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지음
조지 오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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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이 새벽 3시 책읽기 /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8000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한밤에 읽으면서 ‘나는 왜 쓰는가?’란 질문을 ‘나는 왜 읽는가?’로 돌려 생각해봤다. ‘나는 왜 쓰는가?’와 ‘나는 왜 읽는가?’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혹시 차이점이 존재한다손치더라도 적어도 독자가 저자만큼 고통받기를 자처하는 한, 뭔가를 ‘추구함’이라는 점에서 보면 읽고 쓰기의 차이는 어슴푸레하게 희미한 정도 아닐까?

뒤라스는 사람은 한밤중에 펼쳐진 책이라고 표현했다. 심보르스카도 거의 같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독자인 우리는 동시에 자기 인생 이야기의 주저자 중 하나 아닌가?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고 오웰은 단언했는데 이 점은 읽기에서도 명백하다. 내가 타인과 뼛속 깊이 공유하는 것이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 하나뿐이라 하더라도. 또 그 타인과 맘속 깊이 연결되려 하지 않고선 제대로 읽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글쓰기의 출발은 다른 무엇보다도 불의를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것을 내 관점에서 약간 패러디 한다면 글읽기의 출발은 인간 공통의 한계와 슬픔, 고통을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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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리어, 톨스토이, 어릿광대’란 장에서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맹공격한 글을 소개한다. 평생에 걸쳐 셰익스피어를 반복적으로 읽어 왔고 75살에 이르러 작정하고 한번 더 읽어 본 대문호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광적인 헛소리, 억지스러운 농담, 시대착오, 부적절함, 외설, 진부함, 그밖에 수많은 도덕적·미적 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그런데 오웰은 이런 톨스토이의 글을 읽다가 궁금증을 느낀다. 그렇다면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에게 무슨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것일까? 그리고 톨스토이는 왜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리어왕>에 대해서 특별히 반감을 표현했을까?

오웰은 <맥베스>가 야망을, <오셀로>가 질투를 그렸듯이 <리어왕>은 포기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리어는 왕좌를 버리지만 모두들 자신을 계속해서 왕으로 대접해 주기 바란다. 그는 자신이 권력을 넘겨주면 남들이 그의 약점을 이용하리라는 것을 꿈도 못 꾼다. 그런데 이 리어왕의 인생 말년이 톨스토이의 개인사와 묘하게 겹친다는 게 오웰이 감지한 불의다. 톨스토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리어처럼 대가 없이 땅과 직위를 포기했단 것, 그리고 리어처럼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년의 톨스토이는 행복이 인간의 목표이고 그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쾌락과 야심을 포기하는 것이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라고 했고 그래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리 행했는데, 문제는 그렇게 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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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8000원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8000원

오히려 바로 그런 자신의 포기 행위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톨스토이는 리어를 닮았다. 그러니 리어를 불행하고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한 셰익스피어에 대한 톨스토이의 반감에 의심스럽고 심술맞아 보이는 점이 있는 게 오웰이 감지한 톨스토이의 불의다. 그래서 오웰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한다면 땅을 줘버리되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해지려고 하지는 말라. 행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남을 위해서 살 것이면 남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우회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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