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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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2〉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임희근 옮김/열린책들·각 권 9800원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라면, 필경 그는 비관적인 전망을 지녔다. 기발한 상상력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9) 얘기다. 낙원을 뜻하는 제목 <파라다이스>는 필경 반어적 표현이다. ‘지금 없는 현재’와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실낱 희구랄까. 일종의 농담이랄까.

<파라다이스>는 이름하여 베르베르족이라 칭해도 좋을 일군의 독자들에게 끈덕지게 사랑받는 ‘행복한 소설가’ 베르베르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나무> 이래 7년 만이다. 1쪽짜리 짧은 글에서 100쪽 남짓 길다란 글까지 17편이 묶였다. 출간도 되기 전에 예약판매로 이번주 베스트셀러 종합순위권에 올랐다. 벌써 2만부 가까이 팔렸다 한다. <개미>에서 시작된 그의 책 판매량은 국내에서만 550만부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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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는 ‘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의 날개가 이 단편집을 탄생시켰다고 밝힌다. 날이 갈수록 머리숱이 성기어가는 작가의 부지런한 상상의 결과로 빚어진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우선 작가가 ‘있을 법한 미래’라며 초대한 공상의 세계로 산책을 나가 보자. 아니, 소설 편집자의 카피 문구를 흉내내어 말하련다.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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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오존층 구멍이 커질 대로 커져, 일촉즉발 인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의 상황을. 오존층 파괴로 수천만명 사망. 유엔이 특단의 조처를 한다. 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진다. 뉴욕 맨해튼 대로에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들의 목 매달린 주검들이 일상적으로 내걸린다.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 겁도 없이 자동차를 운전했거나, 공장을 가동하여 가스를 배출했으며, 감히 모터 오토바이를 몰았으며, 혹은 언감생심 담배를 피웠거나 심지어 폭죽을 터뜨려 지구의 위기를 키웠다. <파라다이스>의 첫머리에 실린 단편 <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이 그려내는 ‘있을 법한 미래’의 모습이다.

베르베르가 그린 미래상은 이처럼 인류가 존립 위기에 놓여 있거나(<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이미 멸망하여 다른 종에게 지구를 내줬거나(<사라진 문명>), 제3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거나(<영화의 거장>), 전쟁광의 책동으로 끝내 멸망(<내일 여자들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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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상상해 보자.

남자들은 전설로만 남고, 여자들만 살아남은 세상을. 인류의 미래에 대한 베르베르의 상상은 <내일 여자들은>에서 ‘그래도 여자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남자들로선 서운할 결론으로 나아간다. 한 생물학자가 극한 방사능에 견뎌낼 수 있는 신인류의 배양에 성공하지만, 방사능을 이겨낸 건 오직 암컷 여성뿐이다. 마침내 전쟁광의 (핵)미사일 발사로 인류는 절멸하고, 배양된 여성 신인류는 새로이 어머니 지구의 품에서 새 세상을 일군다. 구인류의 절멸을 부른 전쟁광이 인도-파키스탄 갈등의 한 축인 파키스탄 군부로 그려지는 것은 “파리 15구의 한 카페에서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규칙적으로 소설을 쓰는 유럽 작가의 ‘안이한’ 시선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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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종교’가 폐지되고 ‘과거에 대한 기억’(역사 교육)이 금지된 세상을. <영화의 거장>에 담긴 ‘있을 법한 미래’다. 3차대전으로 인류의 70%가 죽고 난 뒤, 살아남은 자들이 악(전쟁)을 막기 위해 만든 3대 금기. 국가와 종교, 과거를 폐기처분한 자리에 유독 영화가 살아남는다. 그 미래 사회에서 한 거장이 만들어내는 영화는 인류 유전자에 각인된 ‘과거의 기억’을 일깨웠음인지 신인류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는다. ‘데이비드 큐브릭’이라는 그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후손이라는 그 거장이 영화를 만든 비법에 대한 섬뜩한 반전이 기다린다.

베르베르의 소설들이 일종의 두뇌 유희라면 다른 말로 일종의 진지한 농담이라 할 수도 있을까? 과거의 기억, 곧 역사 교육을 금지한다는 <영화의 거장>의 상상은 기실, 농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농담의 시원을 찾아 떠난 코미디언의 모험을 그린 <농담이 태어나는 곳>은 농담과 유머에 대한 베르베르의 생각을 드러낸다. 웃기는 일이라면 당대 최고이던 인기 코미디언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농담으로 칭찬을 받는 데 진력이 나는데, 그에게 농담 대본을 써준 작가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창작한 게 아니고 동네 카페들에서 얻은 것이라 말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농담 소비지를 거쳐 코미디언이 당도한 ‘농담의 생산지’는 오래된 비밀결사단체 ‘GLH’(=유머의 큰 터전)이다.

아리스토파네스와 채플린도 그 일원이었다는 이 단체는 2000년 동안 농담 생산을 통해 전체주의에 맞서왔다. 이들 유머 생산자 다수가 권력자를 비웃었다는 죄로 살해당했다. 베르베르는 말한다. “그 무엇을 두고도 웃을 수 있지만, 아무하고나 웃을 수는 없지요. (유머는) 국가 원수, 종교 지도자, 마피아, 부패관료 등의 어리석은 짓거리에 맞서 싸우는 세계 차원의 전쟁이죠. 그런데 우리의 적들, 두려움 때문에 민중을 압살하려는 자들은 늘어만 간답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열린책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