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획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사진 <한겨레> 사진부/한겨레출판·1만3000원
2008년 7월5일 서울광장을 메운 수십만의 촛불은 ‘국민 승리의 날’을 선언했다. 그러나 설익은 열광이 테르미도르의 공포로 전환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뒤따른 것은 지도부 검거 선풍과 집단소송, 촛불시민에 대한 비열한 낙인찍기였다. 법질서 확립을 명분 삼아 공권력이 전면화했고, 정보 기관을 강화하고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집권세력의 움직임은 한층 속도를 냈다. 도심의 아스팔트 위에 거대한 점묘화로 그려낸 ‘미래의 공화국’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던 것일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분노와 환희,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던 2008년 여름에 관한 비망록이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학자, 법률가,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의 시선에 포착된 촛불의 양상과 의미가 <한겨레>의 현장사진과 어우러져 한 편의 영상실록으로 태어났다. 글쓴이들은 섣불리 촛불의 승패를 가늠하려 하지 않는다. 손에 쥔 성과는 미약할지언정, 시민들이 일궈낸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체험은 각자의 의식 안에 ‘사회적 기억’으로 자리잡아 언제든 새로운 촛불의 동력으로 전환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은, 궁극의 승리를 향한 의지와 낙관이 담긴, 촛불의 자기실현적 예언인 셈이다.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은 말한다.
“촛불은 확연히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성찰에 뒤이은 창조적 저항, 그리고 대안의 물꼬를 트는 행보를 시작했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발생적 기원에서 소멸에 이르는 촛불집회의 연대기적 전개과정을 국면별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10개로 매듭화된 각각의 국면에는 ‘전조’·‘폭발’·‘진화’·‘역진’처럼 정세적 특징을 집약한 표제어가 붙어 있다. 전형적인 정세 분석의 형식이지만, 정치공학적 엄밀성에 기대기보다 체험과 공감에 바탕을 둔 ‘이해적 서술’에 충실하다.

글쓴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대규모 촛불시위를 촉발한 에너지가,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수위 시절의 영어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등을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폭발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5월 말 이후 촛불의 주력부대로 등장하는 386세대에겐 또 하나의 동력이 추가된다. ‘부끄러움’이다. “10대 소녀들의 촛불이 386 기성세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 부끄러움으로 새로운 촛불을 들게 했다.”(박영선) 이 부끄러움의 근원을 윤형근 한살림 상무는 “성장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우리 안의 속물성’에 대한 성찰”에서 찾는다.
문화제가 거리시위로 전환되던 5월 하순 정부와 공안당국이 유포했던 ‘운동권 배후설’ 또한 여지없이 논박된다.
“형식도 틀도 각본도 없는 우왕좌왕형 데모의 극치였다. 이 가열차지도 치열하지도 않은 촛불시위대는 정해진 틀을 완전 무시했다. 경찰도 시위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되고 송’ 분위기였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이들이 증언하는 촛불의 최대 성과는 ‘연대와 공공성의 발견’이다. 수백만의 시민이 “주권자로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그토록 오랜 기간 거대한 하나를 이룬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신진욱 중앙대 교수)이었고, “시장원리를 철칙으로 배워온 구성원들이 (교육·의료·물·공영방송·공기업 등) 공공성의 차원으로 의제를 넓혀간 것 역시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성취한 위대한 발견도 촛불에 내장된 두 개의 난제들과 조우했을 때, 교착된 전선을 뚫고 나갈 힘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것은 ‘폭력과 비폭력’ ‘정당성과 합법성’의 딜레마였다. 6월10일 이른바 ‘명박산성’ 앞에서 벌어진 ‘월담 논쟁’은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도 풀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었다.
“컨테이너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광장에 머무르고자 했던 사람들은 비폭력 노선의 견지가 촛불의 정당성을 지켜주며, 컨테이너를 넘어선다고 어떤 실질적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촛불이 켜질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았다.”(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물론 ‘폭력적이지 않지만 공세적이고 과격한’ 직접행동으로 매듭을 끊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6월 29일 비폭력 직접행동의 교범에 충실했던 와이엠시에이 ‘눕자 행동단’이 무자비한 유혈진압의 제단에 자신들을 내놓았음에도, 촛불과 공권력의 행동 패턴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 2009년 다시 타오를 시민들의 촛불 안에는 이 매듭을 풀어낼 현자의 지혜가 담겨 있을까.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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