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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쫄깃한 고동부터 싱싱한 고등어회까지 섬은 최고 자연밥상

등록 :2017-08-31 10:24수정 :2017-08-31 10:43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이 고른 전국 ‘섬 음식 베스트 5’
백령도 평양냉면·백일도 낙지찹쌀죽·진도 황칠보양탕 등
섬 토속음식의 주재료는 풍부한 해산물이다. 통영 욕지도의 어민 부부가 잡은 문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섬 토속음식의 주재료는 풍부한 해산물이다. 통영 욕지도의 어민 부부가 잡은 문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섬 중엔 뭍 음식과는 또 다른, 맛깔스러운 토속 음식이 전해오는 곳이 적지 않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해산물·농산물을 주재료로 쓰되 섬 고유의 방식으로 차려내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음식들이다. 걸어서 섬 여행하기와 섬 음식 깊게 들여다보기를 일로 삼고 있는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이, 섬에서 맛보고 감동했던 음식 다섯 가지를 골랐다. 그 음식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진도 대마도 ‘황칠 보양탕’

황칠, 그 찬란한 황금빛 때문에 황제의 칠로 통하는 황칠은 금값보다 비싼 칠이다. 황칠은 황칠나무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데, 종이나 대나무는 물론 금속공예 등에 도료로도 쓰인다. 황칠나무는 주로 제주도, 보길도 등의 섬 지역에서만 자생해 왔다. 근래 들어 칠보다 식용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중국 당나라 때 저서 <통전>(通典)에 “백제 서남지방 바다 가운데 세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6월에 백류(白流)를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금빛과 같아서…”라는 기록이 있다. 또 <계림지>(鷄林志)에도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난다. 6월에 수액을 채취하는데 빛깔이 금과 같으며, 볕에 쪼여 말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칠은 예부터 섬의 특산물로 유명했던 것이다. 황칠나무의 학명은 ‘덴드로파낙스’(Dendropanax morbiferus). 만병통치 나무란 뜻이다. 진도군 대마도에서도 이 만병통치 나무를 활용해 보양식을 만든다. 대마도 자생 황칠나무를 재료로 차려내는 귀한 음식은 황칠 보양탕이다.

대마도 ‘황칠보양탕’.
대마도 ‘황칠보양탕’.
먼저 가마솥에 황칠나무 잎과 가지를 넣고 5시간 이상 불을 때서 푹 고아내 진국을 만든다. 이 황칠 국물에 대마도 해역에서 갓 잡아온 전복, 문어 등 해산물과 토종닭 등을 넣은 뒤 2시간 정도 더 끓여낸다. 가히 황제의 음식이라 이를 만큼 화려하다. 민박집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여수 사도 ‘따개비 섬 밥상’

여수 사도 ‘갱번’(해변), 썰물의 때가 왔다. 오늘도 사도 어머니들은 갱번 갯바닥에서 갯것을 채취하는 중이다. 어머니 한 분, 고동(고둥)과 배말, 군봇, 거북손 등을 따면서 노래를 부르신다. 구슬프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남의 것을 빼앗아 사는 것도 아니고 험한 갯바닥을 기어다니며 갯것을 채취해다 먹고사시는데 어째서 어머니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실까. 어째서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하다고 비하하실까. 어머니들을 죄인으로 벌레만도 못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못난 자식들은 아프고 또 아프다. 오늘도 사도 민박집 밥상에는 사도산 해산물과 나물류 등이 한상 오지게 차려진다. 여주인이 사도 갱번을 풀풀 기어다기며 채취해 온 것들이다. 많은 반찬 중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따개비류·고동무침이다.

사도 ‘따개비 섬 밥상’.
사도 ‘따개비 섬 밥상’.
고동무침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고동은 삶아낸 뒤 일일이 바늘로 알맹이를 다 꺼내야 한다. 배말(삿갓조개)은 쫄깃하고 군봇은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배말과 군봇 등은 숙회로 먹기도 하지만 무침이라야 제맛이 난다. 사도 민박집에서는 무침을 할 때 해산물 육수로 만든 양념장을 쓰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삶은 따개비나 고동에 대파 정도만 썰어 넣고 미리 만들어 둔 양념장과 집고추장을 반반 비율로 넣고 조물조물해서 무쳐내면 완성이다. 집은 허름하지만 민박집 밥상에 담긴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얼마나 긴 노고의 시간이 들어 있는가. 음식이 아니다. 그 귀한 시간을 먹는 것이다.

옹진 백령도 ‘장촌냉면’

“미닫이가 닫힌 냉면집 앞을 한동안 서성였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까나리액젓은 현무암 빛깔로 곰삭은 맛을 내고/ 인생도 물냉면 사리처럼 물컹해져 버렸는데”(신동호의 시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백령도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섬이지만 해산물이 아니다. 섬이라면 내륙 사람들은 다들 어로만 하고 사는 줄 알지만 대부분의 섬은 농사가 많다. 어업을 전업으로 하는 섬은 드물고 반농반어가 다수다. 규모가 큰 섬들의 경우 오히려 농사가 더 많다. 섬 또한 육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에 사는 것일 뿐 삶은 내륙의 농촌과 큰 차이가 없다. 백령도 또한 농사가 주업이다. 그래서 백령도 대표 토속 음식도 메밀요리다. 메밀로 만든 냉면과 칼국수와 메밀 짠지떡 같은 요리들이다.

