을,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에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중산층들에게도 준비를 당부한다. 부동산에선 이미 붕괴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처분소득과 금융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중산층으로 분류될 수 없던 사람들이 널찍한 ‘외상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중산층으로 여겨지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중산층은 강요된 가능의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걸 견디는 방법은 없을까? 지은이는 그럴 때 생태적 삶이라는 간판을 내걸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소비의 억제를 강요당한 가난이 아니라, 적게 쓰고 적게 먹는 생태적 삶을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가난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왕 격는 고통인데 그렇게라도 해야 최소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사실 바탕은 생태경제학이 오랫동안 던져온 자기절제(auto-limitation)에 바탕한 대안적 삶을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탈토건의 시대를 여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지은이의 시선은 우선 박근혜에게 돌아간다. 현재 “한국의 주류 정치인들 중에서 최소한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색깔과 정책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결권’이 있는 메이저급 정치인은 박근혜밖에 없다”는 게 그가 내세운 이유다. 사실 분석적 기대라기보단 그렇게 믿고 싶은 희망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박근혜가 ‘생태’의 기치를 내거는 순간”의 위력을 상상하는 것이다. “모든 보수주의자가 토건파인 것은 아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토건을 버린다고 보수주의자의 정체성까지 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차기 ‘유력 주자’에게 던지는 말로 읽힌다. 망가지는 나라를 어떻게는 생태의 길로 돌려놔야 한다는 생태경제학자의 절실함과 조급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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