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박은선(28·서울시청)의 해외 진출이 임박한 가운데 박은선의 성별 진단을 요구해 물의를 일으켰던 감독들에게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경고가 내려져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여자축구 실업팀 감독들이 여성 축구선수에 대해 성별 진단을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014년도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한 것은 여성의 인격을 침해하는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대한축구협회에 해당 감독들을 징계하고, 축구협회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한국여자축구연맹 등 체육단체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선수 본인과 축구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인 만큼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협회와 연맹 모두 시간만 끌다가 인권위의 독촉 끝에 반년이 지난 5월에야 첫 징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인권위가 요구한 시한인 6월 말을 넘겨 지난 17일 대한축구협회는 징계를 결정해 인권위에 전달했다. 축구협회가 결정한 징계는 가장 낮은 수준인 경고였다.
축구협회 징계위원회 간사를 맡은 박연준 인사팀장은 22일 “여자축구연맹 징계위원회에서 올라온 조사보고서와 축구협회 자체 징계위원회 조사 결과를 검토해 해당 감독들의 행위가 성희롱이 맞지만 당사자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엄중 경고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축구협회 징계 규정에는 성희롱 사건에 대해 최소 경고부터 최대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주도록 돼 있다.
이에 앞서 여자축구연맹은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성희롱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축구협회에 조사보고서를 올렸다. 여자축구연맹 관계자는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성별 진단을 요구한 것만 가지고 성희롱으로 보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발언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경고를 하는 것으로 축구협회에 보고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축구협회는 연맹과 달리 이 사건을 성희롱 사건으로 판단하긴 했지만 자체 조사 결과와 여자축구연맹의 결정을 존중해 징계 수위는 ‘경고’로 최종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은선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의 강현길 부장은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낮은 징계가 결정돼 안타깝다. 박은선이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청 소속일 때 일어났던 사건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논의중”이라며 “인권위에서도 뭔가 조처를 취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기한 내에 답변이 오지 않았고 내용도 미흡하다는 건 알고 있다. 전원위원회에서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1일 박은선의 러시아 여자축구 FC로시얀카로의 이적을 승인했다. 박은선의 에이전트인 김태훈 식스플랜 대표는 “현재 경남 합천에서 열리는 여자축구선수권대회가 끝나는 대로 이번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러시아로 출국해 메디컬테스트와 세부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