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한국 탁구가 다 죽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강세는 ‘만리장성’이란 수사로도 충분치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유남규의 88올림픽 금메달, 양영자-현정화의 ‘환상의 복식조’, ‘탁구신동’ 유승민의 아테네올림픽 깜짝 우승은 이제 지나간 옛 추억일까요? 과연 중국은 난공불락의 만리장성인 건가요? 여기 드높은 만리장성을 넘으려는 한국과 일본의 두 선수가 있습니다. 서효원과 이시카와 가스미입니다.

세계 탁구계에 중국은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았다. 중국은 남자 세계랭킹 10위 내에 마룽, 쉬신, 왕하오, 장지커를 필두로 6명이 포진해 있고, 여자에서는 랭킹 1~3위 류스원, 딩닝, 리샤오샤를 비롯해 무려 8명이 톱10을 점령하고 있다. 중국 출신 귀화선수인 랭킹 4위 펑톈웨이(싱가포르)를 포함하면 세계 상위 10명 중 9명이 중국계 선수다. 중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류승민에게 남자 단식 금메달을 내준 것을 끝으로 지금까지 모든 금메달을 독식하고 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93년 현정화가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것을 끝으로 남녀 단식에서 단 한번도 금메달을 뺏기지 않았다.

중국은 등록된 탁구 선수만 3000만명에 이르는 탁구 초강대국이다. 유남규, 양영자, 현정화, 김택수, 류승민 등이 만들었던 영광의 순간들은 옛 추억이 됐다. 오상은(36·대우증권), 주세혁(33·삼성생명), 김경아(36·은퇴), 박미영(32·은퇴)처럼 근근이 한국 탁구의 명맥을 이어오던 선수들도 이제는 저물고 있다. ‘한국이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오를 가능성은 있느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사실상 없다’고 답한다. ‘다른 나라 선수가 중국을 꺾을 가능성은 있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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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불가능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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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아시안게임과 2016 올림픽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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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 인천 송도글로벌대 체육관. 가로 152.5㎝, 세로 274㎝의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한국의 서효원(26·한국마사회·세계랭킹 18위)과 일본의 이시카와 가스미(20·세계랭킹 9위)가 마주 섰다. 올해 6번째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코리아오픈 여자 단식 결승 무대. 체육관을 가득 메운 2000여명의 관중조차 숨을 죽였다.

이시카와는 랭킹 10위권에 포진한 유일한 비중국계 선수로 스무살 어린 나이지만 이미 2번의 오픈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간판스타다. 반면 당시 세계랭킹 32위의 서효원은 2011년 폴란드오픈에서 4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인 신예 선수였다. 서효원은 이 대회 8강에서 우승 후보 펑톈웨이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중국의 톱랭커들이 출전하지 않은 여자 단식은 이 둘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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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여자 단식 4위에 단체전 은메달 이끈 이시카와 코리아오픈·폴란드오픈 휩쓸며 기대감 싹틔우고 있는 서효원 중국 넘을 한·일 탁구의 희망탁구선수 부모의 피 물려받아 14살 때 국가대표 된 이시카와 디스크·팀 해체·러버 교체 이겨내고 늦게 핀 꽃 서효원 ‘천재’와 ‘대기만성’의 대결

두 사람의 대결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 코리아오픈 대회 여자 단식 32강전에서 무명의 수비전형 선수였던 서효원은 ‘일본의 신성’, ‘천재 소녀’ 등으로 불리며 세계랭킹 8위에 위치해 있던 18살의 이시카와와 처음 맞붙어 수비전형이면서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과감히 공격하는 플레이로 4-2 짜릿한 깜짝 승리를 거둔 바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올해 3월 2013 광저우 월드팀컵에서였다. 이 대회 8강에서 서효원과 이시카와는 각각 한국과 일본의 2번째 선수로 출전했다. 이번에는 이시카와가 웃었다. 이시카와의 한 박자 빠른 드라이브 공격을 서효원은 제대로 커트해내지 못했다. 서효원은 태극마크의 부담감에 짓눌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하고 눈물을 흘렸다. 서효원은 “가스미가 2년 사이 훨씬 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승리와 패배를 한번씩 주고받은 두 선수가 2주 만에 코리아오픈 결승 무대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팽팽한 공방전을 펼치며 최종 7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효원의 주무기인 강력한 서브 공격으로 1시간에 걸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효원의 첫 국제대회 우승이었다.

