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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조현이만난사람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도 민심도 멀어질 뿐”

등록 :2022-08-31 08:00수정 :2022-08-31 09:28

[이것이 K-정신이다] ⑤ 40여년째 은둔 수행중인 현기스님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인데.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섯번째는 지리산 상무주암에 40여년째 은둔 수행 중인 현기(82) 스님이다.

경남·전남·전북 3도 800리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예부터 금강산·한라산과 함께 신의 거처인 삼신산의 하나인 민족의 영산으로 꼽힌다. 국립공원 1호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태초의 여신인 마고할미의 전설을 품고 있다. 천왕봉엔 마고할미를 모신 성모사가 있고, 노고단은 마고할미에게 매년 제사를 지낸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다름을 아는 산’(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처럼 동과 서, 호남과 영남이 함께 어우러지고, 다른 종교·사상까지 품는 어머니 산이었다.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지혜의 상징인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줄임말로 여기고, 문수보살이 1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이 산에 깃들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롭게 된다고 믿는다.

상무주암에서 보이는 지리산. 조현 종교전문기자
상무주암에서 보이는 지리산.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찌 지리산뿐일까. 전국 곳곳의 명산엔 하늘과 도(道)가 통하기 위해 심산유곡에 은거하며 치열하게 수도한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어디나 수도처였다. 그래서 불교학자이기도 한 문광 스님은 한반도의 풍수를 수도자가 좌선하는 모양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육체적·현실적 쾌락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일하고 전쟁하는 데 쓰는 에너지 이상으로 하늘과 자연과 소통하며, 정신적 깨달음을 위해 심혈을 쏟는 수도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뭇별처럼 많은 이들이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은거하며 수도했던 지리산에서 현대에 들어 가장 오랫동안 은둔하며 수행한 자가 머문 곳이 해발 1100m 고지 상무주암이다. 지난 4일 현기 스님이 홀로 40여년을 지낸 상무주암에 오르는 길은 설렘이 고행으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백무동 계곡을 거쳐 마천면 삼정리에서 상무주암에 오르는 직선 길은 시종일관 급경사다. 음식물이 귀한 심산에서 수행하는 노승을 위해 음식을 메고 가다 보니, 경사는 덜하지만 멀다는 영원사 뒷길을 택해 올랐다가 조난을 당할 뻔했다. 때마침 장맛비까지 만나 천신만고 끝에 상무주암에 도착했다.

현기 스님의 참선 정진하는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현기 스님의 참선 정진하는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스님은 어찌 이런 곳에 머물러,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중생의 푸념에, 현기 스님은 “스스로 그런 것을 난들 어찌하겠는가”라고 껄껄 웃으며, 지리산 같은 품으로 맞는다. 암자의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중생의 갈증을 녹인다. 갈증과 갈애가 깊지 않다면 어찌 이토록 시원한 감로수를 맛볼 수 있을까.

“한번 (깨달음이) 확연하면 다시 어두워지지 않는데, 어찌 다시 어두워진 것입니까?”

현기 스님이 죽비를 날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상무주암에 올라온 사람 가운데 이렇게 산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한 이는 처음이라는 것이고, 더구나 16년 전이긴 하지만 두번이나 왔던 길을 이토록 헤맸으니, 죽비가 아니라 몽둥이라도 맞고 정신을 차려야 할 터였다.

“백일청천(白日靑天·밝은 해가 비치고 맑게 갠 푸른 하늘) 대낮에 꿈을 꾼 것이 아닙니까.”

“원래 누구나 청정한 법신(法身·진리의 몸인 붓다)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번뇌망상에 물들어 미망으로 헤맬 수 있습니까?”

“지금 그대에게서 나는 그 소리, 그 소리엔 아무런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꾼다면, 어떻게 그 꿈에서 깰 수가 있습니까?”

“눈만 뜨면 됩니다.”

“대낮에 눈을 뜨고도 현혹돼 코 베이는 게 중생의 미망 아닙니까.”

“그렇게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사람은 눈을 막아야 합니다. 큰 절에 가면 차안당이 있는데, 차안(遮眼)이란 ‘눈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염불이나 화두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상무주암 한쪽에 있는 삼층석탑. 조현 종교전문기자
상무주암 한쪽에 있는 삼층석탑. 조현 종교전문기자

현기 스님이 40여년 전 이곳에 홀로 올라와 일체의 세연을 끊고 정진한 것도 눈과 귀를 막고 일념 정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상무주암 마당 한쪽엔 조그만 삼층석탑이 있다. 현기 스님이 고려 고종(1192~1259) 때 각운 스님에 관한 설화를 들려준다.

