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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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살던 집 대문 바로 옆에는 수돗가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만 세살이 좀 안 되었던가. 밖에서 놀다 온 꼬맹이는 기특하게도 수돗가에서 깨끗이 세수하고 손발을 씻었지요. 그런데 다 씻고 나오다가 나무 바닥에 낀 이끼에 미끄러져 그만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바지며 러닝셔츠에 온통 시퍼런 이끼 물이 들었고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났지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지금도 그때 일이 생각나면 구순 노모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니, 그 어린 게 제 딴에는 잘한다고 깨끗이 씻다가 옷을 버린 걸 가지고 그렇게 혼을 냅니까.” “그땐 내가 젊어서 그랬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활약했던 서산대사 휴정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영정 그림을 보고 이러셨다지요. “야,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이제는 내가 너로구나.”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80년 전에는 저 그림이 이렇게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를 그대로 그린 거라 여겼는데, 이제 갈 때가 되어 보니 내가 저 영정 속 그림에 불과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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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옛날 수돗가에서 미끄러져 옷을 버리고 엄마에게 혼난 꼬맹이와 고만한 꼬맹이를 손자로 둔 지금의 이 할배는 같은 ‘나’일까요. 저 꼬맹이와 이 할배는 겉모습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다르니 말입니다. 과연 나는 죽은 뒤에 저 수돗가 꼬맹이의 생각과 모습일까요, 아니면 걸핏하면 화를 내는 지금 이 쭈글쭈글 할배의 생각과 모습일까요. 아니, 순진한 꼬맹이 때 죽었으면 천당에 갔을 텐데 그 뒤 평생 남 미워하고 못된 짓 하다가 늙어 죽으니 지옥에 가는 걸까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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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알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동서고금의 철학이며 종교에서부터 우주, 양자물리학과 진화론 그리고 뇌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공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이루어낸 정신적 물질적 예술적 성취들 자체만 바라보아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아니, 우주가 137억년 전 한 점에서 시작되어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끝없이 팽창해가고 있다는 걸 무한우주 한 귀퉁이 지구에서 오글거리다가 백살도 못 살고 죽는 인간이 어찌 알게 되었을까. 우주먼지 수소가 뭉쳐 헬륨이 되고 별이 되고 별의 에너지에 힘입어 생명체 세포 하나가 탄생하고 물고기, 공룡, 새가 나오고 원숭이가 나오고 사람이 나오고. 이걸 어찌 알게 되었나요. 어떻게 사람이 저 높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달나라 별나라를 갈 수 있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너무 신기합니다. 조선의 화가 정선이 먹물과 붓 한자루 가지고 그린 진경 산수화를 보거나 바하의 B단조 미사곡을 듣고 있노라면 사람이 정말 신의 경지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아, 조물주께서 빅뱅에서 시작된 별들과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간에 이르게 하시고 인간인 ‘나’로 하여금 당신과 우주를 알게 하시는구나. 이건 정말로 ‘조물주의 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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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의 조화. 그 출발은 물리적 단계에서부터입니다. 빅뱅 이후 나타난 수소, 산소, 탄소를 비롯한 여러 원소들은 물리적 차원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수소 원자 두개와 산소 원자 한개가 만나면 전혀 차원이 다른 물 분자가 나옵니다. 화학적 단계이지요. 어떻게 산소 수소가 만났는데 물이 되나요. 이건 창발이고 종교의 비유적 표현을 빌면 ‘창조’입니다. 탄소와 수소가 만나 유기물이 생기는 화학적 단계를 넘어서서 이 유기물로부터 세포가 출현하는 생물학적 단계에 이르면 정말로 경이 그 자체입니다. 그 세포들이 번식을 위해 유전물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변이 유전자들이 나타나 그중에 환경에 잘 적응하는 변이들이 번성합니다. 이런 환경적응을 통해 신경조직이 생기고 신경조직들이 환경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작용을 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다윈의 진화론은 잘 설명해주지요. 그리고 이 개체가 외부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뇌 신경망의 작용을 통해 ‘의식’이 떠오르고 이 의식이 개체 ‘나’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진화과정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생물학의 단계에서 심리학의 단계로 다시 뛰어넘는 창발이 이루어지는 거죠. 어떻게 신경조직의 물리 화학적 생물학적 작용으로부터 ‘의식’이라는 심리 현상이 떠오르고 이 의식이 ‘나’를 인식하게 된다는 걸까요. 정말로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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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데카르트를 떠올릴 것도 없이 우리는 정신과 물질을 처음부터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여겨왔지만 최신 뇌 신경과학 이론에 따르면 물질을 떠나서 정신은 결코 따로 있지 않다는 거죠. 정신은 물질에서 출발하여 물질을 넘어선 것입니다. 뇌라는 신경조직, 물질 덩어리로부터 물리, 화학, 생물, 심리적 창발을 거쳐 ‘나’라는 의식이 떠오르는 건 전체이신 당신의 창조 신비입니다. 당신께서 진흙으로 주물럭 주물럭 맞춤형으로 눈, 코, 귀, 입과 이와 별도로 정신을 만드는 방식의 창조가 아니라 우주먼지에서부터 출발한 우주와 생물의 진화과정을 통해 물질로부터 ‘나’라는 정신작용이 떠올라 결국에는 나를 인식하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나’를 인식하게 되면 ‘너’도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제 나와 너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또 한번 창발합니다. 나와 너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개체들의 속성과는 전혀 다른, ‘사회’라는 현상이 생기고 ‘문화’라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리고 집단 지식과 활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우주의 속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도 만들고 유전자 조합 면역백신도 만들고 저 스스로 학습 능력이 있는 인공지능도 만들고 음악과 미술을 통해 우주의 본질을 그려냅니다.

마침내 우리는 나의 유한성을 인식함으로 무한이신 당신을 알게 되고 당신을 닮아갑니다. 나를 인식하게 되면서 너의 고통을 이해하고 비로소 ‘나’라는 이기심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또 다른 ‘나’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뛰어넘음으로써 하느님께 도달하게 되니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 하느님의 자녀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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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를 인식하는 나. ‘나를 인식하는 나’를 인식하는 나. 이렇게 무한소급하는 ‘나’에 대한 인식의 ‘지평’, ‘신비’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한 라너 신부님은 말씀하셨죠. 불교의 선(禪)도 바로 이 ‘나’, ‘진여’(眞如)를 깨닫는 과정이지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물질의 기나긴 진화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에 유한한 몸과 마음으로 잠시 와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유한성을 깨달아 앎으로써 ‘나’를 넘어설 수 있으니, 나는 분명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입니다.

그래서 내가 악인이건 선인이건, 의로운 이이건 불의한 이이건 나는 분명 하느님의 자녀임을 제대로 알 일입니다.

글/<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

*이 시리즈는 <공동선>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