승패를 떠나 코리아오픈에서 자웅을 겨룬 서효원과 이시카와는 ‘만리장성’을 넘을 가장 유력한 후보다. 만약 중국을 넘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서효원과 이시카와,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이시카와는 이미 일본 대표팀으로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 여자 단식 4위에 올랐고, 단체전에서는 일본의 은메달 획득을 이끌며 일본 탁구의 희망이 됐다. 반면 1년 전만 해도 일본에 비해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던 한국은 서효원이 코리아오픈에서 우승을 거두고 기세를 몰아 이번달 열린 폴란드오픈마저 제패하자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의 강문수 탁구대표팀 총감독은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과 성장세를 봤을 때 서효원과 이시카와 가스미가 중국을 위협할 잠재력을 가장 크게 지닌 선수들”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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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원과 이시카와의 진짜 대결은 지난 3번의 맞대결이 아니라 바로 누가 중국을 넘어설 것인가에 있다. 서효원과 이시카와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제패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효원의 반복훈련, 이시카와의 타고난 재능

중국 탁구는 스피드를 이용한 전진 속공에 파워가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좀 더 앞선 타구점을 잡아 공격하는 빠르고 간결한 탁구다. 이시카와는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탁구의 흐름인 ‘빠른 탁구’를 구현하고 있다. 탁구 선수로서 타고난 감각을 지닌 이시카와는 한 박자 빠른 공격 탁구를 구사한다. 탁구대에 바짝 붙어 순간적으로 공의 궤적을 파악해 남들보다 앞선 타점에서 드라이브를 날리는 이시카와의 전진 속공에 세계 강호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왼손잡이라 위력은 더 배가된다. 같은 스타일의 중국 톱랭커를 상대로는 파워에서 밀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이시카와처럼 빠른 탁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는 찾기 어렵다.

서효원은 김경아-박미영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 수비수의 계보를 잇는 수비전형 선수다. 수비전형임에도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공격하는 수비수’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상대의 공격을 커트해내다가도 강력한 드라이브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는 서효원의 전매특허다. 폴란드오픈 우승 뒤 국제탁구연맹 누리집(홈페이지)은 “서효원은 다른 유형의 수비수다. 서효원은 마치 남자 선수들처럼 많은 톱스핀이 걸린 공격을 구사한다. 이 점이 서효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라며 서효원의 탁구 스타일을 조명했다.

현재 수비전형이 공격력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 탁구의 트렌드가 됐다. 서효원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서효원의 성공 이후 중국과 일본의 수비전형 선수들은 공격력 강화에 더 힘을 쏟게 됐다.

서효원이 단지 드라이브를 잘 때려 ‘공격하는 수비수’가 된 것은 아니다. 서효원을 지도하는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보통 수비수들은 상대의 공격을 커트하며 실책을 유도하거나 공격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나 서효원은 상대가 공격하기 어려운 곳으로 공을 보내 직접 공격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한국마사회 코치는 “서효원처럼 공격을 자유자재로 하는 수비수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평가했다.

서효원과 이시카와는 상이한 탁구 스타일처럼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선수다. 서효원의 특색 있는 탁구가 오랜 반복훈련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이시카와는 타고난 재능과 감각으로 지금의 탁구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시카와는 초등학생이던 2005년 전일본탁구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에 출전해 자신보다 훨씬 큰 고등학생, 대학생 선수들을 잇달아 무찌르는 이변을 연출하며 ‘천재 탁구 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이시카와는 탁구 선수 출신 부모님으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다. 특히 현역 시절 국가대표 수준의 선수로 이름을 날린 어머니 이시카와 구미는 어린 가스미가 탁구에 재능을 보이자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1층을 개조해 연습장을 만들어 가스미를 특별지도했다. 2006년 중학생이 되면서 실업팀 미키하우스 산하 주니어팀인 미키하우스 제이에스시(JSC)에 스카우트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한 단계 더 성장한 이시카와는 이듬해인 2007년, 14살 3개월의 나이에 일본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돼 국제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시카와는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16살 나이로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고, 모로코 오픈에서 ‘원조 신동’ 후쿠하라 아이와 짝을 이뤄 여자 복식에서 한국의 김현정-석하정 짝을 4-2로 꺾고 첫 국제대회 우승을 맛봤다. 1년 뒤 같은 대회에서는 첫 단식 우승을 포함해 2관왕을 거두는 등 일본의 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지난해 19살의 이시카와는 올림픽 일본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여자 단체전 은메달을 이끌었고, 단식에서도 4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랭킹을 5위까지 끌어올렸다. 이시카와의 활약 덕에 일본의 국가랭킹 역시 한국을 제치고 2위로 상승했다.

