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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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또한 안타까운 사건과 사고가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성경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서 1장 2절)고, 불경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화하며(萬法流轉·만법유전) 서로 상반되는 다툼이 있고, 다툼 중에서도 조화가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인과법을 주장하였다. 모든 생각, 말과 행위는 대상과 더불어 상호작용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것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서로 상응되는 도리이다.

인연으로 생겨난 존재는 공(空)이며, 만물은 모두 비어있는 헛된 것이다(제법공·諸法空). 우주 만물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현상세계는 모두 텅 비어있다(오온개공·五蘊皆空). 혜능대사는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인데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육조단경)라고 하였다. 양자물리학에서 물질이란 궁극적으로 확실한 것이 없는 에너지로서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으며(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끝까지 쪼개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고 공(空)의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3조 승찬대사는 “이 세상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헛꽃 같은데,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신심명)라고 하였다. 생사, 유무, 주객 등의 ‘이원론적인 분별’(ego)을 다 내려 놓아버려야 하는데, 왜 이를 잡으려고 애를 쓰느냐고 묻고 있으며, 영원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에고적인 아집을 버리고 ‘순수한 본래성’(참나)인 ‘무아(無我)’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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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은 본래 없으므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지금의 이 세계가 꿈과 같은 것임을 인식하며, 또한 원자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즉 현대물리학의 세계관에서는 물체나 인간의 몸을 허상이라고 증명하고 있다(에너지일원론). 그러나 헛된 겉모습의 상(相)이 있으면 범부이며, 중생이지만 진리(One)의 깨달음을 통하여 상(相)이 없으면 성자요 부처가 된다. 즉 상(相)이 없으면 우주 만유가 그대로가 진리(神)임을 자각하게 된다(법화경).

텔레비전의 화면과 같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시공간의 각 점(사건)의 집합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면 즉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함께 계속 일어나면 이것을 물체의 존재(생주이멸·生住異滅)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눈(靈眼)으로 보면 일체의 것이 다 텅 비어 있는 것이며(당체즉공·當體卽空), 지금 여기에 있는 전체로서의 하나(One)인 생명(神性) 외에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 안에 만들어진 세계는 환영이지만, 그러나 진리의 세계는 신성(불성)으로 충만하다(불심충만어법계·佛心充滿於法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린도후서 4장 18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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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헛된 공(空)임을 깨닫고 자신의 이원적인 집착(ego)을 버리고 진리로 거듭나게 되면 지금 여기서 조화와 환희의 천국(열반)을 맛보게 된다(요한복음 3장 3절).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영원한 행복과 청정하며 무한한 능력의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상락아정·常樂我淨). 예수는 “살리는 것은 영(靈)이니 육(肉)은 무익하다”(요한복음 6장 63절)고, 6조 혜능대사는 “우리 모두가 인생을 긍정하여 속세를 신성한 곳으로, 또한 번뇌가 보리(菩提)인 깨달음(극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육조단경)고 하였다. 따라서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나 목걸이를 볼 때 형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는 금이라고 하는 그것의 바탕을 일시적으로 잊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하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원한 ‘하나(One)의 바탕’(신성, 불성)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영적 수준을 높여야 되지 않을까?

글 구자만(신학박사· 개신교 장로· 신흥지앤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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