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비록 선수로서 경기장을 떠나지만, 계속 배구를 할 것이기 때문에 후배 선수들을 많이 응원해달라. 삼산체육관(흥국생명 홈 구장)이 늘 가득 차 있게 만들어달라.” (18일 김연경 은퇴사 중에서)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을 이끈 ‘리빙 레전드’ 김연경이 배구 코트를 떠났다. 하지만 그의 등 번호, 10번은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는다. 남녀부 통틀어 V리그 다섯 번째이자, 구단 최초 영구 결번이다.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과 챔피언결정전 진출팀 정관장의 2025∼2026시즌 V리그 여자부 개막전이 열린 18일, 인천 삼산체육관은 경기 전부터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 배구 역사상 최고 스타로 꼽히는 김연경의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이 예정된 이날 경기장엔 5401명 관중이 들어찼고, 김연경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김연경은 코트를 떠나면서도 팬들과 배구계를 생각했다. 김연경은 “배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참 긴 여정이었던 것 같다. 국내와 해외, 국가대표 선수로 뛰면서 정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며 “그런 분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고, 응원하고 힘을 줬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까지 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재단과 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회를 주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며 “나아가 그 선수들이 또 다른 젊은 선수들을 도와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여자배구 레전드 김연경은 2005∼2006시즌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프로 첫해, 팀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데뷔하자마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챔피언결정전 MVP, 신인상,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을 모두 휩쓸며 6관왕 신화를 썼다.
2008∼2009시즌 뒤 일본과 튀르키예, 중국 등 해외 무대에 도전해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2020∼2021시즌 친정 흥국생명으로 복귀해 한 시즌을 뛴 뒤, 중국을 거쳐 2022년 다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2024∼2025시즌까지 흥국생명에서 뛰며, V리그 8시즌 동안 팀의 정규리그 우승 4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 통합 우승 3회 달성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 시즌 팀의 통합 우승을 견인하고,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수상하며 20년간 선수 생활을 마치는 화려한 ‘라스트 댄스’를 췄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김연경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캡틴’으로서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고, 2012 런던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4강 기적을 썼다.

대선배와의 작별에 후배들도 감사 인사를 남겼다. “언니와 함께 코트 위에서 뛸 수 있었던 시간은 저에게 정말 영광이었다.” (정호영·정관장) “언니를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주아·아이비케이기업은행) “많은 후배가 언니를 통해 꿈을 키웠고, 팬들은 언니를 통해서 배구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양효진·현대건설) “언니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캡틴.”(표승주)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영구 결번이 된 ‘10번’은 김연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번호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한일전산여고 시절부터 흥국생명은 물론, 해외 무대에서 활약할 때도 10번을 달았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등엔 10번이 적혀있었다. 흥국생명 쪽은 “오랜 시간 팀을 위해 헌신해 온 김연경 선수의 열정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 이름이 영구 결번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선수’ 김연경은 코트를 떠났지만, 배구인 김연경의 도전은 계속된다. 김연경은 최근 문화방송(MBC) 배구 예능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필승 원더독스의 사령탑을 맡아, 8번째 프로 구단 창단에 도전하고 있다. 2022∼2023시즌 V리그로 복귀해 국내 배구 흥행에 불을 지핀 김연경이, 은퇴 뒤에서도 흥행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연경 언니는 정말 배구 흥행을 위한 생각밖에 안한다”라는 팀 후배 이다현의 말처럼, 김연경의 배구 사랑은 코트 밖에서도 계속된다.
인천/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