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은 실내야구장 달인이다. 빵! 빵! 맞는다. 앞길 창창 쭉 뻗어 나간다. 그물에 철렁! 걸친 공들을 만지면 후끈거릴 지경이다. 매주 평균 5할대 타율은 유지한다. 500원에 20알 나오면 헛방은 별로 없다. 소문을 듣고 실내야구장 동호회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오기도 했다. “우리 동호회에 오시면 가입 절차 없이 바로 상위 레벨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헉은 응하지 않았다. 과거 다니던 회사처럼 연봉도 없이 타율을 마냥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네 건달이나 백수들과 하이파이브 자주 한다. “타격 폼이 예술입니다. 비결 한수만?” 귀찮다는 듯이 한마디 해준다. “기회는 옵니다. 돈만 찔러 주면. 어디든 그렇지 않나요?” 헉이 실내야구장 달인이 되기까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필요하다. 대학 졸업 후 20여년을 제약회사에 몸바쳤다. 주로 농약 개발을 담당했다. 농약이라는 게 유통기한도 널널하고 농촌 필드가 빤하다는 생각에 좀 노력하면 홈런은 우스워 보였다. 헛스윙의 연속이었다. 회사의 승률은 곤두박질이었다. 출고된 상품은 대개 쥐가 먹거나 개가 먹고 피를 토하고 자빠졌다. 출근해서 벤치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 과장이 입사 첫날 해준 말이 자주 떠올랐다. “우선 벌레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버려. 해충을 알아야 살아남는다구. 둘째, 제약회사는 불필요한 해충은 금방 청소해 버리지. 한꺼번에 싹쓸이되기도 해.” 할당제 실적이 적용되어 삼진아웃 제도로 퇴출리스트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진루를 해야 도루라도 해볼 텐데 구원투수 자청하던 마누라도 떠났다. 묵묵히 응원해주던 관중도 모두 사라졌다. 어느 날 둘러보니 관중으로 있던 아이들도 사라졌다. 벌레 좀 겪었다 싶으니까 농약은 늘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을 낳는다. 어느 날 구조조정 통보받고 입사 동기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함께 개발한 농약을 먹고 죽은 동기 생각에 잠을 못 이루었다. 벌레가 마셔야 할 농약을 사람이 마시고 몇 더 하늘로 갔다. 강장 드링크도 아니고 후룩 마시다니 가뿐하다 거 참. 앞 주자들이 하나둘 필드를 떠나자 어쩌다 보니 소주 먹고 퇴근길에 실내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 몇 번은 주인이 멱살을 잡고 내쫓았다. “아자씨! 뛰는 건 필드 가서 하시라니까요.” 헉은 이제 출근을 실내야구장으로 옮겼다. 몇 년 동안 필드 구경을 못 해본 타자, 헉은 팔뚝 근육만 점점 늘어간다. 밤마다 엎드려서 수십 통의 이력서를 쓰는데 팔 근육이 과도하다. 실제 야구장은 다신 안 간다. 환희보다 야유만 있을 것 같아서다. 그 이름도 찬란했던 <완전박멸>, <다잡아> 리그 시절, 눈물이 핑 돈다. 집안에 모셔둔 두 개의 기념 트로피 같은 농약병, 갈증이 날 때마다 입술이 타지만 실내야구장으로 달려간다. 주자는 9회 말 2사 만루 상황, 제1구…. 온다!

김경주 시인