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재 박규수 연구〉
김명호 지음/창비·3만8000원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행패를 부리다 평양 주민의 화공을 받아 불타고 승선자 20여명이 몰살당했다. 그해 9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탈했고(병인양요), 1871년엔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다(신미양요).
김명호(55) 성균관대 교수는 “병인·신미양요에 대한 연구조차 미국 쪽에 남은 문서로만 한다”고 탄식했다. 당시 조선 관리들의 자세한 현장보고서 등 많은 한국 쪽 자료들이 있는 터에 기이한 일이다. 그 조선 관리들 중심에 박규수가 있었다. 셔먼호 사건 현장을 지휘하고 보고서를 올렸던 그는 그해 2월 평안감사로 부임했다.
환재 박규수(1807~1877). <열하일기>를 남긴 연암 박지원의 손자. 북학파의 후예로 영·정조 시대 실학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요 ‘동도서기론의 맹아’를 싹틔운 개화파의 선구자. 김윤식·유길준·박영효·김옥균 등 한말 개화파 핵심 인사들이 거의 모두 그의 문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62년 진주 농민항쟁(민란) 사태수습을 위해 파견된 안핵사가 그였으며, 그전에 암행어사로 경상도를 돌며 그는 이미 민란을 예견했다. 대제학과 우의정 등 요직에 두루 중용됐고, 10년 동안 고종의 학문을 지도했으며, 고종이 가장 신뢰한 측근이었다. 대원군과도 절친했으나 개국정책 등을 두고 맞서기도 했고 정쟁의 중재자가 되기도 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혁파하려다 요절한 효명세자(익종)와 조대비가 총애했던 그는 ‘쇄국’ 이미지만 각인된 대원군, 그리고 ‘무능과 망국’ 이미지로 도배된 고종의 정치적 정체성과 개혁·개화·수구가 뒤엉킨 그 시대의 실체를 조명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는 1840년 아편전쟁 충격파로 흔들린 세계정세를 정리한 위원의 <해국도지>를 먼저 읽고 나라의 운명을 걱정한 경세가였고, 일급 문장가요 금석문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으며, 지세의 등 첨단 천문기기를 제작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이기도 했다.
“워낙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펴고 영향을 끼쳤기에, 19세기 한국사를 연구하자면 도처에서 그의 존재와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박규수의 생애와 사상과 문학에 관한 종합적 연구는 19세기의 총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호 교수는 <환재 박규수 연구>에서, <열하일기 연구>에 이어 1991년부터 20년 가까이 박규수를 천착한 이유에 대해 그렇게 밝혔다. <환재 박규수 연구>는 그가 작심한 박규수 연구 3부작에서 생장과 철종 시대까지(1807~1863)의 활동을 다룬 책이다. 이 책 출간 전에 셔먼호 사건에서 신미양요까지(1866~1871)의 대외활동 부분에 초점을 맞춘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을 먼저 냈다. 남은 건 박규수 만년의 활동 부분인데, “<환재 박규수 연구>는 중간결산”인 셈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기존 연구들이 없지 않으나, 예컨대 그의 실학 계승 여부에 관한 논저들은 제한된 자료들에만 의존한, “구체적 실증이 결여된 막연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박규수의 글 대부분을 수록한 <환재총서>도 간행했고 거기 수록되지 못한 서신들도 수집·섭렵했다.
김 교수는 셔먼호 격퇴와 관련해 박규수가 대미수교론자였느냐 아니냐, 개국론자였냐 쇄국론자였냐는 항간의 논란은 시대상황을 도외시한 무의미한 얘기라고 말했다. 개화파-척사파의 대립은 1876년 개항 이후 본격화했고, 셔먼호가 불탄 것은 불법적 도발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일본의 메이지시대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 실패를 경험한 중국조차 박규수와 동시대인들인 증국번이나 이홍장 등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가 활발한 데 비해 우리 쪽의 그 시대 핵심인물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놀라운 것이라며, 박규수 바로 앞세대인 정약용이나 김정희, 박지원 등에 대한 높은 관심과도 대비된다고 했다. 그는 “박규수가 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가 망국이라는 모든 원죄를 뒤집어쓰고 있고, 당시의 모든 걸 부정적으로 그리는 식민사관과 그에 주눅든 정신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한 지방 선비가 소문을 모아 쓴 <매천야록>이 그 시대 연구의 핵심 텍스트가 될 만큼 우리의 당대 연구는 저널리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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