백령도 ‘장촌냉면’.
백령도 ‘장촌냉면’.
나는 특히 그 슴슴하고 담백하고 정갈한 메밀냉면의 맛을 잊지 못하여 백령도에 갈 때면 늘 여객선에서 내리자마자 장촌마을로 향한다. 거기 미닫이문의 ‘장촌냉면’ 집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만 잠깐 식당 문을 열고 자주 닫혀 있는 낡은 시골집. 과거 백령도는 메밀 농사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겨울 농한기 때면 메밀냉면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나무틀에 뽑은 메밀면을 동치미나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이 백령도식 메밀냉면이었다. 백령도 냉면들도 요즈음은 고기 육수를 쓴다. 하지만 면만은 옛날의 그 맛이다. 장촌냉면에서는 제분한 지 한달 이내, 메밀가루 60% 이상의 순도 높은 진짜 메밀면을 즉석에서 기계로 뽑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아준다.

백령도 메밀냉면에는 들기름이 고명처럼 들어간다. 메밀이 찬 성질이라 들기름을 넣어야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란다. 냉면을 먹고 난 뒤에는 메밀 삶은 면수를 내준다. 찬 냉면을 먹고 나면 체할 수 있는데 면수를 마시면 쑥 내려간다. 면발은 너무도 부드러워 이로 끊지 않고 삼켜도 목에서 그냥 끊어질 정도다. 가히 ‘인생 냉면’이다.

통영 욕지도 ‘고등어회’

국민 생선이지만 비린 생선의 대명사이기도 한 것이 고등어다. 오죽하면 고등어는 낚시에 잡혀 올라오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까. 워낙 지방이 많은 생선이라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쉽게 상하기 때문에 뒤집어쓴 누명이다. 그러니 바닷가나 섬 지방을 제외하고는 고등어를 회로 먹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고등어 양식이 생기고 운반기술이 발달하면서 내륙 지역 사람들도 점차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고등어 양식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바로 통영의 섬 욕지도다.

욕지도 고등어회와 한치회.
욕지도 고등어회와 한치회.
욕지도에서 고등어회 맛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생선회들은 심심해서 맛이 없게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욕지도의 고등어는 양식이지만 자연산에 가깝다. 치어부터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장에서 잡은 성어들을 그대로 바다 가두리에 가둬놓고 정어리나 멸치 등 어류를 먹여서 살을 찌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소하고 기름지다. 제주의 고등어 전문 횟집에서까지 욕지 고등어를 받아다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욕지도에서 먹는 고등어회 맛은 내륙에서 맛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고 고소하다. 선도가 다른 까닭이다. 현지에서 고등어회를 맛보지 못했다면 욕지도에 갔어도 간 것이 아니다.

서남해 섬 ‘낙지찹쌀죽’

옛날 함경도 삼수갑산에 사는 농민들 중에는 영양부족 때문에 멀쩡하던 눈이 갑자기 안 보이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한다. 이들은 명태가 잡히는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동해안 바닷가 마을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한 달 정도 거처하면서 명태 간 기름을 먹으면 다시 눈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명태 간이 장님도 눈 뜨게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식약동원. 서남해 섬 지방에서 약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던 어류는 단연 낙지다. 탈진하여 쓰러진 소도 산낙지 몇 마리 먹이면 벌떡 일어서곤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흔하다. 사람들도 기진맥진해 있다가 낙지 잡아다 뜯어먹고 벌떡 일어났단 얘기도 많다. 그래서 섬 노인들은 낙지를 ‘백병 통치약’이라 칭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 기력이 쇠하거나 어지럼증을 앓던 섬사람들이 만들어 먹은 최고의 약용음식은 낙지찹쌀죽. 찹쌀과 뻘낙지를 넣고 푹 끓여서 죽을 쒀 먹으면 어지럼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

서남해안 여러 섬에서 만날 수 있는 ‘낙지찹쌀죽’.
서남해안 여러 섬에서 만날 수 있는 ‘낙지찹쌀죽’.
신안의 압해도나 기점도에서도 낙지죽으로 어지럼증을 치료했고, 고흥의 백일도 사람들은 낙지와 찹쌀에 팥까지 더해서 넣고 끓인 죽으로 어지럼증과 빈혈을 치료했다. 한국 최초 케이원(k1. 격투스포츠) 선수 출신 요리사 김옥종 시인은 신안 지도가 고향인데, 어려서 낙지죽을 먹고 귀앓이가 나은 적이 있다고 했다. 신안 압해도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는 ‘징하게’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젊은 시절 전답을 일구느라 몸이 상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어지럽곤 했다. 그때마다 낙지찹쌀죽을 끓여 먹으면 어지럼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낙지찹쌀죽은 찹쌀 한 되에 굵은 가을 낙지 10마리쯤과 통마늘만 넣고 푹 녹아지도록 고아내면 된다. 집에서도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다. 한 그릇 먹고 식으면 또 데워 먹고, 그렇게 몇 끼를 먹다 보면 보약을 안 먹어도 여름 더위에 지쳐 집 나갔던 기력이 되돌아온다.

Island

섬. 바다나 호수, 강 등의 물에 둘러싸여 있는 땅. 바다의 경우 만조 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땅을 말한다. 사람이 정착해 경제활동을 지속하느냐 여부로 유인도·무인도를 구분한다. 경작지만 있거나 등대지기만 근무하는 섬은 무인도로 분류한다.

글·사진/강제윤(시인, ㈔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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