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껍데기에 들어가 있는 주꾸미. 현지에서는 ‘소랑패기쭈꾸미’라 부른다(위)/서해비단고둥이 모래 위를 기어간 자국이 물음표를 닮았다.(아래) 사진 허철희
소라 껍데기에 들어가 있는 주꾸미. 현지에서는 ‘소랑패기쭈꾸미’라 부른다(위)/서해비단고둥이 모래 위를 기어간 자국이 물음표를 닮았다.(아래) 사진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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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하는 꽃길 따라-문인들의 봄편지 /

선생님께

복수초 노루귀 피고 매화꽃 벙그러질 때부터 소식을 전하려 했습니다만 겨울의 따뜻한 날씨 탓이었는지 꽃도 꽃답지 않아서 못내 기다리느라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한편으로 굳이 저의 꽃소식이 아니어도 선생님 마음에 봄이야 이미 와버린 것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이제 어느덧 매화꽃도 시나브로 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이렇게 늦게서야 몇 자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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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는 것이 어디 매화꽃뿐이겠습니까? 진달래도 개나리도 피었다 지고 앵두꽃 복사꽃도 피었다 지고, 필 때는 천지에 꽃 아닌 게 없어도 이울 때는 속절없는 것을- 그 속절없음으로 하여 다시 꽃피워낼 수 있는 것을- 그러므로 저의 편지는 꽃소식이면서 처음부터 꽃소식이 아닌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혼자 속으로 웃다가 차라리 다 지워버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소식 몇 가지만 안부삼아 전하기로 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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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얼마 전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아니 감자를 심으려고 씨를 꺼내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열 궤짝 가까이 되는 씨감자가 하나같이 죄다 폭삭 썩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안 처마 밑에 있는 항아리에 넣어놓고 얼지 말라고 꼭꼭 싸매둔 게 그만 탈이 붙었던 것입니다. 지나친 것이 화근이었지요. 죽어서 겨울을 난 씨감자를 보면서 저는 많은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농사지은 것이랍시고 조금씩 보내드리면 맛있다고 하면서 잡수시는 분들 그리고 선생님을 말입니다. 조금씩 노나먹기는 감자만한 것이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씨앗 하나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얼치기 농사꾼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여기저기 알아보지도 못하고 시장을 갈 밖에요. 그러나 때가 조금 늦은 탓에 씨감자가 다 들어가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비싸기 짝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마침 아는 형수님 한 분이 하는 청과상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다 나물 지총과 뭍의 나물 달래를 섞어서 담근 지총김치. 지총의 은근한 갯내음과 달래의 알싸한 봄 향기가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바다 나물 지총과 뭍의 나물 달래를 섞어서 담근 지총김치. 지총의 은근한 갯내음과 달래의 알싸한 봄 향기가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형수님 혹시 씨감자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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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시아제, 해마다 감자 안 심었어?”

 “왜 안 심기는요. 하도 꼽꼽을 내서 싸 놨더니 열 궤짝이나 되는 놈의 씨감자가 싹 다 썩어버렸지라우, 챙피해서 말도 못허고….”

 “비료 농약도 않고 비니루도 안 씌워서 무공해로 헌다등만 속상힜겄네. 먹을 놈이라도 심어야 헐 틴디?”