이시카와를 지도하는 일본 대표팀의 오광헌 코치는 “가스미는 천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타구의 질, 네트 플레이에 대한 감각,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은 일본 선수들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김형석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도 “이시카와의 빠른 탁구는 타고난 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IMAGE2%%] 서효원의 주무기는 역회전 걸리는 파워서브

이시카와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서효원은 김경아와 박미영이란 쟁쟁한 선배들을 넘지 못하고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을 바라만 봐야 했다. 그러다 올해 3월 26살 나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양하은(19·대한항공), 전지희(21·포스코에너지)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수비수들은 늦게 꽃이 피는 경우가 있다. 김경아 역시 20대 중반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아 30대에 꽃을 피웠다.

서효원이 수비수가 된 것은 큰 키 때문이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완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서효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가 좋아 탁구부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157㎝ 장신이 된 서효원은 선생님의 권유로 수비전형 선수가 됐다. 선생님은 서효원이 계속 자랄 줄 알았던 거다.

160㎝ 크지 않은 키에도 근화여중·고를 거치며 수비수 유망주로 주목을 받은 서효원은 2006년 신생팀 현대시멘트의 창단 멤버로 실업무대에 발을 디뎠다. 동시에 시련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 평면 러버(탁구 라켓에 붙이는 고무)에서 페인트 러버로 교체한 서효원은 새로운 러버에 적응하기 위해 무리한 훈련을 하다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했다. 노력파인 서효원이 통증을 참아가며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훈련을 반복한 탓이다. 현대시멘트에 입단했을 때에는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병원에서도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효원은 몇날 며칠 펑펑 울었다. 그러나 탁구를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서효원은 1년 동안 끈질기게 치료와 재활 훈련을 했다. 꾸준한 웨이트로 다져진 근육이 척추뼈를 튼튼히 지탱할 수 있게 되면서 완벽한 부활에 성공했다. 재기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의료진도 놀랐다. 서효원은 이때의 필사적인 재활 덕분에 크지 않은 키에서 묵직한 구질의 공을 때릴 수 있는 파워를 얻게 됐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서효원의 공격력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서효원이 “가장 자신있는 주무기”로 꼽는 역회전이 많이 걸리는 파워서브 역시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초등학교 시절 서효원의 코치 선생님은 탁구대 반대편에 찌그러뜨린 탁구공을 놓고 그걸 서브로 맞히는 연습을 혹독하게 시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이 서브 연습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멈추지 않았다. 서효원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브 연습을 하다 밤을 새우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한 코치 선생님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손목뼈가 나가 통깁스를 할 정도로 서효원은 연습을 하고 또 했다.

서효원은 “남들 하는 만큼 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김형석 대표팀 감독은 “서효원은 굉장한 노력파다. 훈련할 때 어린 선수들을 제치고 러닝이나 웨이트 훈련을 항상 1등으로 소화한다. 코치진이 어떤 훈련 프로그램을 짜 가도 표정 한번 찡그리지 않고 따라온다”고 말했다. 체력 소모가 굉장히 큰 공격형 수비전형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성실한 훈련 덕분에 가능했다.

건강해진 몸으로 2008년 아시안컵에서 강호들을 꺾고 4강에 오르는 등 드디어 빛을 보는가 싶더니 별안간 팀이 해체됐다. 두번째 시련이 닥친 것이다. 현대시멘트는 감독이 직접 운전하는 비좁은 밴을 타고 선수단이 이동을 해야 했고, 해외 오픈대회 출전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재정이 열악한 팀이었다. 그러다 건설경기 침체 여파로 2008년 10월 결국 해체됐다.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현대시멘트에서도 조하라(25·현 삼성생명), 남소미(24·현 대우증권)에 이은 후보 선수였던 서효원은 다른 선수들이 하나둘 새로운 팀을 찾아떠나는 것을 마지막까지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때 서효원에게 손을 건넨 것은 한국 탁구의 ‘전설’인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이었다.

도약이냐 정체냐, 기로에 선 이시카와

사실 현정화 감독은 서효원을 중학생 시절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현 감독은 “크지 않은 키에도 감각이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수비수임에도 뛰어난 공격 능력과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될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2006년 현대시멘트가 창단되면서 현 감독의 스승이자 현대시멘트를 맡게 된 윤길중 감독이 현 감독을 직접 찾아와 서효원 영입 의사를 피력했다. 은사의 요청인데다, 한국 탁구 발전이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현 감독은 신생팀에 유망주를 양보했다. 그러나 운명처럼 3년 만에 서효원은 결국 현 감독의 품으로 갔다. 이때부터 서효원의 기량은 엔진을 단 듯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현정화 감독과 박상준 코치는 서효원의 공격 재능을 집중적으로 일깨워주기 시작했다. 박 코치는 “처음 효원이를 데려올 때부터 서효원을 공격적인 수비전형 선수로 키우면 대성할 것이란 계획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0년 ‘핌플(고무층의 돌기가 밖으로 나온 러버로 공의 회전에 영향을 덜 받는다)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현 감독의 말에 따라 페인트 러버(연질성의 돌출 고무로 만들어진 러버로 컨트롤은 어렵지만 공에 불규칙한 변화를 준다)로 다시 교체하며 1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시합에 나갈 때마다 지는 바람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존심도 상할 대로 상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딱 1년 뒤인 2011년 3월 폴란드오픈에서 처음으로 단식 4강에 올랐고, 그해 말 열린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변화에 성공했다. 그동안 귀화선수의 독차지였던 이 대회에서 6년 만에 토종 선수가 거둔 우승이자 1979년 박홍자 이후 32년 만에 수비수가 거둔 우승이었다.