각운 스님이 이곳에서 선서(禪書)인 <선문염송설화> 30권을 쓸 때다. 이 고지에 올라올 때 가져온 붓이 다 닳아 더는 글을 쓸 수가 없었는데, 한겨울 눈이 내려 산에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때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에 와서 열반했다. 그 족제비를 묻어주고, 그 꼬리를 붓으로 삼아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각운 스님이 설화를 완성하자 붓 끝에서 물방울처럼 사리가 떨어져 내렸다. 삼층석탑은 그 ‘필단(筆端)사리’를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설화다.

상무주(上無住)의 상(上)은 부처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경계요, 무주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다. 상무주암 마루에 앉아 스님과 문답을 나누는 사이 ‘지혜의 나툼’ 반야봉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법신이란 상(相)에도, 번뇌망상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푸른 하늘에 허공법계가 열린다.

현기 스님이 손수 개간해 가꾼 밭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현기 스님이 손수 개간해 가꾼 밭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 불교의 상징 같은 존재인 고려 보조지눌국사는 상무주암에서 수행해 깨달음을 얻고, 이곳을 ‘납승귀납처(衲僧歸納處) 천하제일갑지(天下第一甲地)’라고 했다고 한다. 누더기를 입은 청빈한 이가 수도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현기 스님도 손수 산을 개간해 공양하며 살아왔다. 그 신산한 삶을 나뭇등걸 같은 손이 말해준다. 그사이 밖은 몰라볼 정도로 변했지만, 이 깊은 산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 올라왔을 때만 해도 아침이면 눈밭에서 무슨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발자국이 발견되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발자국은 사라지고 오소리와 족제비만 남았다. 두번은 지리산에 방사한 곰이 공양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어느 때는 노루가 자주 밭을 헤집어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낮엔 모처럼 진주에서 상무주암을 찾은 두쌍의 부부가 스님이 만들어 평생 가꾼 경사진 밭에 울타리를 두르는 울력을 했다. 노동한 불자들의 중노동을 위로하는 기자의 말을 옆에서 들은 스님이 말했다.

“나무 천수천안관자재로다. 관세음보살님은 천수천안, 즉 손이 천개고 눈이 천개여서 관자재(세상 모든 것을 잘 보살핌)라고 합니다. 다 자기 얼굴에 자기 눈, 자기 귀, 자기 손발을 가지고 관자재하게 일하는 것이니,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제 그도 중노동이 힘에 부치는 노승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는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좋았지만, 지금은 눈이 녹고 봄 햇살이 비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신만은 여전하다. 상무주암의 수행자들은 새벽 2시면 모두가 깨어난다. 새벽 3시면 3배로 간략히 예불을 마치고, 선(禪) 수도처답게 누구나 참선한다. 홀로 있으나 함께 있으나 변함없는 수도승의 일상이다. 2시간의 새벽 참선을 마친 뒤에도 여전한 어둠 속에서 뭇별들을 조우할 수 있다.

“바깥세상에서는 이익과 명리를 위해 달리는데 스님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척박한 곳을 지킨 것입니까?”

“지킨 것도 아니고, 오랜 것도 아니고, 별로 할 게 없고, 쓸모 없는 중이다 보니, 그런 게지요.”

지리산 해발 1100m 고지에 있는 상무주암. 조현 종교전문기자
지리산 해발 1100m 고지에 있는 상무주암.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떻게 안과 밖이 둘이겠는가. 보조국사는 상무주암에서 견성한 뒤 무신 집권과 몽골의 침략으로 극심한 사회혼란과 타락한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하산해 불교혁신운동인 수선결사를 결행했다.

“정치인과 언론인뿐 아니라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그 물음 속에서 뭇 중생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까지 거둘 수 없는 은둔승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이라며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에서도 민심에서도 십만팔천리 멀어지게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더구나 “이제 시공을 넘은 과거·현재·미래와 9만리 먼 곳이 이 휴대전화 하나에 다 담긴 이치를 수천년 전부터 화엄경이 다 설파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본마음인 보광명지(普光明知·널리 퍼진, 빛과 같은 밝은 앎)를 깨달으면 굳이 수만리 밖에 나가지 않아도, 시공간이 자기 손안에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은둔 암자와 도시, 번뇌망상과 깨달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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