 “그러게 말이요. 속상헌 거 생각하면 심고 싶은 맘도 없소마는, 어쩌요 아그덜 군입정이라도 헐라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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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는 나를 쳐다보며 혀를 차던 형수님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어디 이리와봐, 여그 한 궤짝 있는디 쓸 만헌가 보게” 하시며 저를 가게 한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감자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씨감자로 쓰기에 알맞았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그 감자를 돈도 안 받고 두 궤짝이나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세상은 이래서 때론 폭폭하다가도 살맛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씨감자 두 궤짝이 제 썩어버린 열 궤짝보다도 더 기가 막히게 소중하고 많은 거였지요. 이제 큰 병만 안 생기면 유월 하지쯤 다시 조금씩이라도 감자를 노나먹게 될 것을 생각하니 언제까지나 마음이 환해져서 감자두둑을 만드는 괭이질이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감자를 심어 놓고 그 이튿날은 바다에 나갔습니다. 달력을 보니 한 달 두 번의 사리 중에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뭍의 것들은 천지에 눈 아닌 것이 없는 듯 구석구석, 심지어 길가의 돌멩이까지도 파아란 눈을 싹틔워 내느라 애쓰는 것 같은데 바다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천으로 바지락에 게 고둥이며 여러 가지 나물들이 자라납니다. 봄은 오히려 바닷속에 먼저 와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씨감자 열 궤짝이 폭삭 썩어벼렸지요.
공짜인심으로 감자농사를 겨우 연명했습니다.
호미 한자루 들고 갯가에 나가 보니 바다나물과 고둥 천지….
주꾸미, 해삼도 걸려들었습니다.
변산 바다는 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손에 들기 좋은 그릇 하나와 바닷물을 퍼 담아올 통 하나, 그리고 비닐봉지 한두 개와 잡은 것을 넣어서 씻을 망 하나, 호미와 칼을 챙겨서 물때보다도 한 시간 반쯤 먼저 나갔습니다. 그 한 시간 반 동안 물이 빠지는 것을 따라가며 갯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릇에는 고둥과 게를 주워 담고 바지락이나 다른 조개들을, 그러니까 서로 닿아도 깨지지 않는 것을 캐서 담습니다. 비닐봉지에는 상하기 쉬운 해삼이나 낙지, 주꾸미, 웅덩이에 갇혀있는 물고기들을 담습니다. 또 다른 비닐봉지에는 바다나물인 지총을 뜯어서 담고 파래도 한 주먹 뜯어 담습니다.

박형진 시인
박형진 시인

 호미 하나만 들고 하는 이 갯것 중에 술안주 감 되기 십상인, 그래서 더 즐거운 해삼, 낙지와 주꾸미 들은 사실은 쉽게 눈에 뜨이지도 않고 있다 해도 기껏 두세 마리지요. 바닷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해삼도 두 마리나 잡고 주꾸미도 한 마리 잡았습니다. 고둥은 너무 많아서 큰 것만 주웠고요. 지총은 쇠지 않은 걸로 꾸적 섞이지 않게 나수 뜯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완전히 빠졌다가 다시 밀려들어오기 시작해서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양손에 든 것이 무거워서 혼이 났으니 제가 한 갯것의 양을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언제 봐도, 언제 와도 변산의 바다는 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었고 저 또한 항상 바다를 향해 제 마음을 담아서 경배하듯 한동안 이윽히 바라봅니다.

 선생님,

 이제 뜯어온 지총으로 담은 지총김치(혹시 아십니까?) 이야기만 하고 그만둘까 합니다. 아 참! 그러기 전에 달래 먼저 캐다 씻어 놓은 이야기를 뺐군요. 지총김치는 달래가 지총의 삼분의 일 정도 되게 섞어서 담아야 김치가 되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우선 달래와 지총을 준비해 적당량의 풀(찹쌀이나 밀가루)을 쑤어서 젓국과 고춧가루를 풀어 버무리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파 마늘을 넣지 않아야 한다는 것, 단것과 통깨는 조금씩 꼭 넣어야 된다는 것, 그리고 갓김치처럼 익혀서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기도 하지요? 바위에 돋는 바다 나물과 뭍의 나물을 섞어서 담그는 것 말입니다. 저는 저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시던 것들을 먹고 커서는 잊어버렸는데 작년 재작년에 저희 동네가 친정인 어떤 누님 댁에 갔다가 이 옛것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구마구 칭찬을 하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요. 실제로 옛 맛에서 한 가지도 변하지 않고 맛있었고요 또 그래야 한 보시기 얻어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담는 방법을 배워 온 것은 정말 덤이었지요.

 선생님,

 이 편지를 받으시거든 저번처럼 굳이 힘들게 답장하지 마십시오. 실은 저번 편지를 뜯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항상 그 다음 편지가 와서야 먼젓 것을 뜯는 버릇이 있답니다. 편지는 뜯지 않고 있는 한 영원히 설렘과 기대로 남아있어 비록 한 장이라도 여러번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번 편지를 제게 읽게 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시겠지요?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오셔서 주꾸미 회라도 드실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평화로우시기 바랍니다. 박형진 / 시인, 농부

⑥변산 박형진 시인 박형진 시인은 1958년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 <창작과 비평>에 <봄편지>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1994년 첫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를 펴냈으며, 2001년 두 번째 시집 <다시 들판에 서서>(당그레)를 냈습니다. <쭈꾸미통신>(첫 출간 당시 제목은 <호박국에 밥 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모항 막걸리집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두 권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현재 고향인 전북 변산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