현 감독의 지도 아래 나날이 기량이 발전한 서효원은 올해 드디어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 무대에서 첫 우승도 맛보며 세계가 주목하는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서효원은 “나는 운이 좋았다. 솔직히 다른 팀 갔으면 이렇게 잘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의 지도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로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이시카와에게는 최근 첫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이시카와는 2012년 한때 세계랭킹 5위에까지 올랐지만 그 뒤로는 번번이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1년 넘게 랭킹 8~10위를 맴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시카와의 성장이 한계에 달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김형석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은 “이시카와는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성된 선수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전진 속공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왔지만 중국 톱랭커들을 상대로는 힘 있는 구질에 밀리고 있다. 이시카와가 지금의 스타일을 버리고 탁구대를 폭넓게 활용하면서 파워를 추가하지 않으면 더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시카와 특기는 ‘빠른 탁구’ 탁구대에 바짝 붙어 순간적으로 공 궤적 파악해 앞선 타점에서 드라이브 날리는 전진 속공 왼손잡이라 위력은 더 배가서효원은 ‘공격하는 수비수’ 상대의 공격을 커트해내다가도 강력한 드라이브로 상대의 허 찌르는 플레이는 전매특허 공격기회 만드는 능력 있어

이시카와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본인의 의지다. 지금의 스타일로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했는데 위험을 안고 변화를 주겠느냐는 것이 외부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이시카와는 지금 그 위험에 도전하고 있다. 6월 세계선수권에서 32강에 그친 뒤 무라카미 야스카즈 일본대표팀 감독의 특명 아래 이시카와는 남자 대표팀과 합숙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선수들의 빠르고 묵직한 구질을 극복하기 위해 남자 선수들과 특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시카와에게 전혀 새로운 도전이다. 이제까지 이시카와에게 탁구는 재밌는 것이었다. 이제 재미만으로는 더 성장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광헌 일본대표팀 코치는 “가스미는 지금까지는 탁구 연습만 신경을 썼다. 이제 체력을 보완해야 하고 근력을 더 키워야 한다. 이는 가스미에게 지금까지 해온 탁구와는 다를 것”이라며 이시카와에게 험난한 과정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시카와는 7월 부산 아시아선수권대회 전에 열흘가량 남자 대표팀과 합숙 훈련을 진행했다. 이 대회 8강에서 이시카와는 세계 1위 류스원을 상대로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과감한 플레이와 힘 있는 공격력을 선보였다. 오 코치는 “결과는 패배였지만 코치진도, 상대 선수도 깜짝 놀랄 정도의 변화였다. 탁구 스타일에 변화가 온다면 지금 당장은 성적이 나지 않겠지만 조만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비수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수비수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수비전형 선수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주요 대회 단식에서 우승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상권에 갈수록 수비전형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수가 적고 연결력이 뛰어난 정상급 선수들은 좀처럼 실책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활약했던 주세혁은 “만약 아들이 탁구 선수가 된다면 수비수는 안 시키겠다”고 말했다.

서효원은 “수비전형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공격수는 공격만 할 수 있지만 나는 수비와 공격 모두 할 수 있다. 나에게 더 많은 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서효원은 “수비수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나는 수비수로서 꼭 세계 정상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커트만으로는 최정상급 공격수들을 넘어서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공격하는 수비’의 필요성이 확산됐다. 주세혁이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하며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뛰어난 공격력 덕분이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김경아도 공격력을 보강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 김형석 대표팀 감독은 “수비수라고 최고가 안 되라는 법은 없다. 서효원의 공격 기술이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화된다면 오히려 공격수들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의 전제 조건은 성장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지만 서효원의 성장 가능성은 오히려 20살 이시카와보다 높다는 것이 한국 지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역으로 이시카와가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된 선수라면 서효원은 수비와 공격 기술 모두에서 한참 더 손볼 곳이 많다는 뜻이다.

현정화 감독은 “효원이가 팽팽한 경기에서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수비 실책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고 있다”며 “수비 지구력을 중점적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조건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시적지에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