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보고 저리 봐도 딱 벙어리장갑이다. 흡사 쿠키를 구울 때 사용하는 쿠킹용 장갑 같기도 하다. 박해민, 김상수 등 일부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1루에 출루했을 때 끼는 장갑 얘기다.
삼성 관계자에 의하면 삼성 선수들이 이런 모양의 장갑을 낀 것은 지난 6월29일 사직 롯데전부터다. 슬라이딩 등 주루 과정에서 손가락이 다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특별 주문했다. 삼성 선수들은 “마음 편히 과감하게 슬라이딩을 할 수 있다”며 반긴다. 원래 왼손, 오른손 좌우 구분이 있는데 삼성 선수들은 개의치 않고 잡히는 대로 낀다고. 하긴 엄지 구분 없이 낄 수 있는 통장갑이어서 앞뒤, 좌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긴 하다. 삼성 선수들 이전에는 롯데 외국인 타자였던 짐 아두치가 작년에 1루에 출루했을 때 이런 장갑을 사용한 바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2013년 5월 보도에 따르면 벙어리 주루 장갑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사용한 선수는 뉴욕 양키스의 발 빠른 외야수 브렛 가드너다. 양키스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리는 가드너는 2009년 2루 베이스로 슬라이딩을 하고 들어가다가 왼쪽 엄지를 다친 경험이 있고 이후 ‘슬라이딩 때 다시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트레이너 등과 상의 끝에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벙어리장갑을 고안해냈다.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을 하는 선수들은 종종 특수한 장갑을 끼기는 하지만 손가락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통으로 된 장갑은 가드너가 처음이다. 가드너는 당시 인터뷰에서 “단순히 네오프렌(합성 고무의 일종) 재질의 팔꿈치 보호대를 잘라서 둥글게 바느질한 것일 뿐”이라면서도 “손가락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베이스 터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프로 선수의 최대 자산은 몸.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쿠킹용 벙어리장갑이 대수겠는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