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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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벽제동광원 박공순 원장이 87살에 곡기를 끊고 활짝 웃으며 주변 사람들과 이별하고, 세상을 떠나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단식하며 세상과 이별하는 마지막 나날들은 공동체를 자주 찾은 김원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원장의 스승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폐병 환자들과 고아들을 돌봐 ‘맨발의 성자’로 불린 이현필 선생도 벽제동광원에서 별세했다. 이현필은 1964년 53살로 임종하면서 “아, 기쁘지 않은가. 아~ 사랑으로 모여서 사랑으로 지내다가 사랑으로 헤어지라!”고 유언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오! 기쁘다. 오! 기뻐! 오메, 기뻐서 못 참겠네. 이 기쁨을 종로 네 거리에 나가서 전하고 싶다. 제가 먼저 갑니다. 다음에들 오시오”라고 눈을 감았다고 제자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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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필의 스승인 전남 화순 도암면의 성자인 이세종선생도 죽음이 가까워오자 석달동안 곡기를 끊고 삶을 마쳤다. 당시 화순 화학산에 골짜기에 찾아온 다섯명의 제자들이 마른 장작처럼 마른 그를 둘러메자 그는 “올라간다 올라간다 올라간다”고 춤을 추듯 노래하며 별세했다고 전한다.

얼마전엔 불교계에서 선승이자 학승이었던 연관 스님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즉시 곡기를 끊고 열반에 들었다. 원불교에서도 용타원 서대인 종사를 비롯해 말년에 곡기를 끊고 열반에 드는 분들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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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고갈될수록 생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생사에 초연하게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수도자로서 생사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깨달음과 믿음이 있었기에 그처럼 단호하고 초연한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할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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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동광원 농장 배추밭에서 일하는 박공순 원장(맨왼쪽)의 생전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벽제동광원 농장 배추밭에서 일하는 박공순 원장(맨왼쪽)의 생전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는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영적 의미를 발견하는 자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도마복음 1장)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말씀(진리)의 영적 의미를 발견하는 자, 즉 자기의 본성(참나)을 깨닫는 자는 탄생과 죽음의 분별심(허상)을 초월함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실상)을 발견한다(생사해탈). 탄생과 죽음의 이원성은 자기를 육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환영이다. 만일 끊임없이 변하는 육체와 마음의 ‘나’(거짓 나)를 자기와 동일시하지 않고(무아·無我),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내면의 ‘신성 즉 불성’(참나)을 자각한다면 꿈과 그림자와 같은 육체(相)의 죽음은 허망하다(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 금강경).

우리의 본래성품(本來面目)은 본래 예수(부처)와 동일한 근본(arche)으로 생사(生死)의 경계가 없고,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One)이다. 온 우주에는 ‘오직 진리뿐이다’는 예수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 말이나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불멸의 실재(One)에 대한 지혜를 획득한 자이다. 이렇게 진리를 알게 된 자 즉 깨달은 자는 생사의 분별에 의한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육체와 정신의 이원성을 정복하였기에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이긴 자’가 된다. 그러므로 김흥호 목사는 “기독교의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교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재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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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2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만이 유일한 독생자(참나)가 아니라 신(진리)으로부터 발출되어 나온 우리도 진리를 깨닫게 되면 독생자(참나)라는 것이다. 또한 이원성이 제거된 참나(생명)는 ‘하나 됨’과 동시에 이 세상에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부처)가 되어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소유한다(成佛). 탄허 스님은 범부도 수행을 통해서 시공간이 끊어진 마음자리(참나,One)를 자각하면 ‘잠에서 깨어난 자’인 부처와 예수처럼 된다고 하였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에 대하여 “신심(信心)은 도(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일체의 선한 법(法, One)을 길러 내느니라”고 한다. 이러한 ‘중도의 진리’(One)는 물질이 곧 에너지요, 에너지가 곧 물질이며,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一卽一切, 신심명)인 경지, 즉 막힘이 없는‘하나의 자리’(무애법계·無碍法界)를 말한다. 따라서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인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나는 본래 불생불멸하는 신(부처)이다’(本來成佛, 요한복음 10:34)는 것을 확인하며, 주위 환경의 지배를 벗어나는 참된 자유를 누린다.

우리는 고통을 가져오는 생과 사, 나와 너, 선과 악 등의 이원성인 ‘나의견해’, ‘나의 옳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즉 비이원성인 자신의 본성(神, 부처)을 깨달아 변하는 몸과 마음이라는 ‘거짓 나’(허상)를 벗어 버려야 한다(無相). 이 때 자연스럽게 종교의 목적인 ‘진리와 하나’가 되어 영원한 참나(실상)의 즐거움을 누린다(상락아정· 常樂我淨). 그러므로 존 스톤 신부는 하나(One)의 진리를 통하여 “미래에 탄생할 새로운 기독교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인 불교의 지대한 영향 속에 탄생될 ‘동양적 기독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글 구자만 박사 (신학자·개신교 원로장로·신흥지앤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