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개인용 컴퓨터가 많지 않았다. 당연히 컴퓨터 바이러스란 말도 낯설었다. 컴퓨터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컴퓨터를 쓰기 전에 손을 깨끗이 닦기도 한 시절이다. 그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이란 게 나왔을 땐, 누구는 백신프로그램이 담긴 상자를 모니터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어서 나아라” 했다는 게 과장은 아닌 듯하다.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안철수는 어느 날 쓰던 컴퓨터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 잘못 걸린 거야.” 뭐든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손에서 바이러스는 곧 해부됐다. 고된 작업 끝에 작동원리를 찾아내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첫 바이러스 백신 ‘V3’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로부터 20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는 그 20년의 이야기를 직원들의 목소리로 담은 책이다. 한 벤처기업의 성공 비결을 직원들의 육성으로 담은 경영서적으로도 읽히지만, 구석구석 안철수의 손때가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좀 거칠게 말하면 직원들의 안철수 이야기에 가깝다.
안철수는 완성된 천재형에 가깝다. 명석한 두뇌, 감각적인 예지력을 갖추고도 책벌레에 노력파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 앞에 깍쟁이 같은 천재란 단어가 어색한 것은 바탕에 깔린 그의 품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착하다. 안철수연구소의 가장 큰 자산은 고객들이 주는 신뢰이다. 이 기업은 속이거나 폭리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많은 부분이 안철수 개인에서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안철수는 안정적인 의대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88년부터 무려 7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바이러스 백신을 세상에 뿌렸다. “이유요? 내가 만든 백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어요.” 한 해 500억원을 버는 회사가 된 지금의 기업이념은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이다.

기자로서 직접 경험한 두 가지 사례를 기억한다. 책에서 직원들이 소개한 부분과 다르지 않다. 99년 12월 정보통신부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와 아이티(IT)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밀레니엄(Y2K) 바이러스였다. 2000년 1월1일 0시에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전산오류까지 겹쳐 컴퓨터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였다. 바이러스 백신업체들은 천년에 한번 오는 대목을 놓칠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날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보안 관련 제품 보도자료가 수북이 쌓였다. 안철수연구소만 예외였다. 침묵을 지키던 안철수연구소가 기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내용은 의외였다. 면밀한 분석과 조사 결과,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기자실에서 밤을 새워 대기한 기자들은 안철수연구소의 예상대로 평온하게 1월1일 0시를 맞았다.
또 하나. 2000년은 닷컴 거품이 한창 부풀어 오르던 시기였다. 복덕방도 테크라는 단어를 상호에 넣어 코스닥에 등록을 한다는 시기였다. 99년 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안철수연구소는 단연 등록 1순위였다. 투자 제안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안철수연구소는 예상을 깨고 닷컴 붐이 꺼지고 난 2001년에야 코스닥 문을 두드렸다. “큰돈이야 벌었겠지만, 코스닥 거품이 빠지고 나면 결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우리 사주를 받은 직원도 큰 빚을 떠안을 게 뻔했어요. 못할 일이었어요.”
안철수연구소는 사업 초창기 돈에 한창 쪼들릴 때, 세계적인 보안업체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우리가 산 일본업체의 사장은 요즘 요트에 푹 빠져 살아요. 요트 한번 제대로 타보시겠어요? 1천만달러 줄 테니 V3 파세요.” 안철수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네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희망을, 우리 회사의 영혼을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순 없지요.”
안철수연구소의 기업가 정신과 경영 철학은 돈만 보고 달리는 기업들에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물욕만 부추기는 새 정부에게도 단어만 바꾸면 같은 질문이다. “전 기업의 목적이 수익 창출에 있다는 명제에 의문이 있습니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려면 먼저 고객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든 다음 그것을 팔아야 합니다. 수익이란 목적이라기보다 결과에 해당하지요.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다가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2005년 안철수 대표 퇴임사에서)
이 책은 왜 ‘안철수연구소가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지를 설명해 주지만, 안철수를 뺀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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