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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말씀하셨다. “너의 눈앞에 있는 것을 주목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리라. 또한 감춰진 것으로서 드러나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도다.”(도마복음 5)

마태복음(10:26)에는 매우 중요한 ‘너의 눈앞에 있는 것을 주목하라’는 구절이 없다. “그림자와 같은 허상을 버리고 눈앞에 있는 그리스도(진리)의 실상(道)을 깨달아야 하며(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이때 ‘오직 진리밖에 없다’는 하나의 신비가 삶 속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은 자기가 본래 그리스도(부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본래시불·本來是佛). 그러므로 죄는 자기의 본성(그리스도)을 깨닫지 못하여 실상의 진리(천국)를 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무명)이다.

‘나의 본성을 자각 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둘이 아닌 하나이며, 천국의 감추어진 신비들은 모두 드러나게 된다. ‘영이신 하나님’은 창조주와 피조물로 나누어 질 수 없는 불가분의 진리로서 무소부재하며, 천국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다. 모든 것은 신의 현현이며, 천지에 충만한 천국의 자리는 지금 여기의 모든 곳이다.(the Kingdom is everywher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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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의 눈에서 이원성의 장애가 벗겨지고 그가 박해하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편재하는 비이원성의 그리스도를 보았다. 성경은 바울처럼 겉 사람의 눈에서 비늘(에고)이 벗겨져 광명을 찾게 된 자를 ‘영의 눈을 뜬 자’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자를 소경(에고)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내면의 하나님(그리스도)을 깨달은 눈’으로 이 세상을 볼 때 병과 고통이 사라진 광명의 실상(진리)을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금강경에서도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약 일체의 형상이 형상 아님을 안다면 하나인 여래(진리)를 보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미혹되면 영원한 ‘화면과 같은 진리(순수에너지)’를 변하는 화면(에고)처럼 여기지만, 영안으로는 화면(사물)이 진리인 실상(생명)으로 변한다. 불이 다 켜지면 모든 화면이 사라지는 것 같이 빛(진리)의 홍수 속에서 모든 대상이 사라진다. 둘이 아닌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 이원성인 현상계는 영화의 화면처럼 ‘한 줄기 빛’으로부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재미있는 영화인 것을 알기에 모든 일을 자유롭게 오락처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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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어미를 얻고 나서 그 자식을 알 수 있다”(도덕경 52장), 즉 어미로서, 존재의 근원으로서 충만한 도(실상)를 알면 모든 현상을 꿰뚫어 알 수 있다고, 성리학은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러 나의 지식을 극진하게 이른다.’(격물치지·格物致知)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시록 1장 17-18절)라고 하였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그리스도(실상)의 생명이 지금 우리들 속에 깃들어 있으며, 각자의 자신 안에 무한한 가능성과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내면의 오묘한 진리(그리스도)의 작용에 의하여 마음의 법칙 그대로 이루어진다.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에고)은 그 마음의 파장대로 불행으로, 감사와 기뻐하는 마음은 눈앞에 영원히 행복한 천국의 진리로 드러나게 된다(잠언 4장 23절).

글 구자만 신학박사·개신교장로·신흥지엔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