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매거진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④ 간장 공장 (상)
연구원으로 일하다
상무까지 오른 공장장님
문익점 뺨치는 아이디어로
공장의 전설 남겨
연구원으로 일하다
상무까지 오른 공장장님
문익점 뺨치는 아이디어로
공장의 전설 남겨
알록달록 그려진 그림들
콩 만지는 사람 맘까지
말랑말랑해지네 “엄청나게 화난 목소리들이었어요. ‘정말 이따위로 할 줄은 몰랐다. 먹던 간장을 다 버렸다. 앞으로 다시는 간장을 먹지 않을 거다.’ 전화가 빗발쳤고, 간장 매출이 반으로 떨어졌어요. 하지만 그게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회사의 대표는 견학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우리는 자신있다, 다 보여줄 테니 모두들 와서 보고 얘기해라’ 그런 의미였다. 매출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업소로 나가는 간장의 양은 변함이 없었다. 개인 소비자들의 구매량이 떨어진 것이니 그들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때부터 매출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간장 폭풍’으로 수많은 영세업체들이 도산했지만, 견학 프로그램으로 정면 승부를 한 이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품을 만드는 공장은 위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공장’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깨끗한 걸 상상하지 못하니까, ‘공장’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대한 기계와 기름 냄새와 먼지뿐이니까, 식품 관련 공장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참 난감할 것 같다. 방문한 간장 공장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공장이기도 했다. 예술을 무척 사랑하는 회사 대표님이 어느날 아이디어를 냈다. 공장 외벽에다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벽에다 작품을 설치하다니, 낭비도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벽에 그린 그림은 공장 직원 100여명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수만을 위한 한정적인 작품이다. 누가 봐도 낭비다. 공장 직원의 수보다 공장에 그려진 그림의 수가 더 많다. 대부분의 공장 벽이 회색인 데는 이유가 있다. 회색이면 관리가 편하다. 벽을 관리하기도 편하고, 사람을 관리하기도 편하다. 지저분한 때가 잘 보이지 않으며, 일하는 직원들의 마음에도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일하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엔 회색이 좋다. 회사 대표와 경영진은 결국 신진 아티스트 그룹과 힘을 모아 공장 전체를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고양이 그림도 있고 산수화도 있고 콩을 닮은 예쁜 동그라미도 있고 정체불명의 형상도 있다. 이런 식의 낭비라면, 괜찮을 것 같다. 생산과 효율을 강조하는 공장의 외벽을 울긋불긋하고 파릇파릇하게 만든 낭비의 마음이 좋다. 사람의 마음을 위해 낭비하는 공장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식품을 만드는 공장이라서 더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때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음식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공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처음엔 그림이 익숙하지 않아 이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 사람들은 콩을 만지는 사람들이고 밀을 만지는 사람들이고 효모를 만지는 사람들이다.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콩을 만지면 어쩐지 발효도 더 잘될 것 같고 간장도 더 고소할 것 같고 된장도 더 구수할 것 같다. 간장 공장에 들어서면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콩을 찌는 냄새다.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어쩐지 고향에 온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가 먼발치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공장에서 이런 냄새를 맡을 줄은 몰랐다. 외벽에는 멋진 그림도 그려져 있겠다, 구수한 냄새도 나겠다, 공장 건너편에는 일반인들에게 임대하는 콩 텃밭도 있겠다, 공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연면적 2만3150㎡(7000평) 규모에 직원이 100여명 정도니 공간이 여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공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임시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김중혁 소설가, 취재 협찬 샘표식품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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